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춘추] 당신의 '님'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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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춘추] 당신의 '님'은 누구입니까?

  • 승인 2016-05-25 14:20
  • 신문게재 2016-05-26 22면
  • 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 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 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중략/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을 휩싸고 돕니다.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서 배운 바 있는 너무나 잘 알려진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이다. 이 시에서 말하는 '님'이 누구이냐를 묻는 것은 단골 시험문제였던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 시의 서문에서 만해는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했듯이 님은 어느 특정한 대상으로 한정되지 않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님은 읽는 사람에 따라 사랑하는 연인일수도, 나의 조국과 민족일수도, 평생을 통해 추구하는 진리자체일 수도 있다. 다만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옥고를 치루면서 치열하게 독립운동가로서 싸웠던 그의 생애를 볼 때, 그에게 가장 그리운 존재가 누구였는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일제의 통치에 억눌려서 신음하던 민족의 상황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음이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님이 떠나버려서 부재(在)하는 '님의 침묵'이 의미하는 바를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떠나서는 해석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한용운의 시에서 님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빼앗긴 조국이 된다.

요즈음 또 다른 '님'을 해석하는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기념식에서 제창으로 부르는 것에 대한 찬반양론이다. 다음은 노랫말 일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중략/벗이여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중략/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산자여 따르라. 이곡의 제창을 반대하는 이유에는 분명 생각해볼만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 곡의 의미와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까지 제창으로 일률적으로 부르게 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적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또 애국가가 아직 국가공식기념곡으로 지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곡의 국가기념곡 지정은 애국가의 위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곡의 제창을 반대하는 주장의 가장 큰 근거로서 이 노래가 1991년부터 북한에서 제작한 선전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에 삽입되었고 당시 북한을 불법 방문한 황석영이 공동대본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또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임'은 바로 김일성을 의미하므로 그런 종북노래가 국가기념곡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우리가 민주주의의 봄을 빼앗아간 군부독재의 현실 속에서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불러왔던 그 '임'이 결코 '김일성'이 될 수 없음을, 그 '임'은 바로 김일성과 같은 독재자가 빼앗아간 '자유'이자 '민주주의 가치'인 것이다. 아리랑을 북한선전매체가 이용하면 아리랑이 북한을 찬양하는 종북노래가 되고, 아리랑의 가치가 훼손되는가?

황석영은 그 후 자신을 이 영화에 공동대본가로 넣은 것은 북한의 일방적인 행위였다고 해명하였다, 설사 그가 자발성을 갖고 관여했더라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황석영이 지은 것이 아니며 일부 발췌하여 사용한 것에 불과하며 이 시의 원작자 백기완은 '나는 이 노래의 소유권도, 저작권도 갖고 있지 않다. 이미 이 땅에서 새날을 기원하는 모든 민중의 소유가 됐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여기서 합창이 옳을지 제창이 옳은 것인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제발 우리가 젊음을 보내며 사모했던 그 '님'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어두운 시대에 민주주의의 제단 앞에 뿌려진 피와 희생에 감사하는 한편으로 부끄러워하는 평범한 청춘을 보낸 사람들의 추억마저 왜곡시키지 말아달라는 말이다.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는 한용운의 시구와 님을 위한 행진곡에서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는 구절에서는 그 시대인의 가슴이 품었던 희망을 느낀다. 조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향한 승리의 희망이며,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소중한 자산임을 잊지 말자.

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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