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선]나와 우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임채선]나와 우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

[교육단상]임채산 서천 한산초 교사

  • 승인 2012-09-11 14:11
  • 신문게재 2012-09-12 20면
  • 임채산 서천 한산초 교사임채산 서천 한산초 교사
▲ 임채산 서천 한산초 교사
▲ 임채산 서천 한산초 교사
내가 근무하는 곳은 서천의 농촌학교다. 농산어촌 전원학교 교육 활동의 일환으로 다양한 특색 프로그램들을 시행해 오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올해로 3년째 실시하고 있는 국토순례 활동이다. 올해는 다 함께 무리지어 똑같은 코스를 걸었던 작년의 방식에서 학생들의 재량권을 대폭 확대했다. 무학년 조를 편성해 스스로 코스를 정하고 도보와 대중교통을 번갈아가며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중간 중간 거쳐야 할 필수 코스는 정해졌고 안전을 위한 인솔교사도 동행했다.

“선생님, 이거 왜 하는 거예요?”

순례 활동을 계획하고 떠나기 전 학생들이 항상 하는 질문이다.

“응, 나와 우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나의 짤막한 대답에 학생은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서 간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학생들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고, 더불어 내 옆에 있는 친구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해주고 싶었다. 힘든 역경에 부딪히면 성격이 보인다고 한다. 이성 친구의 성격을 알고 싶으면 힘든 산을 올라가 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아이들은 여행 도중 금방 본색을 드러낸다. 국토 순례 중간 코스에 산에 오르는 길이 있어 그 산에 오를 때의 일이다. 그동안 많은 길을 걸어왔던 터라 산에 오른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휴, 힘들어, 선생님 못 가겠어요.”

여기저기서 투정 어린 목소리들이 흘러나온다. 심지어는 앞서가는 친구를 시기하는 친구까지 나온다. 다른 사람도 함께 힘들고 지쳐야 하는 데 나만 힘들고 쳐지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그때 저만치 앞서가던 한 친구가 돌아서서 다시 내려온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어딜 가나 저만치 혼자서 가는 그런 친구였다. 그 친구가 제일 뒤에서 처져 불평을 늘어놓던 다른 친구의 가방을 낚아채듯 들고 쌩하니 앞으로 내달렸다. 뒤처진 친구에 대한 살갑지 않은 배려였다. 그 친구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 친구의 선량한 용기와 배려에 힘입은 한 무리의 친구들은 끝까지 불평 없이 산에 오를 수 있었다. 가방을 들어준 아이도, 투덜거리던 아이도 모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느끼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국토순례 활동 기간에 아이들을 보면 평소에 알고 있던 모습과는 많이 다름을 느낀다. 나만 알고 다른 친구에게 준비물 하나 빌려주지 않던 아이가 화장실 간 친구의 가방을 지켜주느라, 함께 버스를 놓치기도 했고, 늘 투덜대며 숙제와 과제를 안 해오며 역할 분담 활동에도 소홀하던 아이가 함께 머물 텐트를 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았다. 서산 방조제 길을 걸으며 힘든 친구에게 물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땀을 흘리며 고생하는 친구에게 손부채를 부쳐주는 모습은 예쁘기 그지없다. 집을 떠나 고생하는 막둥이 동생을 챙겨주는 따뜻한 누나·형들의 마음이 있었다. 좋든 싫든 함께 가야 하는 동료이기 때문일까. 친구를 괴롭히고 싸우거나 따돌리는 모습들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교실을 떠나 제3의 장소에서 함께 한 아이들과의 여행은 교사인 나에게도 새로움을 선사해 주었다. 교직경력이 늘어나며 열정을 바칠수록 반복되는 실망과 마음의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어갈 즈음 아이들에 대한 새로운 사랑이 움트는 소중한 경험이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개학을 기다리게 하는 소중한 추억 하나를 만든 셈이다. 함께 떠나 보자. 교실을 떠나 들과 산에서 만난 우리 아이들은 천사 그 자체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교육 오석진號 출범 준비 본격화… 인수위 동부교육청에 마련
  2. 8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정전…한전 원인 조사 중
  3. 66년 만에 이름 찾은 대전고 학생… 국가유공자 김태진 선생, 기념회 천만원 기탁
  4. [풍경소리] 물의 길을 새기며
  5. [한화에어로 참사] 대표·사업장장 입건… 중대재해·산안법 본격 수사
  1. 대전 신탄진농협-대전청과(주), 짜장면 무료나눔 행사
  2. KDI "중동전쟁 영향 불구, 반도체 호황에 완만한 개선세"
  3. [편집국에서] 애연가의 권리주장(2)
  4. 대전 대동천 하상주차장 15일부터 폐쇄
  5. AI·VR로 첼시 팬 경험 제안… 한남대팀 국제 프로젝트 우승

헤드라인 뉴스


허태정號 출항…`이장우 브랜드` 손질 나서나

허태정號 출항…'이장우 브랜드' 손질 나서나

허태정 대전시장 당선인의 인수위원회가 9일 공식 출범하면서 이른바 '이장우 브랜드'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대전 0시축제와 꿈씨패밀리는 단순한 축제나 캐릭터를 넘어 이장우 시정 4년을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라는점에서 향후 존치 여부와 활용 방향에 지역사회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9일 출범한 인수위는 민선 9기 시정 운영 방향을 설계하는 동시에 민선 8기 주요 정책과 사업에 대한 점검 작업에 착수한다. 허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전임 시정의 정책 우선순위와 행정 기조를 비판하며 일부 사업 재검토 필요성을 언급해 온 만..

한화에어로 참사 일주일 만에 아워홈 용인공장서도 끼임 사고
한화에어로 참사 일주일 만에 아워홈 용인공장서도 끼임 사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폭발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 만에 한화그룹 계열 식품기업인 아워홈 용인공장에서도 중대 산업재해성 사고가 발생했다. 9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6월 8일 오후 2시 50분께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아워홈 용인2공장 4층 어묵꼬치 포장작업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50대 근로자 A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목 부위가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A 씨는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오후 3시 25분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부상자는 의식은 없으나, 심장 박동은 있는 상태"라며 "작년에도..

닭고기 소비자가 1년 새 20%가량 폭등... 밥상 물가와 외식물가 자극하나
닭고기 소비자가 1년 새 20%가량 폭등... 밥상 물가와 외식물가 자극하나

대전 닭고기 소비자 가격이 1년 새 20%가량 폭등하면서 밥상·외식 물가 부담을 키우고 있다. 복날과 월드컵 특수를 앞두고 닭과 관련된 식품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시기에 원재료 가격 급등으로 전체적인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9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8일 기준 대전 육계 1kg 소비자 가격은 7273원으로, 1년 전 6064원보다 19.9%나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5월 말에서 6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6900원으로 7000원선을 위협했으나 7000원을 넘어선 것이다. 대전 육계(1kg) 가격은 부산(7824원)과 세종(754..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 ‘무럭무럭 자라거라’ ‘무럭무럭 자라거라’

  • 대전시장직 인수위원회 현판식 및 전체회의 대전시장직 인수위원회 현판식 및 전체회의

  • 대전 대동천 하상주차장 15일부터 폐쇄 대전 대동천 하상주차장 15일부터 폐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