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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규 문화교육팀장 |
“이렇게 더러울 수 있을까? 아니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 귓전을 때렸다.
“인도는 발전하면 안됩니다. 인도는 더러워야 인도입니다. 발전하고 깨끗해지면 더 이상 인도는 없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발전하면 안되고 더러워야 인도라니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면 안되는 말이지 않는가.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외국 관광객들이 인도를 찾는 이유는 더러움을 보기 위해서란다.
그래 실컷 더러움이나 보자고 생각하며 여기저기 더러운 곳만 찾는 이상한 여행은 인도의 거지들을 만나면서 또 좌절할 수 밖에 없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에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태어난지 1~2개월 정도된 영아를 안고서 동냥을 하는 걸인을 보노라면 이건 동냥을 빙자한 살인행위가 아닌지 혼란스러워진다. 어떻게 저럴 수 있냐고 가이드에게 물어봤지만 더 이상 직접적인 즉답은 피해갔다. 대신 돌아온 대답은 거지들이 불쌍해 보여서 한 푼 두 푼 쥐어준 관광객들의 적선이 인도를 망치고 있단다.
“인도는 거지가 잘 사는 나라입니다. 자 보세요. 저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자고 싶을 땐 잠자고 이렇게 잠깐 관광객들이 지나갈 때 따라다니며 제발 불쌍히 여겨달라고 졸라대면서 동냥을 받아요. 거지도 일종의 직업인 셈이죠.”
빌어먹는게 직업이라니! 이런 아이러니속에 인도는 대국의 반열에 서있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높은 행복지수가 말해주듯이 관광객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바라나시(갠지스 강을 끼고 있는 인도의 성스로운 도시)와 인도사람에게 있어 생명의 강인 갠지스 강은 충격이다. 바라나시 거리는 하루종일 사람들로 발디딜 틈도 없다. 바라나시 거리로 나서는 순간 사람들이 저렇게 많을 수 있을까 머리가 멍멍해진다. 바라나시는 인산인해(人山人海)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도시다.
바라나시는 인도에서 가장 축복받은 도시이기도 하다. 인도인의 가슴에서 영원히 뗄래야 뗄 수 없는 갠지스 강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바라나시 거리마다 뒹굴고 있는 소와 개, 돼지는 더 이상 축생이 아니다. 바로 사람이다. 철저히 윤회사상을 믿고 있는 인도사람들에게 있어 가축들이 다음생에 사람으로 다시 환생할 것이라고 믿는 게 무리가 아니어서 그런지 분명 개, 돼지, 소는 사람들과 하나돼 있었다.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눈길을 갠지스 강으로 돌렸다. 바라나시 중심부에서 릭샤(인도와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주로 인력을 이용하는 교통수단)로 30여분 거리에 있는 갠지스 강은 관광객은 물론 인도 전역에서 죽기전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참 인도에는 갠지스 강이 없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을 뻔 했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인도에는 정녕 갠지스 강이 없다. 수많은 인도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갠지스는 외국인들만 아는 강일뿐이다. 그들은 갠지스 강을 알아듣지도 못한다. 대신 인도에는 '강가(Ganga)'가 있다. 사람들이 '갠지스'로 말하면 인도사람들은 '강가'로 알아듣는다. 힌두어로 갠지스가 '강가'인 것이다.
강가의 충격은 실로 놀랍다. 한쪽에선 화장(火葬)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강가에 몸을 담그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이를 닦고 아예 강가물을 마시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그 물을 한통씩 담아 간다. 물론 개와 소도 사람들과 함께 강가화장터에서 그러고 있다. 문화충격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이질적이다.
그래서일까. 인도로의 여행은 여행(旅行)이 아니고 수행(修行) 혹은 고행(苦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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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