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사진=이한열기념사업회 |
29년이라는 시간은 기억마저도 바스러진다. 짝 잃은 이한열의 운동화도 그랬다.
주인을 잃고 홀로 남겨진 타이거 운동화도 세월에 산화돼가고 있었다. 흰색의 타이거 운동화는 누렇게 변했고, 밑창은 너덜너덜 헤져있었다. 그랬던 운동화에 생명을 불어 넣은 이가 있었다.
복원 전문가 김겸은 이한열 28주기였던 작년에 잊혀가는 시간의 조각을 맞추듯 운동화를 복원했다. 그리고 올해 소설가 김숨은 김겸의 복원작업을 씨줄과 날줄을 엮듯 촘촘히 써 내려간 책 ‘엘(L)의 운동화’(민음사)를 출간했다.
▲ 1987년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사진=연합db |
사망선고가 내려졌던 이한열의 운동화는 새롭게 생명을 얻었다. 오늘(9일)은 이한열이 자신의 신발을 잃어버린 날이다.
1987년 6월 9일, 다음날 열릴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는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가 열렸다. 시위하는 도중 이한열은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같은 대학교 학생 이종창에 의해 부축을 받은 채 피를 흘리는 사진은 당시 로이터 사진기자였던 정태원이 촬영해 중앙일보, 뉴욕 타임스 1면에 실리기도 했다.<위 사진․위키백과 참조>
병원으로 옮겨진 이한열은 혼수상태에 빠졌고, 한 당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이 젊은 청년의 죽음은 국민들을 울분에 쌓이게 했고, 6월 항쟁을 이끌었다.
▲ 이한열 열사 운동화가 복원을 마치고 전시된 모습/사진=연합 |
이한열의 오른쪽 운동화가 남겨진 것은, 연합뉴스에 따르면 시위 현장에 있던 한 여학생이 이한열의 발에서 떨어진 운동화를 보고 “운동화가 있어야 집에 갈 텐데”라고 생각해 병원까지 따라와 어머니에게 운동화를 건네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한열은 그 신발을 신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한 청년이 만들어낸 ‘역사의 족적’으로 남아 있다./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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