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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해도 해도 너무 하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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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1-12 00:00 수정 2018-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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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나진요양병원에 지인 문병을 갔다. 휴게실에 들어서자 거기에는 이집 저집 환자들과 가족들이 무료한 시간을 달래며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곳은 세상사 잡다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재래시장 같았는데 그중 하나를 들어 세인의 가슴에 타산지석의 돌을 던져보고자 한다.

노인학대 (1)
게티 이미지 뱅크
몇 달 전에 나진요양병원에 87세 된 할아버지가 입원을 했다. 할아버지 아들은 재력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괜찮은 서울서 사는 사업가였다. 몇 달 만에 사업가 아들은 아내를 어떻게 꼬드겼는지 전례 없이 그 아내가 시아버지 문병 오는 남편 차에 탔다. 남편은 운전을 하고 아내는 말벗으로 옆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못내는 비싼 외제 승용차를 타고 왔다. 조수석에는 근사하게 차린 귀부인 티가 나는 아내가 타고 있었다. 화사한 차림의 아내는 수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에 최고급 다이아 보석 반지를 끼고 있었다. 제법 값이 나가는 유명 연예인들이나 하는 목걸이에 최신 의상도 빼놓지 않았다. 거들먹거리고 앉아 있는 폼에 여전히 흐르는 오만 기는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았다. 오만한 데다 사람 우습게 여기는 보물단지는 어디서 모셔온 명품인지는 몰라도 다이아 보석반지 이상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다녔다. 주차는 병원 건물 아래 있는 주차장에 했지만 며느리는 내리지 않고 조수석을 지키고 있었다.

값이 비싼 외제차라 불안해서 그랬던지 외제 명품으로 둘둘 감은 부인은 그냥 조수석에 앉아 차를 열심히 지키고 있었다. 아들만 내려 병원 건물 요양 동으로 가고 있었다. 아들은 건물 7층에 있는 아버지 입원실로 가는 엘리베이터 7층 숫자를 눌렀다. 여느 땐 순서를 기다려야 탈 수 있었던 엘리베이터가 그 아들이 탈 때쯤은 두 세 사람 정도밖에 없었다. 아들을 빨리 보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 마음을 하늘도 헤아려 주시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가족이 그리워 자고새면 복도통로에 휠체어를 타고 나와 창밖 너머로 보이는 고향 하늘 쪽 산만 바라보고 한숨 쉬며 일과처럼 눈물을 흘리다가 오늘 당신의 핏줄인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오매불망 그리던 당신의 혈육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으랴!

휠체어 탄 할아버지 한 쪽 팔에는 링거 수액이 들어가는 주사바늘이 꽂혀 있었고 다른 한 손은 아들 손을 붙들고 놓을 줄을 몰랐다. 글썽이는 눈물을 주체 못하면서도 손을 놓았다간 다시 헤어진다는 두려움에 손을 놓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가족이 그리워 아니, 당신의 핏줄인 아들이 반가워 손을 놓질 못하는 할아버지는 아들과 이런 저런 얘길 하다 보니 시간이 벌써 30분이나 흘렀다. 조수석에서 내리지 않고 있던 며느리가 10분이 멀다하고 시계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하다가 울화가 치미는지 시아버지 입원실에 있는 남편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차에 앉아 있는 며느리가 남편한테 하는 말이 "빨리 갔다 오랬더니 뭐 하느라고 아직까지 안 내려와! 병실서 살 거야? 아이 속 터져…!"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며느리란 존재가 병원 주차장까지 왔으면 입원실까지 가서 시아버지 뵙는 것이 당연지사이거늘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었다. 사람 같은 사람이라면 동네 사람이 입원해 있어도 찾아가 보는 것이 상례이거늘 그 며느리는 딴 남만도 못하였다. 병환 중에 있는 시아버지는 안중에도 없고 남편 안 내려온다고 남편을 풀 먹은 강아지 나무라는 식이었다. 함께 사는 사람이, 사랑하는 남편이라면 그 남편은 할아버지 아들 아니고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인가!

어찌 사람으로서 이럴 수가 있으랴!

며느리는 말만 사람이지 짐승만도 못한, 집에서 기르는 말만 할 줄 아는 짐승임에 틀림없었다. 차림새는 화려한 귀금속과 돈으로 칠하고 바르기는 했지만 인면수심의 희귀 동물임에 틀림없었다. 겉은 화려한데 심성은 쓸 만한 어떤 구석도 없었다. 그야말로 비단보에 개똥을 싼 격이었다. 사람이라지만 사람다운 모습은 약에 쓸려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우리 주변엔 사람냄새 풍기며 칭송받고 사는 며느리들도 많건만 이 며느리는 보석반지를 대가로 받고 악부(惡婦) 악처를 대역하려고 나온 짐승이런가!

손에 들고, 입고, 바르고 칠한 것에 목과 귀에 매단 일체의 것이 외제명품이었는데 가히 볼 만한 꼴불견이었다. 몸뚱이만 국산인 그 짐승이 얼까지 외제로 바뀌어서 시아버지도 몰라보는 냉혈동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산과 들과 집에 사는 짐승들한테서는 짐승냄새가 난다. 이런 논리라면 사람한테서는 사람냄새를 풍겨야 정상이 아니겠는가! 사람한테서 사람 냄새나지 않고 동물보다 못한 역겨운 냄새가 풍기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아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

아니, 냉혈동물이 많이 양산되는 현실 속에 모든 것이 가슴 없는 기계로 동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시아버지 입원한 병원 문턱까지 와서 귀하신 몇 발자국으로 시아비 앞에 10원어치만 얼굴을 내밀었어도 냉혈짐승만은 면할 수 있었을 텐데.

해도 해도 너무 하네.

" 빨리 갔다 오랬더니 뭘 하느라고 아직까지 안 내려와 ! 병실서 살 거야 아이 속 터져……"

이런 말을 하는 짐승이 가슴 가진 사람인가, 아니면 더운 피 모르고 사는 냉혈동물인가, 강장동물인가…!!!

이 며느리가 원래 짐승은 아니었건만 해도 해도 너무 하네

제발 제발, 지구촌의 얘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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