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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마음 다스리기, 축하와 위로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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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6-15 00:00 수정 2018-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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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지역 3대 일간지에 글을 썼습니다. 20여 년 전부터 입니다. 그럼에도 졸고를 읽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각합니다. 어떻게 써야 남이 읽어줄까? 공감 할까? 나아가 감동을 선사할까? 좋은 글이 될까? 고민하지요. 늘 연구하며 씁니다. 그러다 보면 더 이상한 글이 되더군요. 글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내용이 꼬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허접하거나 말장난이 되기도 하지요. 잘 쓴다는 것, 그 게 마음대로 되지 않더군요. 독자 없는 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잘 쓰지 못하더라도 남이 봐주는 글을 쓰자 노력하는 데, 그도 난해한 일이기는 마찬가지더군요. 다행이 챙겨 읽어주는 몇 분 애독자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필자의 딸입니다. 그런데, 비판적인 글을 쓸라치면 꼭 필자를 나무랍니다. 글쓰기의 본질 중 하나라 우기곤 하지요. 그러면서 돌아서서는 고심합니다.

때때로 나이를 헛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쉽게 화내고, 흥분하곤 하지요. 소위 불가에서 말하는 삼독(三毒), 욕심, 성냄, 어리석음에 갇혀 살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해야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 생각하며 살았던 것도 분명합니다. 그에 비례하여 절제도 중요하다, 마음 다스리며 살지요. 그러고 보니, 흥망성쇠(興亡盛衰)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마음 다스리기가 필요하다 생각되는군요.

마음 다스리는 방법, 수없이 보고 들었지요. 필자는 서예를 택했습니다. 지난 해 가을부터 시작했습니다. 매일같이 한 시간 가까이 먹을 갈며 명상을 하지요. 고전을 읽고 의미를 되새기며 쓰기를 반복합니다. 순수 영혼을 돌아보는 명상 시간이 되기도 하고, 화두에 몰두하는 참선이 되기도 합니다. 점, 선, 획의 비례와 균형, 통일을 통해, 서예가 갖는 조형미, 율동미, 공간미에 흠뻑 빠져보기도 합니다.

저잣거리 삶의 활기와 같은 모습, 지난 선거기간 또 다른 삶의 열기를 느꼈습니다. 열망과 열정이 차고 넘치는 거리, 항상 그러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막 내린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드러난 결과에 따라, 당사자와 그와 함께했던 주변인들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당연지사지요. 이제 차분히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고 일하는 일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일반인들은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일도 아닌 듯한데, 환호소리도 들리고, 나라 걱정하는 장탄식도 들립니다. 당선자들에게는 미소만으로 축하인사가 되겠으나, 낙선자에게는 어떤 말로도 위로가 쉽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재앙은 은혜 속에서 자라나나니, 만족스러운 때에 빨리 머리를 돌려 주위를 보라. 실패한 뒤에 오히려 성공할 수도 있나니,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서둘러 포기하지 말라(恩裡, 由來生害. 故快意時, 須早回頭. 敗時, 或反成功. 故拂心處, 莫便放手)."

채근담(菜根譚, 1644년 경 중국 홍자성 지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당선된 사람이야 기쁘겠지요. 낙선한 사람에게 어떤 위로가 귀에 들려오겠습니까? 만족스럽고 기쁠 때 주위를 돌아보아야 하고, 실패했다고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지요.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만, 당선되고 나면 입장이 바뀌지요. 갑과 을이 자동으로 바뀝니다. 기대에 반하여, 그동안 일관되게 반복되어 온 일입니다. 채, 수일이 지나지 않아, 깊이 허리 굽혀 머리 숙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목에 한껏 힘이 들어가고 허리가 뻣뻣해 집니다. 어깨에 힘도 잔뜩 들어가지요. 눈도 아래로 뜹니다. 다른 사람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위에 군림하지요.

요즈음은 당선자뿐이 아닙니다. 지지자도 자신이 마치 세상을 얻은 것 같은 행태를 종종 보이더군요. 패자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것이 선거가 아닙니다. 포용하는 덕을 쌓고 수련하라는 명령이지요. 혼자는 존재의미가 없습니다. 찬반 양자 공히 동반자이지요. 결과를 함께 나누는 선거문화가 되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기왕 채근담을 인용한 김에 한 구절 더 볼까요?

"귀로는 항상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고, 마음속에 항상 마음에 거슬리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곧 덕을 발전시키고 행실을 갈고 닦는 숫돌과 같다. 만약 말마다 귀를 기쁘게 해 주고, 일마다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면 그것은 곧 인생을 무서운 독극물 속에 파묻는 것과 같다(耳中常聞逆耳之言, 心中常有拂心之事, 總是進德修行的砥石. 若言言悅耳, 事事快心, 便把此生, 埋在?毒中矣)."

몰라서는 아니지요. 누구나 우선 달콤하면 좋아합니다. 귀가 즐겁고, 물심양면으로 차고 넘치면 기뻐하지요. 독극물임을 아는 데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듣기 거북하고, 마음 거스르는 불편한 행태가 심신을 갈고닦는 숫돌이요, 건강하게 하는 보약임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양동길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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