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입북한 임수경이 북한 청년들과 춤을 추고있는 모습/사진=유튜브 |
1980년대는 민주화 운동이 불을 뿜고, 미국 대사관 코앞에서 반미 시위가 매몰차게 울려 퍼졌으며, ‘조국 통일’이라는 단어를 입버릇처럼 쏟아내던 시대였다.
그 시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시위의 한복판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손을 흔들며 독재 권력에 대응했던 기억의 한 자락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운동권이 아닌 학생이었다고 할지라도 생생하게 각인된 여학생이 있었다. ‘통일이 꽃’으로 불렸던 임수경이었다.
▲ ‘전대협 여학생 1명 비밀입북’이란 제목아래 임수경 입북기사가 실렸다./사진=중도일보 1989.6.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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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만 21세로 아직은 앳된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방북해 북한 주민들로부터 환영받는 모습은 남북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그녀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 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대표로 참가한 것이었다.
일본을 거쳐 서독과 동독을 우회로 선택해 장장 9일간의 대장정 끝에 평양의 하늘에 도착한 것이 벌써 27년 전인 오늘(30일)이었다. 남한의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깜짝 쇼에 어떤 이들은 환호했는가 하면, 혹자는 ‘철부지’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한보다는 북한의 충격이 더 심했다. 북한은 ‘굴러들어온 복’ 임수경을 통해 남한을 압박하고 북한 체제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려 했지만, 불똥은 오히려 북한 쪽으로 튀었다.
▲ 김일성과 만나고 있는 임수경(왼쪽 사진)과 8월15일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는 모습/사진=유튜브 |
남한의 인사로 그전까지만 해도 황석영 작가, 문익환 목사 등 나이 지긋한 방문객만을 봐왔던 북한은 임수경이라는 발랄한 대한민국 여대생의 모습에 쉽게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통일의 꽃’ 임수경이 북한 땅을 밟으면서 이야기꽃이 발했다. 펌이 풀린 듯한 단발머리와 티셔츠, 그리고 북한에서는 금기시했던 청바지 차림의 임수경은 미제의 식민지에서 헐벗고 고생하는 불쌍한 모습이 아니었다.
흰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고 김일성을 만나는 장면은 자유분방한 남한 대학생의 당찬 면모를 전 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북한의 권력세습을 비판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의 행동에 북한이 경악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들의 눈은 임수경의 일거수일투족에서 한시도 떼지 못했고, 헤어스타일부터 패션까지 관심의 대상이 됐다. 후에 임수경이 되돌아오고 나서 헤어스타일과 짧은 면 반팔이 북한에서 유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을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판문점을 넘어서 돌아온 것이었다. 이런 행동은 그동안 철저하게 고립됐던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갖게 된 계기가 됐다.
임수경의 방북으로 하루아침에 통일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토의 땅 북에 작은 통일의 꽃씨를 뿌렸던 소중한 역사였다.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오늘이 못내 아쉽다./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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