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자연의 숨결에 귀 기울이자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 자연의 숨결에 귀 기울이자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 승인 2018-06-12 13:18
  • 신문게재 2018-06-13 21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김완하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지난 일요일 오후는 두세 시간동안 유등천변을 따라 걸었다. 그동안 밀려 있던 원고를 정리하고 나선 산책길이었다. 요 며칠 사이 시원하게 부는 바람으로 발길은 한층 가볍고 흥겹기조차 하였다. 몸을 움직이니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지는 듯했다. 천변의 버드나무들과 어우러져 촐랑대는 냇물의 흐름에 나도 동참하니 세상은 한껏 부푼 기대감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성큼 성큼 다가오는 여름의 햇살 속으로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내 머리 위를 지나가는 구름에게 손을 흔들었다.

물가에는 백로가 한 마리 외발로 서있었다. 그 하나의 몸짓으로 유등천 전체는 더 완벽한 풍경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망초꽃 핀 언덕으로는 꽃과 풀들이 어울려 그 조화로 인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무들과 물소리가 함께 하니 더 싱그러웠다. 질경이, 쑥, 강아지풀, 씀바귀 그 옆에는 뽕나무가 있고 그 사이에서 온갖 새들이 합창을 했다. 멧새, 물새, 이름 모를 새들에게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찔룩꿀룩새, 키득키득새 등.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니 이 세상은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며 서로 하나 되듯이, 생동감으로 가득 차오르는 것이었다. 화답하는 새들은 찌릿찌릿 찌릭찌릭 키득키득 쮜릭쮜릭 피피피피, 거기에 생뚱맞지만 황소개구리 한 마리도 게으른 울음으로 섞이고 있었다.

가까이서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노오란 꽃잎을 향해 날아가는 나비의 날개 짓이 잠시의 침묵을 더 깊게 응집시켰다. 여기 저기 나무와 풀 사이를 채우는 물소리, 바람소리, 물과 바람의 품에 안겨 하나로 흐르고 어우러지며 온통 새로운 장을 펼쳐놓았다. 비탈을 따라 칡넝쿨도 풀밭을 엮으며 천변을 기어가고 있었다. 그 부근에 물오리 떼가 보여 다가가니 어미가 새끼들 여러 마리를 데리고 나무둥치 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 모습으로 유등천은 비로소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건너편 언덕 위에 능소화가 주황빛 꽃잎을 펼치고 있었다.

나무 위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백로는 여전히 물가를 지키고 있었다. 그동안 사람들만 서로 갈라져서 물어뜯고 상대의 치부를 들추고 싸워왔구나 싶었다. 자연 속의 나무, 풀, 꽃, 새들 그리고 물도 모두 한통속으로 어울려 그윽한 낙원을 펼쳐놓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자연의 모습을 본받아야겠다는 깨달음이 왔다.



자연의 숨결은 우리들이 세사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동안에도 서서히 그러나 침착하게 서로의 고리를 형성하며 짜인 조화의 질서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것들 속에는 서로를 할퀴고 헐뜯는 경쟁과 억압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사람들만이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며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랑은 더 큰 사랑을 불러오고 경쟁은 더 큰 경쟁을 낳는 것이다. 속도와 양의 무한 질주 속으로 치닫는 경쟁 속에서 벋어나 잠시 자연의 숨결 속으로 다가가 가슴을 열고 그 숨결을 깊이 들이마시며 심호흡 해보았다.

오늘은 투표를 빨리 마치고 가까운 천변을 따라서 걸어보도록 하자. 그동안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갈라졌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라도 숲으로 향하자. 그곳에 펼쳐지고 있는 자연의 숨결과 그 소리에 귀 기울이자. 물소리, 새소리, 버들가지 사이로 스치는 바람소리. 그리고 바위가 햇볕을 받으며 더 깊어져가는 소리. 이름 모를 꽃들에게는 '너도평화꽃', '나도기쁨꽃' 이름도 붙여주고, 갈대 한줄기 휘어 어깨동무도 해보면서 말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4 충청총선]더민주-국민의힘-조국까지 대전 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 표정
  2. 세종시 집현동 공동캠퍼스 '9월 개교'...차질 없이 한다
  3. 대전과 세종에서 합동 출정식 갖는 충청지역 후보들
  4. 가수 영호 팬클럽 '이웃위해' 100만원 기탁
  5. 세종시 호수공원 일대 '미술관 유치' 본격화
  1. [총선리포트] 강승규 "양 후보는 천안 사람" vs 양승조 "강, 머문기간 너무 짧아 평가조차 못해"
  2. 2025학년도 수능 11월 14일… 적정 난이도 출제 관건
  3. [아침을 여는 명언 캘리] 2024년 3월29일 금요일
  4.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왕도정치와 팬덤정치
  5. [WHY이슈현장] 고밀도개발 이룬 유성, 온천 고유성은 쇠락

헤드라인 뉴스


대덕특구 재창조 속도 높인다… ‘마중물플라자’ 조성사업 순조

대덕특구 재창조 속도 높인다… ‘마중물플라자’ 조성사업 순조

대전시는 대덕특구 재창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마중물 플라자 조성사업의 중간 설계를 완료하고 과기부·기재부의 총사업비 조정절차를 완료했다고 29일 밝혔다. 마중물 플라자는 대덕특구 출범 50주년을 맞아 재도약과 4차 산업혁명 선도를 위한 대전환을 위해 대전시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가 협업하여 추진하는 사업으로 이번 중간 설계 완료와 총사업비 조정 확정으로 더욱 가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ETRI 부지인 유성구 가정동 168번지에 313억 원을 투입해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8782㎡로 ICT 기술사업화 거점, 전..

세종시 `관광 현주소`는...2023년 어디를 많이 찾았나
세종시 '관광 현주소'는...2023년 어디를 많이 찾았나

세종시 관광산업의 현주소는 어떤 흐름에 올라타고 있을까. 성장기에 놓인 신도시 특성과 행정중심복합도시 위상을 고려하면, 관광도시 면모를 기대하는 건 욕심에 가깝다. 그럼에도 방문객 수와 유입 지역, 자주 찾는 장소, 매출액 등의 객관적 데이터 분석은 미래 세종시의 방향성을 찾는데 유효한 과정으로 다가온다. 때마침 세종관광 MICE 얼라이언스 발대식이 3월 29일 어진동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려 제 단체 간 발전적 협력 관계 구축을 넘어 지역 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 영문 MICE는 한글로 회의와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란 4가지..

[WHY이슈현장] 고밀도 도시개발 이룬 유성… 온천관광특구 고유성은 쇠락
[WHY이슈현장] 고밀도 도시개발 이룬 유성… 온천관광특구 고유성은 쇠락

대전유성호텔이 이달 말 운영을 마치고 오랜 휴면기에 돌입한다. 1966년 지금의 자리에 문을 연 유성호텔은 식도락가에게는 고급 뷔페식당으로, 지금의 중년에게는 가수 조용필이 무대에 오르던 클럽으로 그리고 온천수 야외풀장에서 놀며 멀리 계룡산을 바라보던 동심을 기억하는 이도 있다. 유성호텔의 영업종료를 계기로 유성온천에 대한 재발견과 보존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유성온천의 역사를 어디에서 발원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살펴봤다. <편집자 주>▲온천지구 고유성 사라진 유성대전 유성 온천지구는 고밀도 도시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시구하는 가수 김종국 시구하는 가수 김종국

  • 한화이글스 연승에 응원할 맛 나는 치어리더 한화이글스 연승에 응원할 맛 나는 치어리더

  • 한화이글스 홈 개막전 ‘매진’ 한화이글스 홈 개막전 ‘매진’

  • 홈 팬들 앞에서 역투하는 류현진 홈 팬들 앞에서 역투하는 류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