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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 욱쟁이의 레알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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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0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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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우난순 기자
▲그림= 우난순 기자


어제도 욱, 오늘도 욱, 내일도 욱? 나는 욱쟁이다. 걸핏하면 욱하는 성질 때문에 인생이 고달프다. 이건 아니잖아 싶으면 순간적으로 피가 머리로 쏠리면서 격하게 확 내질러버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치고 만다. 폼페이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파묻은 베수비오 화산폭발 버금가는 이 욱하는 성질머리를 어찌 할까. 그래서 후유증도 크다. 그런 날 밤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와 자책으로 온 밤을 지새우며 몸을 베베 꼰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도 두 트럭은 될거다. 큰언니를 울린 적도 있고 셋째오빠와는 지금도 서먹서먹하게 지낸다. 명절 때나 엄마 아버지 생신 때 만나도 의례적인 말만 주고받을 뿐, 애써 서로 피하기 일쑤다.

이놈의 성깔은 나이도 안 먹는 모양이다. 몸은 늙어가는데 불같은 성질은 지구를 불태우고도 남을 만큼 활활 타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이건 불치병이다. 무좀보다도, 천재시인 보들레르의 목숨을 앗아간 매독보다도, 올림머리에 집착하며 아직도 난 아무 잘못 없다는 박근혜의 도덕불감증보다도 지독하고 징글맞다. 변명같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크고작은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하다. 직설적이고 불같은 사람이라면 백배 공감할테고 이성적으로 감정컨트롤이 가능한 소유자들은 혀를 끌끌 찰 지도 모른다. 자, 그럼 몇가지 사례를 얘기해 보겠다.

사건 하나. 20대 중반, 오랜만에 친구와 속리산에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대전동부터미널로 가서 표를 끊고 터미널 내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먹을 요량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꽤 많았다. 다들 막간을 이용해 만둣국, 라면, 떡국 등을 서둘러 먹기 바빴다. 자세히 기억에 안 나지만 우리도 뭔가를 시켜 먹고 계산을 하다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우리가 원래 시켜 먹었던 음식 값보다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예를 들면 어묵종류 세가지 넣은 걸 시켰는데 네가지 넣은 걸 내놓고 먹고나니까 자기네가 잘 못 들은 것 같다고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도 좀 전에 우리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거다. 상습적이었다. 뜨내기 손님들이니까 그렇게 바가지 씌워 등쳐 먹는 사람들이었다. 난 두팔을 걷고 따졌다. “아주머니, 장사 이렇게 해요? 경찰 부를까요? 신문에 나오고 싶어요?” 주인은 그제서야 시침 뚝 떼고 몰랐다, 음식값 안 받겠다는 둥 무마하기 급급했다. 더 웃긴 건 손님 중 한 아저씨가 한 말이다. “아가씨, 뭘 그렇게 따져. 그러려니 하지.”

사건 둘. 29살 때였던 걸 똑똑히 기억한다. 후배와 부산에 가기로 하고 대전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땐 석간신문 체제로 오후 2시까지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대전역 방향 시내버스를 탔다. 토요일이라 버스 안은 승객으로 꽉 찼다. 얼마를 가다 등에 멘 배낭 지퍼 여는 소리가 찌익- 하고 들렸다. 정말 배낭이 반쯤 열려 있었다. 내 옆에 서 있는 남자가 분명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사지 멀쩡해 가지고 소매치기나 하고, 인생 그 따위로 살아?” 그 소매치기가 내 귀에 속삭였다. “야 이년아, 죽고 싶어?” 그러면서 점퍼 안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온 몸의 피가 손발로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오줌을 쌀 것 같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다들 모른척 할 뿐이었다. 소매치기는 몇 정류장 지나서야 내렸다. 그 짧은 순간이 영겁처럼 길었다. 내 앞에서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덜덜 떨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아가씨, 그럴 땐 가만히 있어야 돼. 큰일 나.” 그 뒤로 한동안 시내버스를 타지 못했다.

사건 셋. 얼마전 일이다. 직장 상사에게 욕을 했다. 휴대폰 문자로 아주 찰진 욕을 해버렸다. 타인에게 이렇게 욕한 건 처음이다. 남자들이 평소 자기들끼리 하는 욕을 생각해 보라. 아니면 누아르 영화에서 조폭들이 하는 욕의 수위를 상상하면 된다. 없는 데선 나라님도 욕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모이기만 하면 다른 사람 욕을 한다. 그건 인간의 본능이다. 앞에서는 싫어도 좋은 척 굽신거리지만 안 보는데선 잘근잘근 씹으며 스트레스 해소도 하고 자기들만의 비밀을 공유하는 동지의식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데, 난 대놓고 욕했으니 대형사고를 친 셈이다. 아무리 나보다 한 살 아래지만 어쨌든 윗사람 아닌가. 그것도 누구나 아는 회사 실세한테 쌍욕을 해댔으니 친구가 기겁할만도 하다. 그런데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것처럼 속이 후련하고 짜릿했다. 이참에 욕쟁이 아줌마로 데뷔할까? 며칠 후 사과문자를 보냈지만 묵묵부답.

여자들이 갱년기가 되면 여성 호르몬이 줄어 남자처럼 터프해진다던데 그래서 그런가? 아냐, 난 아직 폐경이 안됐는데 설마 갱년기전증후군? 아무튼 머리 빡빡 밀고 절로 들어가 도닦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거기서도 주지스님에게 짱돌 던지지 말란 법도 없겠지만. 여자는 야생의 늑대, 남자는 겁많은 토끼. 달려라 토끼!

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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