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가을이다. 예부터 가을은 곧 등화가친(燈火可親)과 동격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가을은 도리어 책과 더 멀어지는 계절이라는 설도 없지 않다. 이는 과거와 달리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가을이 되면 오히려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여가 활용의 방법이 바뀐 데다, 스마트 폰 등의 IT 테인먼트 생활화의 고착화가 그 간극을 더해서다. 설상가상(?) 가을이 되면 전국적으로 각종의 축제와 이벤트가 봇물 터지듯 동시다발 하는 것도 한몫을 하는 때문이지 싶다.
어쨌거나 일상의 스트레스에 헝클어진 심신을 명경지수(明鏡止水)에 씻고 활기찬 내일을 도모하는 데 있어 등산(登山)만한 게 또 없다. 충남의 명산인 계룡산(鷄龍山)은 차령산맥의 연봉(連峯)으로 충청남도 공주시와 계룡시, 논산시와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이처럼 드넓고 울울창창한 계룡산의 말사(末寺) 격(格)에 수통골이 위치한다. '수통골'이란 골짜기가 길고 크며 물이 통하는 골짜기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언제 가도 포근히 맞아주는 고향 본가(本家)의 어머니답게 후덕(厚德)한 풍광(風光)은 연중무휴 등산과 나들이객까지를 기꺼이 포용한다.
흔히 '수통골 유원지'로도 불리는 이곳은 대전시 유성구가 투자를 꾸준히 실천했다. 따라서 각종의 레포츠 시설까지 완비해 명실상부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거듭났다. 현재도 지속적으로 환경의 업그레이드를 추진한 덕분에 접근성의 확장은 물론 질척거리는 장마철에도 거리낌이 없어 더 좋아졌다.
산악회에 가입한 지인에게 들으니 그 산악회 회원의 반은 '사이비 등산객'이라고 했다. 즉 예정된 산에 도착했어도 막상 등산은 아예 포기하고 관광버스의 주변 내지 근처의 식당에서 술이나 마시는 이들이 반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는 곧 '물(水) 반(半) 고기(魚) 반(半)'에 견줄 수 있을 만치로 등산보다는 정작 술이 목적인 주당들이 옥시글옥시글한 형국이니 '산(山) 반 주(酒) 반'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필자의 경우도 후자에 속한다.
언젠가 충남 천안에서 죽마고우들과 광덕산으로 등산을 갔다. 그러나 전날의 과음으로 말미암아 속이 부대껴 당최 산에 오를 수 없었다. 하여 "니들이나 열심히 등산하고 와, 나는 대신에 저 광덕사(사찰)에 들어가 너희들이 안전하게 하산하라고 열심히 불공이나 드릴게."라며 손사래를 친 적이 있다.
수통골은 널찍하게 자리 잡은 각종의 휴식 공간 외에도 시인(詩人)들의 내로라하는 작품까지 준비되어 한껏 여유로운 휴식공간으로서도 유명세를 더 하는 명불허전의 유원지다. 대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수통골은 이런저런 각종의 먹을거리 역시 입소문이 파다하다.
따라서 수통골을 찾은 날 역시도 식당의 주차장 대부분이 만차(滿車)를 이뤘다. 단풍이 찾아들면 더욱 절경인 수통골은 골짜기를 적시는 작은 저수지 형태의 보(洑)가 또한 압권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있네 ~"
영원한 가객(歌客)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노래가 입가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수통골에 가는 시내버스는 대전역 동광장에서 출발하는 102번과 동춘당 발 103번, 지하철 탄방역 1번 출구의 104번이 있다.
주말에 102번 시내버스를 타면 국립 대전현충원 안까지 들어간다. 수통골에 승용차로 가는 방법은, 고속도로 유성IC를 나와 계룡산(공주) 방향으로 가다가 신협연수원 쪽으로 좌회전한 뒤 국립 한밭대학교를 지나면 곧바로 만날 수 있다.
더욱 깊어가는 가을이다. 그 가을이 불어오는 곳, 오늘 같은 일요일에 운심월성(雲心月性)의 마음가짐으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계룡산 수통골에 책 한 권 들고 가서 저자와 소통(疏通)까지 하는 건 어떨까.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