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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74주년]'한국특허령 제1호 특허' 받아 독립운동 지원한 '정인호 애국지사'

모자와 가방, 토수, 셔츠 등 '말총 제품' 생산 민족기업가
경술국치 후 대한독립구국단 결성해 상해 임시정부 군자금 지원
국립대전현충원 묘소에 '제1호 특허권자' 표식 부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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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8-13 11:28 수정 2019-08-13 16:48 | 신문게재 2019-08-1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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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애국지사 사진(최종)
정인호 애국지사.
"일제의 앞잡이인 군수로 재직, 충성하고 있음이 못내 굴욕적이고 수치스럽다."

말총 제품으로 특허를 받아 독립운동을 지원한 정인호 애국지사가 청도군수를 사직하며 전한 얘기다.

정인호 선생(1869~1945)은 말의 갈기나 꼬리털로 만든 말총 제품을 만들어 ‘한국특허령 한국인 제1호 특허’를 받았다. 말총 제품으로 여러 공산품을 만들어 수출까지 하며 부를 축적했다.

단발령이 내린 시절에 말총 모자는 큰 인기를 끌었다. 모자뿐만 아니라 말총 가방, 핸드백, 말총 토수, 말총 셔츠 등도 일본과 중국에서 선풍적인 관심을 받았다. 사업은 크게 번창했다. 청량리에 1만 6528㎡(5000여 평)이 넘는 공장을 운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쌓은 재산은 독립운동을 위해 쏟았다.

말총모자 광고1
말총모자 신문광고.
정인호 선생은 한국특허령 특허를 한국인 최초로 출원하고, 1910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특허까지 획득했다.

당시 한국특허령은 해방까지 일본의 특허법을 그대로 시행했고,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는 한국특허령을 전면 폐지하고 일본 특허법을 시행하기까지 했다. 대한민국특허법 안에서도 슬픈 우리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정인호 선생은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독립운동 지원을 위한 특허를 위해 계속 투쟁해 말총 제품 특허를 가지게 됐다.

3·1운동을 계기로 장두철 등과 함께 ‘대한독립구국단’을 결성해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체포돼 5년 형을 선고받아 옥고도 치르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대전현충원과 특허청은 13일 74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정인호 선생을 추모식을 열고, 공로를 높이 기리어 묘소에 '제1호 특허권자 표식'을 부착했다. 정인호 선생의 애국정신과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기념하는 이번 추모행사에는 선생의 증손녀 4명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정부는 정인호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고,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1989년에 안장했다.

이날 표식 부착식에서 만난 정인호 선생 유족은 “아버지께서 할아버지 얘기를 하시면서 항상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다”며 “할아버지께서 미래를 내다보고 당시에 특허권을 획득해 일본으로부터 우리의 것을 지킬 수 있었다.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일본제도에 의한 한국인 1호 특허가 역설적으로 민족기업을 성장시켜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의 숨은 자금원이 됐다"라며 "한국인 1호 특허가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이를 극복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라고 전했다.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해에 특허 분야에서는 200만 번째 특허등록을 앞두고 있다.
이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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