[절기이야기]곡우(穀雨)-곡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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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이야기]곡우(穀雨)-곡우물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4-20 6면
  • 안순택 논설위원안순택 논설위원
곡우(穀雨)엔 못자리에 낼 볍씨를 물에 담갔다. 농사는 곧 목숨이니 혹여 부정(不淨)이라도 탈까 볍씨 가마니를 솔가지로 덮었다. 마을 정미소도 문을 닫았다. 곳간에 있는 볍씨가 쌀눈 깨지는 소리를 들으면 지레 죽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곡식이 듣는다는 것이다. ‘곡우에 가뭄이 들면 땅이 석 자나 마른다’고 했다. 하늘을 거슬려 한해 농사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입조심에 몸조심을 해야 했다.

조심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완연한 봄기운에 자연은 생동한다. 나무엔 수액(樹液)이 찰대로 찬다. 위장병 치료와 남자에게 좋다는 고로쇠물은 경칩 무렵부터 나지만 이뇨작용과 뼈를 튼튼하게 한다는 거자수는 곡우 때 절정에 이른다. 지리산 남악사에선 예로부터 곡우에 조정 제관이 산신에게 거자수를 올리고 국태민안을 비는 약수제를 올렸다고 하거니와 요즘도 이를 이어받아 남악제를 지낸다. 거자수는 자작나무에서 나는 물이요, 또 박달나무에서도 물이 나온다. 곡우에 먹는 물, ‘곡우물’이다.

바다에선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참조기가 태안반도 앞 격렬비열도 근처에 몰려든다. 이때 잡아 말린 것을 ‘곡우살이’ 혹은 ‘앵월(음력 3월)굴비’라고 해 굴비 가운데서도 최상품으로 친다. 어민들은 늙은 살구나무에 꽃이 피면 참조기가 알을 낳을 때라는 것을 알았다. 정확하게 때맞춰 몰려드는 조기를 보면서,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조기만도 못하다’고 욕을 했다. 세종시를 ‘명품도시’로 만들겠다 약속해놓고 흔드는 것을 보면 ‘조기만도 못한’ 사람 참 많다.

곡우는 이처럼 긴 겨울 어둡고 차가운 기운을 걷어내고 따스한 햇살 속 천지만물이 살아 움직이는 시기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세종시 법적 지위 문제 등으로 유독 어수선하고 심란하게 시작된 올 봄. 이제부터라도 혼란스럽고 불안하던 터널에서 벗어나 봄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나흘 뒤면 안면도 꽃지에서는 꽃잔치가 열린다. 그 꽃에 실컷 취했으면 싶다. /안순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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