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
필자에게 한화이글스가 그렇게 다가왔다. 1982년은 프로야구 원년이다. 필자는 학력고사를 눈앞에 둔 고3이었다. 그러나 프로야구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학교에서 야구장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야구장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소리가 학교 유리창을 두드렸다. 또 야간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야구장 둘레에 심어진 키 큰 플라타나스가 조명등 불빛을 받아 야구장과 함께 연두빛 보석이 되어 반짝거렸다. 게다가 당시 연고팀이던 오비베어스는 9연승을 하며 대전을 들썩이게 만들기도 했다. 투수 박철순ㆍ계형철, 포수 김경문ㆍ조범현, 유격수 유지훤, 외야수 김우열ㆍ김유동ㆍ윤동균 등의 이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그들 중에는 지금도 지도자로 활약해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필자의 기억 속에는 1982년의 그들이 더 익숙하다.
1983년 이후 환경이 바뀌면서 야구장과 멀어졌고, 프로야구는 삶에 없었다. 오비베어스가 한화이글스로 된 것도 사실 잘 몰랐다. 그러다 작년 봄에 처음 제대로 알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이후 놀라운 변화 때문이다. 그 후 '마리한화'라는 말도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마리화나'는 알아도 '마리한화'는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5년을 강타한 한화이글스의 돌풍이 마리한화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것이다. 필자도 어느 순간 열혈팬은 아니지만 그 뜻처럼 한화이글스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화이글스의 대표선수들은 웬만큼 다 안다.
야신이라고 불리는 김성근 감독도 알게 되었다. 필자가 한화에 중독되기 전에는 김 감독을 전혀 몰랐다. 다만 김 감독이 SK와이번즈 감독일 때, 필자의 옆집에 살던 모 스포츠 신문기자가 김 감독의 리더십을 주목해 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왜 하필이면 김 감독일까라고 의문을 갖았지만, 야구를 잊은 탓에 흘려듣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필자는 어느 순간 마리한화가 되었다. 당연히 김 감독을 알게 되었다. 한화이글스 팬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알게 되었다.
필자가 이순신을 연구할 때, 비교 대상은 거의 대부분 과거의 명장들이다. 어제의 역사 속 인물들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에 문득문득 현재 우리 사회의 다양한 리더 중에서 이순신 같은 인물이 있는지 살펴보곤 한다. 그러나 느낌이 확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화이글스를 만나면서 김 감독이 떠올랐다. 마리한화가 되면서 김 감독이 더 궁금해졌다. 필자는 혹시나 하면서 그가 쓴 책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깜짝 놀랐다. 김 감독은 5권 책을 쓴 작가였다. 그의 책에는 그의 삶과 철학이 녹아있었다.
그는 첫 책, '꼴찌를 일등으로'를 읽다가 75세 김 감독이 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힘을 알았다. “매번 인생을 걸고 결정했고, 작두 위에 올라선 기분으로 살았다.” 때문에 그는 삶에서나 야구에서나 “일구이무(一球二無,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를 강조한다. 단 한 번의 기회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김 감독의 철학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김성근이다'에서 그는 또 말한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것, 하겠다는 뜻만 있으면 어떤 역경 속에서도 이룰 수 있다.” 선택된 삶이 아니라 선택한 삶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스스로 삶의 주인공임을 깨닫고 삶을 이끌고 가는 삶이 김성근의 삶이다. 필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75세 김성근만큼 오늘 하루를 살고 있는가.
부진했던 마리한화가 다시 비상을 위한 날갯짓하고 있다. 매 경기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드는 마리한화가 돌아오고 있다. 마리한화가 흘린 땀방울에 기대고 싶은 고달픈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마리한화여! 져도 좋다. 오직 매 순간 최선을 다해라!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그런 패배조차 위로가 된다. 승리하는 장수의 삶은 언제, 어디서나 똑 같다. 준비 없이, 연습 없이, 치열한 열정 없이 그 무엇도 이룰 수 없다. 마리한화여! 그 진실을 증명해 보여라!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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