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는 지존파 범인들/사진=1994년 9월 25일자 한겨레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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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추석은 ‘살인의 추억’이 됐다.
22년 전 9월 19일 '이날'은 세월이 흘러도 어린아이들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엽기적인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인 ‘지존파’가 체포됐다. 추석 이틀을 앞둔 날이었다. 5명을 죽인 이 범인들의 살인 행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그때 먹은 송편이 아직도 명치에 걸린 듯하다.
지존파는 김기환을 중심으로 강동은, 김현양, 강문섭, 문상록, 백병옥 등 20대 청년과 17세 송봉은이라는 가출 소년이 모여 1993년 범죄조직을 만들었다. 모두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이들은 사회, 특히 부유층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쳐있었다. 조직 이름도 ‘마스칸’이라 지었는데 ‘야망’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고대 그리스어다. 지존파라는 이름은 이들을 체포한 형사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우리는 부자들을 증오한다’라는 행동 강령을 만들어 오렌지족, 야타족, 부유층을 범행 대상으로 삼아 서울 한 백화점의 고객 명단을 입수하기도 했지만 실제 그들의 손에 죽어가 사람들은 평범한 서민들이었다.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 배신자에 대한 살인도 무자비했다. 아직 어린아이였던 송봉은은 첫 살인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리던 중 300만 원을 빼내 도주하려다 붙잡히자 조직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두 번째 희생자가 됐다.
▲ 카페 악사 살인 현장검증하고 있는 범인들 모습/사진=1994년 9월 23일자 한겨레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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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들은 카페 악사를 살해하고 그와 동행했던 종업원 여성은 조직 내에 살려뒀는가 하면, 벌초하던 작은 기업체 부부를 납치해 8000만 원을 강탈한 후 살해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범행의 표적이 된 것은 모두 고급차를 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범인들이 그리 증오하던 부유층은 아니었다. 한 사람은 그저 밤무대에서 하루를 살아가던 사람이었고, 또 다른 희생자들은 자수성가로 이제 좀 살만했던 사람들이었다. 평범했던 5명의 생명은 그렇게 희생됐다.
지존파의 범죄 행위는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엽기적이었다. 시신을 훼손하고 소각로까지 설치해 불태우는 등 흉악했고, 이 사건이 드러나게 된 것은 납치됐던 카페 여종업원에 의해서였다. 범인 중 한 명인 김현양이 다이너마이트를 잘 못 만져 폭발했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전남의 한 병원으로 치료하러 가면서 그녀와 동행하게 됐다. 그녀는 김현양이 치료받는 동안 핸드폰과 현금 50만 원을 맡게 되자, 그 즉시 서울로 도망해 서초경찰서에 신고해 지존파를 세상에 알렸다.
지존파에 대한 뉴스는 경쟁적으로 도배됐고, 하루하루 전해지는 엽기적인 범행에 국민들은 진저리를 쳐야 했다.
“나는 인간이 아니야, 더 못 죽여서 한이 맺힐 뿐이다.”
화면 속 범인의 얼굴은 자신의 말대로 인간이 아닌, 악마의 그것이었다. 불후했던 자신들의 환경이 결국 늪이 돼 영혼까지 팔아버린 살기 어린 표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그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무방비하게 방치한 우리의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역사를 되짚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다. 우리 사회가 지존파와 같은 악마를 또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독여 볼 때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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