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학규(沈鶴圭)는 불멸의 효녀인 심청(沈淸)의 아버지다. 아내가 심청을 낳고 죽자 동냥젖으로 심청을 길렀다. 눈을 뜨고 싶은 일념으로 화주승에게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겠다고 약속을 하여 딸을 잃고 혼자 남았다.
뺑덕어멈이란 여자를 후실로 삼았으나 남은 재산마저 탕진되어 거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황성에서 베푼 맹인 잔치에 참석, 왕후가 된 딸을 만나 눈을 떴다.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져 영화를 누렸다. -
이상은 검색을 통해 살펴본 심학규의 일대기(?)다. 심학규를 논하자면 흔히 그가 지극히 착한 사람이었다는 측과, 제 눈 뜨자고 하나뿐인 딸을 인당수에 빠져 죽게 한 나쁜 인간이었다는 측의 양비론(兩非論)이 충돌한다.
양비론은 서로 제시하는 두 의견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주장이 대립되는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학문적 이론이나 사회적 주장이 양분되어 있을 때, 어느 한편에도 동의하지 않는 제3자가 새로운 주장을 전개하는 경우에 주로 나타난다.
필자의 주장 역시 이에 부합한다. 심학규는 양반의 후손이었지만 가세가 기운 데다가 눈까지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맞는다. 처복마저 없어 삯바느질과 남의 집 일로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던 아내 곽 씨는 심청을 낳은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세상을 뜬다.
젖먹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심학규는 양반 체면이고 나발이고 다 내던진다. 그리곤 동네 아낙들을 찾아다니며 동냥젖을 먹여 심청이를 키운다. 덕분에 심청이를 온전히 기를 수 있었다.
그런 페이스로 초지일관했음 되었으련만 뭣에 씌였던지 아무튼 개울에 빠진 자신을 구해준 몽은사 화주승의 말에 귀가 솔깃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화주승(인가에 다니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법연(法緣)을 맺게 하고, 시주를 받아 절의 양식을 대는 승려)은 부처님께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면 눈을 뜰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 처지였거늘 그는 단박에 그러겠노라고 약조하기에 이른다. 아마도 자신이 눈만 뜨면 딸의 고생을 덜 수 있다는 희망이 그만 그 같은 욕심의 등불이 되었지 싶다.
결국 심청은 쌀 삼백 석을 마련하기 위해 뱃사람들의 제물이 되기로 결심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심 봉사는 울며불며 말리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져 죽는다.
심학규는 자신으로 말미암아 딸이 죽었음에도 회개는커녕 뺑덕어멈과 재혼한다. 허나 어리바리 심학규를 등쳐먹으려는 속셈이 다분했던 뺑덕어멈은 고분고분할 리 없었다. 재산을 죄 훔쳐 야반도주하는 바람에 심학규는 다시금 무일푼으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양비론'이 생성된다. 심학규가 진정 선인(善人)이었다면 어떻게 해서 마련된 돈인데 그처럼 함부로 쓸 수 있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뺑덕어멈 같은 악인은 교묘한 수법으로 접근하여 모기처럼 흡혈까지 하는 때문이다.
양비론의 또 하나는 심청에게 돋보기를 들이밀게 한다. 자신이 인당수에 빠지면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고? 그처럼 맹목적 믿음을 실천한 심청이었지만 그녀 역시 처음엔 분명 말도 안 되는 사기꾼의 농간에 아버지가 놀아난 것이라 믿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뱃사람들의 제물이 되기로 작심한 건 두 가지가 작용했을 것이라 본다. 첫째는 희망 없는 삶에서의 영원한 해방이었을 게다.
또 하나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잃은 어머니로 인해 아버지가 갖은 고생을 했음에 대한 감사와 속죄의 어떤 씻김굿 차원의 도발이었으리란 추측이다. 필자 역시 심청과 유사한 길을 걸었다.
어찌어찌하여 생후 첫돌 무렵 어머니를 잃었다. 홀아비가 된 부친께선 동네서 혼자 사셨던 할머니께 필자의 양육을 부탁하셨다. 덕분에 지금껏 생존할 수 있었으며 심청이 뺨치는 고운 딸까지 얻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지나노라니 별의별 생각의 출몰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어쨌거나 심학규는 화주승의 말마따나 후일엔 눈을 번쩍 떴으니 그게 다 효녀를 둔 은덕이었지 싶다.
#2
국토교통부는 최근 2014년 12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과 관련하여 대한항공에 27억9000만 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국토부는 5월 18일 행정처분 심의위원회를 열고 대한항공이 운항 규정을 위반했고, 회사 차원에서 거짓 서류 제출·답변으로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며 이같이 결정했다고 한다.
국토부는 또 3년 5개월이 지난 시점에야 행정처분이 내려져 '늑장 징계' 논란이 일자 업무처리 과정에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내부 감사를 벌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러한 뉴스를 보면서 이른바 '물컵 갑질'로 세인들의 지탄을 한 몸에 받은 바 있는 전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러면서 '물컵 갑질'의 나비효과가 일파만파로 더욱 확산되는 모양새에서 새삼 국격(國格)의 실추까지 오버랩 되는 느낌이었다. 주지하듯 조현민의 국적은 미국이다.
1983년 하와이주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조현민은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서울외국인학교에서 초?중?고교 과정을 마쳤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LA)에 있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학사 과정을 밟았다.
조현민이 미국 하와이주 태생인 것에 대해 원정출산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 바 있었음을 기억한다. 미국의 경우 속지주의(屬地主義) 원칙에 입각해 미국 50개주와 괌, 사이판 등 자치령에서 아기가 태어난 경우 미국 시민권을 부여한다.
대한항공 일가의 '미국 선호'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조현민의 언니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도 지난 2013년 5월 쌍둥이 자녀를 미국 하와이에서 출산했다는 게 이런 주장의 방증이다. 하와이에서 출생한 조현민의 미국 이름은 조 에밀리 리(Cho Emily Lee)이다.
이런 현상을 보자면 어떤 경제시민단체 관계자의 지적에도 일리가 크게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매년 3.1절, 8.15 광복절 전후나 올림픽, 월드컵 시즌 때는 자사 마크인 태극과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를 강조하는 등 애국 마케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그렇게 대한민국을 강조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대기업 총수의 차녀가 정작 미국 시민권을 가진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꼬집은 부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국적이 엄연히 미국임에도 진에어 불법 등기이사 임원으로 버젓이 재직했다. 따라서 그 부분에 대해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몇 년 동안이나 몰랐었다고 발뺌한 부분 역시 직무유기가 아니었냐는 국민적 의구심 또한 해결해야 할 숙제다.
딸은 미국인이고 가사도우미는 필리핀 여성이었었다는 비판 또한 대한항공 오너 일가들의 '양두구육'을 보는 기분이었음은 물론이다. 대한항공은 1962년 박정희 군사정부가 공기업을 조현민의 조부인 조중훈에게 건네면서 욱일승천 재벌의 길로 질주하기 시작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상식이다.
그랬기에 대한항공은 응당 국민기업다운 면모로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의 길을 걷는 건 피했어야 마땅했다.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천민자본주의 작태가 오늘날 대한항공을 국민으로부터 외려 유리(遊離)되는 최악의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만약에 이와는 반대로 우리의 고유명사로 국위선양을 했다면 어땠을까? 예컨대 대한민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김치'와 '불고기'에 이어 '효도'와 '심청'까지 거론하면서 "듣던 대로 코리아는 역시 동방예의지국(東邦禮義之國)이더라!"는 칭찬을 거듭하는 것은 결국 국위선양과 국가브랜드의 제고에도 큰 몫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족이겠지만 '갑질' 역시 우리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는 느낌이다. 외국인과 외국 언론에서 "코리아에서 또 재벌의 '갑질'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나는 순간 한국의 브랜드 가치는 더욱 하락한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