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적십자사가 남한 수재민에게 보낸 물자 인수 모습/사진=e영상역사관 |
‘해방 후 처음 겪는 대재앙’
북한이 지난 2일 발생한 최악의 홍수를 두고 한 말이다. 함경북도 두만강 유역에서 발생한 물난리는 130여 명의 사망자와 400여 명의 실종자를 냈으며 삶의 터를 잃은 이재민이 12만 가구를 넘는다고 발표했다.(UN집계. 피해규모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닌’ 물난리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폐쇄적이고 고집불통인 북한이 국제사회에 수해복구 지원까지 요청하는 것을 보면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될 법도 하다. 그럼에도 남한에 요청이 없는 것을 보면 그들도 염치는 있는 것일까. 핵을 터뜨리고 불바다 소리나 하는 마당에 뭐가 예뻐서 도와줄까 싶다.
그럼에도 사람이 죽고 집을 잃고, 이제 곧 추위가 들이닥칠 계절이다 보니 배고픔과 추위에 떠는 동포의 모습이 짠하기도 하다. 그래도 같은 민족이 아니면 누가 보살필까, 이제라도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 ‘인정(人情)이겠지만, 우리의 생각과 정부의 생각은 또한 멀고도 멀다. 민간단체 차원에서 긴급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지만, 이번 기회로 정부가 나선다면 그동안 남북한 냉전 기류에 변화를 기대할 법도 하다.
1984년 9월 29일에 있었던 남북한의 관계가 그랬다. 이날 수해를 입은 남한을 위해 북한 쌀이 도착한 날이다.
당시 8월 31일부터 서울·경기·충청 일원에 4일간 집중호우가 내려 한강이 범람하고 전국적으로 189명이 사망하거나 실종, 150여 명이 부상됐으며 35만 명의 이재민과 피해액이 1300억 원에 달했다.
엄청난 수해를 당한 남한 소식에 북한은 선뜻 쌀 5만 석과 옷감, 시멘트, 의약품 등을 보내겠다고 제의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던 그때, 북한의 도움을 받아야할 지 고민이 깊었다. 바로 한 해 전에 일어난 미얀마 아웅산 테러에 대한 앙금이 채 가라앉지도 않았던 시점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분위기 조성은 필요했기에 쾌히 승낙하게 됐다.
32년 전인 ‘오늘’ 판문점과 인천·북평(동해)항으로 수해물자가 들어왔고, 남측은 담요와 라디오, 양복지 등이 들어있는 답례품을 보냈다. 수해지역에 분배된 북한 쌀이 좋지 않아 떡을 해먹은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실향민들은 처음 맛보는 고향 쌀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형편도 좋지 않은 북한이 부린 허세는 그동안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물꼬를 트는 구실이 됐다. 이후 10월 12일 남측이 남북경제회담 개최를 제의했으며 이듬해인 1985년에는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1973년 이후 12년 만에 재개됐기도 했다. 그 결실은 9월에 맺어졌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서슬 퍼런 공안정국이었던 전두환 정권시절에도 이런 훈훈한 남북의 정이 있었다는 데 놀라울 뿐이었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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