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사진=연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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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에 대한 국정 농단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모든 언론들의 눈과 귀가 최순실 사건에 몰려있다 보니 국민들은 쏟아지는 양에 치이고 폭로되는 내용에 기겁을 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첫 포문을 연 것은 지난 7월 26일 TV조선이 ‘청와대 안종범 수석, ‘문화재단 미르’ 500억 모금 지원’이라는 단독 기사를 보도하면서 비선 실세에 대한 의혹이 대두됐다. 그러나 후속 보도가 이어지지 않았고, 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갈등이 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이후 전담팀을 꾸린 한겨레가 9월 22일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보도로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렸으며, 비정상적인 전경련 후원금 모금과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대학 특혜 의혹 등을 다루면서 ‘최순실 의혹’은 이제 가래로 막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jtbc ‘뉴스룸’이 최순실 컴퓨터 분석 결과, 청와대 문서가 다수 담겨 있는 것이 공개되면서 ‘최순실 게이트’의 쐐기를 박았다.
▲ 한성순보/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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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집요한 사실 확인으로 최순실 사건은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은 3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언론 단체 비상시국 기자회견을 같고 이번 파문의 실체와 진실을 끝까지 밝혀낼 것을 다짐할 것으로 보인다.
신문과 방송은 때론 질타의 대상으로 때로는 국민들의 대변자임을 긍지로 여겨왔던 대한민국 대표 언론이었다. 그 가운데 근대 언론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한성순보’는 1883년 10월 31일(고종 20년 음력 10월 1일) 한국인이 발행한 최초 근대 신문이었다. 바로 오늘 첫 발행을 했다.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박영효의 건의로 통리아문 내에 박문국에서 창간했다. 한성순보는 위키백과에 의하면 한 달에 세 번 발행됐고 전체 18면이 제본된 잡지 형태였다. 1부에 30전으로 당시에는 다소 비싼 가격이었다. 국학문으로 펴내려 했으나 활자 문제로 순한문체의 관보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외국 신문을 번역, 서양의 문화, 정치, 사상, 지리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성순보는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으로 박문국에 불이나자 ‘제36호’를 끝으로 신문 발행이 중단됐다가 2년 후인 1986년 1월 25일 ‘한성주보’로 다시 태어났다. 한성순보는 국민의 문견(聞見)을 확대하고 교화와 국민들의 고통을 찾아내 전달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누렇게 빛바랜 한성순보의 모습에도 언론의 역할은 133년의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김은주 기자
*위 기사는 ‘한국신문역사’와 ‘기자협회보’를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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