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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너와 나는 서로의 장갑이 되어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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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7-13 00:00 수정 2018-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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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려 있는 큼지막한 신협 달력의 추석명절 붉은색 연휴 표시가 한 눈에 들어왔다. 거기다 동생들과 선산 벌초하려고 약속해 놓은 날짜까지 9월을 지키는 토요보초병으로 가세한 모습이 보였다. 오전 7시에 상봉시간을 정하여 고향 선산에서 동생들을 만났다. 풀 깎는 예초기는 막내가 지고 다른 동생들은 갈퀴와 곡괭이 호미와 톱 낫을 들었다. 아카시아나무 뿌리는 캐내고 산소를 가린 나뭇가지는 베어내며 잡풀은 캐내고 깎은 풀을 긁어모으기 위한 도구들이었다. 나는 예초기로 깎기 어려운 비석 옆 풀과 한 길 자란 억새풀을 베어내려 낫을 들었다. 지난 해 장갑 없이 일하다 손을 다친 이력이 있어 목장갑은 형제들 숫자만큼 챙겨갔다.

7남매 중 6형제가 한데 모여 조상님 산소 벌초를 4시간 정도에 다 끝냈다. 보릿고개 나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많이도 싸워가며 자란 우리 형제들이건만 이렇게 합심하여 힘든 일을 거뜬히 끝내니 장해 보였다. 땀방울 맺힌 얼굴마다 씩 웃는 모습들을 보니 남부러울 것 없는 천하무적 우리 형제들인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막내야 네가 등에 지고 있는 예초기 나도 좀 써 보자!??

했더니 동생들이 입을 모아 형님은 힘에 부치니 낫으로 살살 풀이나 깎으라고 하던 생각이 난다. 역시 배려의 따뜻한 마음을 가진 형제들이 고마웠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우리 형제들을 생각다 보니 벌초할 때 끼던 장갑 생각이 났다.

우리는 영원히 너와 내가 따로 없는 형제애로써 벌초할 때 모습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 장갑 너는 내 장갑이 되어 평생 따뜻한 가슴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지난해앤 장갑 끼지 않고 풀 깎다가 억새풀에 손 베인 경력이 있어 금년은 장갑 끼고 낫질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장갑 덕분에 손은 베이지도 다치지도 않았다. 장갑의 고마움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장갑은 일할 때만이 아니라 추울 때도 끼고 주방에서 주부들이 뜨거운 된장 뚝배기나 뜨거운 냄비를 들 때도 낀다. 장갑은 승용차 운전하는 사람도, 아파트 공사 현장의 아저씨들도, 땅을 파는 인부들도, 시중에서 물건 파는 아낙이나 장사꾼도, 심지어는 예식장에서의 신랑 신부나 주례와 혼주석의 양가 부모님한테도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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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이미지 뱅크
그래 뭐니 뭐니 해도 장갑의 용도와 기능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추울 때 끼고 일할 때 찾는 것으로 시린 손 따뜻하게 해 주고 외부로부터 위험을 막아주고 보호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지난 9월 장갑 끼고 벌초할 때가, 오는 가을인가 했는데 느껴보지도 못한 가을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실감나는 설한의 추위는 빠르게도 찾아왔다.

12월 칼바람 추위는 귀때기를 얼얼하게 손을 시리게 하는 심술쟁이였다. 추운 날씨에다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해서 이마트에 가서 장갑 다섯 켤레를 샀다. 두 켤레는 성당에서 매일 새벽 미사 준비 때마다 손이 시릴 것 같은 두 수녀님께 드리고, 또 한 켤레는 수시로 반찬 만들어 주시던 한정식 집 자미지미 여사장님께 드렸다. 나머지 두 켤레는 매일 새벽운동 나가는 도솔체육관 카운터 보는 배불뚝이 임신부 아줌마와 체육관 청소하는 아주머니께 드렸다. 손 시리어 곱은 손 떨지 않게 장갑 다섯 켤레가 따뜻한 보온기능을 위해 열띤 경쟁 순위 다툼을 해 줬으면 좋겠다.

성당에 갈 때마다 장갑을 드린 B수녀님을 여러 번 뵙는데도 장갑 낀 손은 보이지를 않았다. 추워도 장갑 끼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가 보다 생각하였다. 그러던 중 추운 어느 날 초라한 차림의 할머니 한 분이 새벽미사 오셨는데 베이지색 장갑을 끼셨다. 내가 수녀님께 드린 장갑 색깔과 꼭 같아 보였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해보았더니, 그 노파는 불쌍히 사는 독거노인이라 했다. 그래서 B수녀님이 딱하게 사시는 할머니께 연민의 정으로 당신의 장갑을 드렸다는 것이다. 그 장갑은 내가 수녀님께 사드린 바로 그 장갑인데 한 번 끼어보지도 않은 채 주신 것임에 틀림없었다. 당신 손보다 할머니의 손이 얼어터질까 애처로워 수녀님 손에서 할머니 손으로 자리바꿈해 드린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수녀님 같은 생각을 못하고 생각 없이 두툼한 가죽장갑을 끼고 있는 내 양손이 부끄러웠다. 장갑보다 훨씬 따뜻한 가슴으로 사시는 또 다른 천사가 우리 괴정동 성당에도 계시다는 느꺼움에 가슴이 뭉클했다. 장갑보다 수천 배 따뜻한 수녀님의 가슴이 용광로 보일러를 가동하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이분은 수녀님이 아니라 천리향 만리향을 지닌, 용광로 가슴을 가진 또 다른 천사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손이 어는 어떤 칼바람 추위라도 용광로보다 더한 뜨거운 가슴으로 이겨내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수녀님을 생각하니 덩달아 내 가슴까지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내 고통과 추위보다는 남의 아픔과 주림을 걱정하는 B수녀님 같은 천사들이 더욱 많이 나와 지구촌과 아사달을 훈기로 녹였으면 좋겠다.

아니,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기계소리에 찌들고 가뭄에 얼어가는 한 줌의 흙까지 따뜻한 온기로 덥혀주었으면 좋겠다.

한라에서 백두까지의 아사달 후손들이여!

우리의 너와 나는 서로의 장갑이 되어 살아가세나그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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