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마라톤 골인 선을 밟는 한 선수가 눈에 띄었다.
태극무늬의 머리띠를 하고 결승점을 향해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 있었다. 드디어 긴 레이스 끝에 완주한 그는 두 손을 번쩍 들고 감격에 겨워 포옹을 했다. 얼핏 대회 우승자처럼 보였지만 일등으로 들어온 선수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눈가의 주름진 웃음이 2등의 웃음도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도쿄국제마라톤대회서 보여줬던 ‘봉달이’ 이봉주 선수의 모습이다.
이봉주 선수는 대회에 참가하기 전 감독과의 결별, 왼발 부상 등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음에도 98년 로테르담대회에서 자신이 세웠던 2시간 7분 44초를 24초나 앞당긴 2시간 7분 20초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기쁨도 컸을 것이며 그동안의 불미스러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홀가분했을 것이다.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인생처럼 이봉주의 마라톤 인생도 처음부터 호락하지 않았다.
어쩜 태생적으로 달리기하고 안 맞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왼발 248mm, 오른발 244mm로 짝발에 평발인 신체조건은 마라토너에게는 치명적인 조건이었다. 초.중.고 학교 운동회 때 공책 한권 타 본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세 번이나 옮기면서 끈을 놓지 않았던 마라톤은 또한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에게 가려져 2인자로 밖에 비춰지지 않을 때도 그의 앞에는 42.195km의 레이스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다.
질주본능만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기에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됐는지 모른다. 2009년 대전에서 열린 제90회 전국체전 마라톤대회서 2시간 15분25초로 마지막 완주를 했다. 그의 길고 길었던 마라톤 인생은 비로소 결승점을 통과했다. 나이 마흔 살 노장의 44번의 도전이었으며 41번의 완주라는 불멸의 기록은 세계 마라톤 역사에 남았다./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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