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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대만 세 개 남은 아이스케이크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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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5-18 00:00 수정 2018-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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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이미지 뱅크
"아빠, 배가 아파요. 꾹꾹 찌르며 배가 아파요." 하는 소리에 아침을 먹다 흘낏, 곁을 쳐다보았다.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녀석이 배가 아프다며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눈치다. 아프니 집에서 쉬라하면 결석하고 싶은 속셈이 빤히 드러나 보였다.

"뭐 배 조금 아픈 거 가지고 그래. 체했는가 보구나. 아침 먹고 사다놓은 활명수나 소화제 먹으면 괜찮을 것 같으니 그것 먹고 학교에 가거라."

못마땅한 아들 녀석의 태도에 퉁명스레 쏘아붙인 아비의 한 마디였다. 아들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 것도 있었지만 정신적으로 약한 모습 보이는 아들 하나 강하게 키워 보려는 아비의 욕심이 들어 있는 냉랭한 한 마디였다.

옆에는 아내와 딸이 아픈 아들을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마도 짚어보고 아프다고 하는 배를 만져보면서 야단법석을 떤다. 그러더니 비상용 약상자에서 약을 찾다가 약이 없는지 허겁지겁 뛰어나가 약을 사오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니 가족이라는 것이 왜 필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관심 속에 사랑을 받는 아들의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사람냄새 제대로 풍겨주는 아내와 딸의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그런 마음 한 편에는 학교가라는 냉랭한 한 마디로 정감을 잃게 했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우면서도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방금 전에 아프다고 한 아들 녀석한테 보낸 냉랭한 한 마디는 정감도 없고, 사람냄새가 담겨 있는 언행은 더더욱 되지 못한다. 돼지한테서는 돼지 냄새가 나고 강아지나 소 닭한테서는 그 나름의 특유 냄새가 난다. 꽃에서는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즐기고 싶은 향내가 난다. 이런 논리로 친다면 사람한테서는 사람냄새가 나야 한다. 순간 나는 아프다는 아들 녀석한테 정감 없이 대한 것이 미안함으로 얼룩진 마음을 도배질하는 것 같았다. 호들갑을 떨기는 했지만 사람냄새 풍기는 모정과 가족애를 보여 준 아내와 딸애한테 선생이라는 내 자리까지 내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날도 어쩌면 으레껏 해오던 담임반 아침 자습을 잘 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부랴부랴 조반을 먹는 둥 마는 둥 출근을 했다.

출근하기 전 집에서 아들 녀석에게 학교 가라는 정감 없는 말로 아비의 위세를 부리기는 하였지만 영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요즈음 세상은 각종 사회악의 종합백화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끔찍한 일들이 앞을 다투어 일어난다. 살인, 강간, 사기, 폭행, 도적질을 비롯해서 끔찍한 일들이 사회 도처에서 난무하고 있다. 제아무리 각박한 현실이지만 자신을 낳아 길러준 부모까지 토막살인까지 해서 버리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세상이 되었으니 이 어찌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있으랴!

사람한테서는 사람 고유의 사람다운 냄새가 풍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거기엔 사랑이 있고, 정이 있고, 서로를 생각해주는 정성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짐승 세계에서는 엿볼 수 없는 도덕성과 윤리성이 또 간과(看過)되어서는 안 된다.

제아무리 문명이 발달한 산업사회라 하지만 기계 위주의 편리와 물질이 사람보다 우선시돼서는 안 된다. 사람한테서는 사람냄새 풍기는 인간다움이 있어야 한다. 우리 인간한테서 사람냄새 찾아볼 수 없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가 도래(到來)한다면, 결과는 너도 망하고, 나도 멸하는 인류 공멸의 파국만이 있을 뿐이다.

어김없이 학교일과는 종소리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3교시 수업 중 급한 전화가 왔다기에 서둘러 뛰쳐나와 전화를 받았다. 아침에 배가 아프다던 아들 녀석이 떼굴떼굴 뒹굴며 야단법석을 떨어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는 전화였다. 너무나 위급한 상황이라 구급차를 불러 서산 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서울 병원으로 갔으니 그리로 오라는 것이다. 수화기를 놓자마자 빛의 속도로 허겁지겁 차를 몰았다. 너무나 급하고 당황한 나머지 차를 타고서도 뛰는 기분이었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아침에 배가 아프다던 아들 녀석이 맹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전이되어 수술로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이었다.

애를 이 지경 위기까지 두었다고 의사 선생님한테 낯 뜨거운 꾸중까지 들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 일 날 뻔했다는 얘기를 듣고 정신이 아찔함을 느꼈다. 정신적으로 애를 강하게 키워본다고 애 죽일 뻔한 꼴이 된 것이다. 지나치게 강하면 부러진다는 값진 교훈을 얻은 셈이다.

아들 녀석은 일주일 만에 퇴원을 했다. 3,4일 정도면 퇴원하는 맹장수술이어야 할 것이 챙기지 못한 탓으로 병을 키워 일주일까지 간 것이다.

퇴원하여 집에서 쉬고 있는 아들 녀석한테 꼬마 친구 셋이 한낮에 찾아왔다. 그날은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촌티가 질질 흐르고 땀이 뒤범벅이 된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개구쟁이 녀석 셋이 왔다. 얼굴에는 촌티 이상으로 순수하고 밝은 표정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한 녀석이 손을 뒤로 한 채 뒤꽁무니의 검정 비닐 봉투에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 무얼 가지고 온 것이 분명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놓지 못하고 수줍음이 그득한 표정으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왼쪽 가슴에 달고 있는 명찰을 흘낏 쳐다보고

"얘, 준범아, 우리 영민이 주려고 무얼 가지고 온 것 같은데 뭔가 이리 내놔 봐."

이 한 마디에 세 녀석의 생기발랄한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겸연쩍어하는 모습으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아니 수줍어 으시리고 서 있는 모습이 친구 병문안을 왔다기보다는 개구쟁이 짓하다 붙들려 온 듯한 표정들을 하고 있다. 말도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멋쩍어하는 표정들이다. 손을 뒤로하고 꽁무니에 숨긴 검정 비닐봉지를 내놓지 못하고 그저 주저주저하고만 있다.

"어서 이리 내놔봐. 뭔데 내놓지를 못하고 주저거리고 있어! "

재차 재촉하는 아내의 말소리에 머리를 긁적거리며 검정 비닐봉지를 내어 밀었다. 호기심어린 검정비닐을 아내가 열었다. 모든 시선이 열려 있는 검정 비닐 봉투로 집중되었다. 순간 그 속에는 막대기 세 개가 물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

아이스케이크가 다 녹아 물위에 대만 세 개 떠 있는 것이다. 대에 붙어 있던 아이스케이크는 흔적조차 보이질 않는다.

개구쟁이들이 놀다가 친구(영민이)가 아파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것 같다. 맨 손으로 그냥 가기가 좀 안 됐으니까 여름이고 해서 아이스케이크 세 개를 사서 덜렁덜렁 들고 병원에 찾아갔던 것 같다. 가서보니 퇴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퇴원한 친구를 보기 위해 집에까지 찾아 온 것이다. 병원서 우리 집까지는 도보로 25분 안팎 걸리는 거리다. 여름날이고 해서 개구쟁이 셋이 25분 정도 장난치며 오는 그 시간에 봉지 속의 아이스케이크가 7월의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물과 대로 이산가족이 된 것이다.

대에 붙었던 얼음은 온 데 간 데 없이 물위에 떠 있는 막대기 세 개!

그걸 보는 순간 코끝이 왜 그리 찡하는지!

아니, 심금을 울리는 감동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지!

검정 비닐봉지 속에는 분명 아이스케이크는 없었다. 물과 대만 남은 세 개의 막대기가 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백화점에서 고가의 돈으로 사온 상품에서는 볼 수 없는 진실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친구를 배려하는 정성과 우정이 숨 쉬고 있었다. 아니 거기에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우정과 진실과 아름다운 사랑이 심금을 울리는 위력으로 빛나고 있었다.

가격으로 친다면 2백 원짜리 아이스케이크 세 개 6백 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돈 천 원도 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수십 년이 지난 세월 속에서도 감동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아니, 천금 보석으로도 하지 못할 괴력을 발휘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대만 세 개 남은 아이스케이크!

삭막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불쏘시개가 돼 주었으면 한다.

아니, 인간성 부활의 이정표가 되어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감동 사례가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나왔으면 한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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