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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단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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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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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신혼여행 중이던 조지 W. 부시가 신출내기 수습사원처럼 대통령 업무를 익히고 있었을 때다. 워낙 자리가 자리이다 보니 만만찮은 점이 한둘 아니었을 게다. 그는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김정일 위원장이나 후세인 대통령이 아니라 백악관 속어(俗語)였다고 실토했다.


짐꾸러미(패키지)는 차량에 탑승한 대통령, 푸른 색 거위(블루 구스)는 대통령 전용 연설대, 축구공(풋볼)은 대통령의 군 보좌관이 들고 다니는 국가안보 관련 정보가 든 검은 색 가방 등등 도무지 암호만 같은 이런 말들을 그의 비서나 경호팀이 자재로이 사용하니 천하의 미합중국 대통령이지만 텍사스 주 사투리에만 능한 처지인지라 쩔쩔맸던 건 당연하다.


그러던 그가 방미 중인 우리 대통령을 향해 디스 맨(this man)이라 부른 것을 두고 일국 원수에 대한 무례다 아니다 하는 논란이 일었었다. 문득 12・12사태 직후 당시 우리 나라의 최고 실권자를 ‘가이(guy)’라고 표현하며 우리더러 ‘쥐새끼’처럼 우글거린다고 휘갈겼던 ‘타임’지의 기사가 연상되는 건 왜일까?


그때 일도 유야무야 잊힐 만하니 느지막이 워싱턴 정가에서 반론이 튀어 나왔다. 말인즉 상대에 따라 다르지만 ‘이 분’이나 ‘이 대단한 분’의 뜻이 담겼으므로 전혀 문제가 안 되는 사안이라는 일축이었다. 적어도 이 사람이나 이 양반으로 하지 않은 걸로 해석해 달라는 소리쯤으로 들린다. 백악관 통역을 맡은 통역관(한국계인 김동현 씨가 아닌가 한다)의 설명인데, (만약 그라면) 그는 공동기자회견 당시 “그것은 우리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본래 의미와 동떨어지게 통역해 잠시 회견장을 술렁이게 한 장본인이다.


본디 영어라는 말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 이것, 이 물건, 이 일, 이 사람이 몽땅 디스(this)로 표현된다. 사람을 가리키면 이 분, 이 사람, 이 자도 될 수 있다. 영국에서는 총리를 프라임미니스터라고 한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이름을 넣어 미스터 메이저, 존 메이저 등으로도 쓰지만 아무도 시비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렇다. 양반(兩班)은 원래 지체 높은 사대부 계층이었다. 자꾸 쓰다 보니 지금은 대접도 되고 홀대도 된다. 영감(令監)은 정3품, 종2품을 나타내는 칭호였으나 법관, 군수, 심지어 면장에게도 썼고 뜻이 변해 노인들더러 영감이라 한다.


그러니 부르는 사람의 마음에 의존할밖에 도리가 없다. 이 양반이라 했는지 이 대단한 분이라고 했는지 그 대단한 분은 안다. 푸른 색 거위 앞에서 무슨 의미로 말했는지는 그 ‘짐꾸러미’만이 알 것이다.


촛불시위 보지 못했냐? 그 ‘짐꾸러미’가 앞으로는 대한민국의 ‘짐꾸러기’를 만만히 보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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