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눈] 선물과 김영란법

  • 오피니언
  • 미디어의 눈

[미디어의 눈] 선물과 김영란법

  • 승인 2016-08-25 13:33
  • 신문게재 2016-08-26 23면
  • 우난순 교열·지방부장우난순 교열·지방부장
▲ 우난순 교열·지방부장
▲ 우난순 교열·지방부장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세상에 공짜 선물 없다는 걸 알면서도 넙죽넙죽 받아 먹었다. 택배기사로부터 알림문자를 받으면 부담스런 마음이 앞서지만 '에이, 남들도 다 그러는데 뭐' 애써 자위하곤 했다. 이렇게 못이기는 척 받다보니 어느덧 그 선물에 익숙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모든 인간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가 성립한다. 조건없이 주고받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대가와 보상을 전제로 한다는 거다. 하물며 업무와 관련 있는 관계에서 주고받는 선물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선물은 무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강제적이며 타산적인 것이라고 했다. 예컨대, '호의는 호의를 낳는다', '뿌린 만큼 거둔다'만큼 선물의 목적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없어보인다. 그래서 선물은 부작용도 따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패리스의 심판'은 황금사과 선물이 트로이 전쟁을 초래했음을 경고했다.


장난처럼 시작한 사과라는 선물이 무시무시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신화를 통해 인식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물을 통해 나타나는 갑을관계에서 비롯되는 타락은 뇌물의 성격을 띠어 국가적인 쟁점이 되기도 한다. 군사독재가 판을 치던 5·6공 시절, 통치권자에게 바치는 뇌물의 규모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좌우됐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정주영씨는 뇌물성 기부에 대해 마지못해 한 거라고 고백했다. 당시 상황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국제그룹이 한순간에 해체되는 걸 보면서 뻗대고 있을 경영주가 누가 있을까.

선물과 뇌물은 그 경계가 참으로 모호하다. 수십억원을 받고도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뇌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철창행을 면하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를 우리는 지겹도록 봐 왔다. 권력형 비리임이 뻔하지만 스폰형 선물이라고 해서 호의와 선물로 대상을 관리하는 경우는 법적판단이 오락가락하기 일쑤다. 이완구와 고 성완종, 진경준과 김정주의 공방전은 차라리 촌극에 가깝다. 줬네, 안받았네, 선물이네, 아니네…. 푼돈으로 시작해서 거금으로 불어난 '선물'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광스런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법정에 서는 위치로 추락하고, 대학 동기라는 끈끈한 인연은 한순간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됐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유독 부패문제가 심각한 건 급속한 경제성장, 아시아적 농경문화, 기업지배구조의 문제로 꼽는다. 특히 학연과 지연으로 얽히고 설켜 '우리가 남이가'라는 민족성 특유의 끈끈한 인간관계가 부패문제에 대한 도덕적 판단력을 무력화시킨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지언정 아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는 건 꽤나 어려운 사회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탐욕을 먹고 자라고 그것은 다시 인간의 탐욕을 키운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시장은 언제나 부패가 만연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5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6점을 받았다. OECD 34개국 가운데 27위를 했다는 건 거의 꼴찌수준이다.

이름하여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9월 28일 시행된다.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농축산업계를 비롯 국내경제가 크게 위축될 거라고 한다. 기자협회는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포함됨으로써 취재활동의 제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우리사회의 병폐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증거다. 이참에 공무원과 기업, 기자라는 마의 트라이앵글의 유착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김영란법은 '걸리는 게 바보'로 전락할 것이다.

잊을수 없는 선물이 있다. 몇 년전 지리산 둘레길을 걷던 중 냇가에서 놀고 있는 예닐곱살 먹은 아이들을 만났다. 반가움에 아는 척을 했더니 “이거 드세요”라며 손에 들고 있는 초코파이를 주는 게 아닌가. 그 코흘리개들이 갖고 다니면서 하도 조몰락거려 떡이 된 초코파이를 먹으며 목이 메어 기침을 계속 했었다. 아이들과 나 사이에 무엇이 오갔을까.

우난순 교열·지방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터뷰] 진성철 특허법원장 "지식재산 국경 없는 경쟁시대, 국민과 기업권리 보호"
  2. 초등 기초학력 지원 4~6학년은 '사각지대'
  3. "충남 스마트 축산단지, 갈 길 먼데…" 용역비 전액 삭감 논란
  4. 내포 명품학군 조성될까… 영재학교·충남대 내포캠·KAIST 연구원·의대까지
  5. [기고] 26일 첫 '순직의무군경의 날'을 맞아
  1. 의대수업 재개 학생 없는 빈교실 뿐… "집단유급 의사인력 우려"
  2. [4월 21일은 과학의날] 생활주변방사선 피폭 최소화 '국민 안전 최우선'위한 KINS의 노력
  3. 순직 소방공무원 합동안장식
  4. 금융소외계층 울리는 불법사금융 범죄 매년 증가
  5. '초소형군집위성 1호' 24일 오전 7시 32분 발사, 임무궤도 안착하고 교신 성공

헤드라인 뉴스


항우연 연구자들 징계 위기… 노조·조승래 의원 “표적감사 규탄”

항우연 연구자들 징계 위기… 노조·조승래 의원 “표적감사 규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노동조합과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국회의원(대전 유성구갑)이 항우연 연구들에 대한 정부의 감사 처분 철회와 탄압 중단을 요구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승래 의원과 서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한국항공우주연구원지부(항우연 노조)는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항공우주연구원 표적·보복감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3년 9월 4일부터 올해 3월 27일까지 206일간 항우연을 대상으로 특정감사를 벌여 최근 결과를 통보했다. 과기정통부는 감사 결과 공개를 거부하고 있으나, 전..

류현진 100승 재도전 실패의 의미...한화이글스, 반등 가능할까
류현진 100승 재도전 실패의 의미...한화이글스, 반등 가능할까

한화이글스가 최근 거듭된 악재 속 연패까지 기록하면서, 리그에서의 순위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침체한 팀 분위기 속 최원호 감독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4월의 마지막 일정을 통해 한화가 반등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현시점에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류현진의 프로야구 KBO리그 개인 통산 100승 재도전의 실패다. 류현진의 100승 기록 달성은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쉽게만 보였던 도전 과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4월 24일 경기도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 wiz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

`FC 프로 마스터즈` 26일 대전서 개막… 아시아 4개국 최강자 가린다
'FC 프로 마스터즈' 26일 대전서 개막… 아시아 4개국 최강자 가린다

한국, 중국, 태국, 베트남 총 4개국이 참가하는 국제대회 'FC 프로 마스터즈'가 26일 대전 이스포츠 경기장에서 개막한다. 대전시와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지원하는 'FC 프로 마스터즈'는 FC(전 FIFA 온라인 4) 리브랜딩 이후 개최되는 첫 국제대회로 28일까지 진행된다 'FC 프로 마스터즈'는 'FC 온라인' 경기와 'FC 모바일' 경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FC 온라인' 대회는 KT롤스터와 광동프릭스가 한국 대표로 출전하고, 'FC 모바일' 대회는 'SODA'와 'JOSCAR'가 경기를 치른다. KT롤스터와 광동프릭스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청권 광역 응급의료상황실 방문한 한덕수 총리 충청권 광역 응급의료상황실 방문한 한덕수 총리

  • 지하식 소방용수 인근에 쌓인 건설폐기물 지하식 소방용수 인근에 쌓인 건설폐기물

  • 한자리에 모인 대전 신기술 개발제품 한자리에 모인 대전 신기술 개발제품

  • CTX 출발역인 정부대전청사역 현장점검 나선 백원국 차관 CTX 출발역인 정부대전청사역 현장점검 나선 백원국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