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47.「아웃터넷」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47.「아웃터넷」

  • 승인 2017-11-1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1. 헤이세이 (平成) 0년 3월 1일

(헤이세이 연호는 아키히토가 일왕으로 즉위한 1989년 1월 8일부터 시작된다.)

"기계를 완성하였다. 감성뇌파전환기와 메모리장치, 그리고 플라워텔레스코프이다. 앞으로도 몇 가지 기기가 더 필요하다.

우선 언어를 파장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파장은 뇌파의 표출이다. 언어를 감정으로 치환하여 이를 뇌파가 그려내는 제 3의 언어가 필요하다. 나는 이 파장으로 대화를 할 것이다. 단어를 일일이 입력하여 그를 번역한 파장사전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들만의 어휘가 아닌 외계와의 연결 언어."





2. 헤이세이 (平成) 0년 6월 6일

"비란코상은 부드럽고 아름답다. 무언가 나에게 하고 싶어 하는 말이 있는 것만 같은데…."



3. 헤이세이 (平成) 0년 4월 5일

"클리브 벡스터는 실수를 한 것이었다.

식물이 의사를 가지고 있고, 감정마저 가지고 있다는 그의 발견은 옳았다. 하지만 그는 식물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왜냐하면 식물도 바로 스스로의 그런 의사를 가지고 있고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아무하고나 의사를 나누거나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의사와 감정이 허락하는 대상이라야 하는 것이다.

벡스터는 자신이 꽃과 대화를 했다고 해서 그러한 대화를 누구에게도 허용할 것이라는 오류에 빠져 결과적으로 사기꾼이 된 것이다. 기계를 대상으로 반복적인 실험과 동일한 결과를 얻고자 한 과학적 사고방식이 그를 실패로 이끌고 갔던 것이다.



비란코상.

얼마 동안이나 나는 그녀와 대화를 하고자 애절한 정성을 기울였던가. 말을 못한다 하여도 그런 것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손길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고야 말 것이다.

나의 이 순수하고 열정에 어린, 기로 충만한 청결한 손으로 말이다."



4. 헤이세이 (平成) 0년 6월 3일?

"아! 비란코, 비란코가 몸을 허락하였다.

응답이 왔다.

비란코 사랑해요. 나는 나의 언어를 파장으로 그녀에게 보내고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런데….

비란코가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메모리에 파장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 이 얼마나 기다렸던 소식이었던가.

이 얼마나 외쳐 보았던 사랑의 고백이었던가, 메아리가 온 것이다.

하지만, 이 곡선은 무슨 뜻일까. 무슨 뜻일까? "



5. 헤이세이 (平成) 0년 10월 29일

"너무도 지루한 작업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오직 나밖에는 못하는 작업이다. 말이 필요 없는 작업.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고무나무, 철쭉, 아무튼 모든 화초에 미친 듯 외쳤다. 사랑한다고. 그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사랑한다고 쓰다듬고 어루만져 주었다. 언어를 파장으로 전환하는 나의 LTWC(언어파장전환기)는 나의 충실한 메신저로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사랑하는 그들의 침실을 노크하고 노크하였다.

서서히 나의 연인들 중 몇몇이 그들의 비밀을 문을 열어주기 시작하였다.

'사랑합니다'라는 파장에 그녀들은 답했다. 다시 파장으로...



그녀들이 보내주는 그 의미를 읽고 싶어서 나는 수많은 꽃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보내면서 돌아오는 파장의 모습과 형태들을 분석하였다.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식물에도 각기 그들의 언어가 있다는 것을.

식물의 종에 따라 감정의 파장은 달리 나타났다.



'사랑한다'는 말에 난초류가 보내는 메시지는 거의 비슷했다.



나는 정의하였다. 그들이 보내는 이 파장은 사랑한다는 표현일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기쁘다'라는 전보를 보냈다. 그들 또한 다른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마찬가지로 그것이 '기쁘다'라는 의미로 일단 새겼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기쁘고 경쾌한 음악을 보내면서 나는 언어파장으로 전환하고 언어파장과 동시에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그들은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언어로 보내거나 음악으로 보내거나 같은 반응의 파장을 보내왔던 것이다. 물론 나무에 따라 파장과 사인이 다 정형화된 것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없이 지루한 작업을 계속하다보면 하나의 확신할 수 있는 웨이브가 정리가 되곤 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식물의 종마다 다른 언어체계를 파악하는데 성공하였다!



그것은 누구도 해낼 수 없는 나만의 능력이 있어 가능한 것이리라. 모든 언어에 평등한, 그래서 모든 언어에 자유로운 나. 신이 주신 은총이다. 감사합니다."



6. 헤이세이 (平成) 0년 11월 17일?

"그래, 성공할 수만 있다면, 성공할 수만 있다면, 오, 신이시여 미천한 저에게 신의 말씀을 들려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후루마쓰의 일기의 뒷부분은 실로 더 놀라운 사실이 전개되고 있었다. 식물마다의 언어를 파악한 그가 꽃나무들과 대화를 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비란코라고 불리는 야생의 동양란과 처음으로 대화를 시작하였다.

플라워텔레스코프. 처음보다 많이 개량되었지만 이제 이 기계는 식물과 후르마쓰가 소통을 하는 통신기가 되어 있었다.



"비란코 안녕!"?

"안녕. 아침이 추워요. 햇빛이 그리워요."

"오 저런 내가 창가로 옮겨 줄게요."

창가로 비란코상을 옮겨 햇빛을 향해 잎을 펼쳐주자, 비란코상의 이파리는 편안하게 가슴을 펴며 푸른빛의 윤기로 반짝 빛이 났다.

"좋아요."

"목은 안 말라요? 물을 더 줄까?"

"아니에요. 이대로 좋아요."

"음악은? 오늘은 점잖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보내줄까?"

"좋지요. 감사해요."

"왜 음악이 좋지?"

"음악은 편안한 마사지 같거든요."

"마사지라니? 쓰다듬어 주는 것?"

"그래요. 사랑의 손길로 쓰다듬어 주면 좋아요. 세게 만지지만 않는다면."

"모든 꽃은 쓰다듬어주면 좋아할까?"

"아닙니다. 쓰다듬는다고 좋은 것은 아니에요. 쓰다듬는 손길. 그 느낌이 좋은 것이지요. 음악이 만져주는 그런 느낌이요. 어떤 꽃은 사람이 만지면 무서워하는 것도 있지요."?

"내가 잎을 꺾으면 아플까?"

"아픈 게 뭐죠?"

식물은 아픈 게 무언지 모른다? 표현하기 쉽지 않은 표현이다. 이런 경우가 가장 난감해진다.

"가령 몸이 매우 불편해져서 몹시 움직이기가 어려운 그런 상태라고 할까?"

"모르겠어요. 다만 잎이 없어지면 숨이 갑갑해지지요. 햇빛을 못 받으니까요. 그렇지만 곧 괜찮아요. 다른 잎이 있으니."

우리와 같이 신체를 절단함으로써 느끼는 통증은 나와 대화해 본 식물에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나무의 잎이나 줄기나 꽃은 절단이 되어도 곧 자란다. 재생에 고통은 없는 것 같다. 고통은 다시 말해 재생하기가 어려운 신체 부위가 없어질 때 생기는 것이다. 자기보호의 본능적 감각이다.

"잎이나 꽃을 자르면 기분이 나빠지나?"

"아니에요. 처음에는 답답하긴 하지만 오히려 기분이 좋을 때도 있어요. 너무 무성하면 또 숨이 가빠지거든요. 가끔 잎을 잘라주면 기분이 산뜻해져요."

"꽃을 꺾거나 자르면 어떤가? 기분이 나쁜가?"

"아니지요. 꽃은 잘라주기를 바랍니다. 다 피운 꽃을 자른다는 것은 꽃을 시집보내는 것과 같아요. 꽃은 씨앗을 품고 있거든요. 씨를 퍼뜨리는 것이 꽃이 바라는 것이거든요."

그렇다. 식물의 구조는 동물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동물의 감정을 식물과 동일시 할 수는 없다. 그들의 본분은 각기 다른 것이다.

"뿌리째 뽑아버리면 어떨까?"

"슬퍼요. 슬프고 무서워요."

생명의 존귀성은 모든 생명체에게 동일하다. 나는 정말 궁금한 것을 물었다. 벡스터가 말했지. 식물은 주인이 같은 공간에 없어도 텔레파시의 능력이 있다고.

"비란코상, 내가 이 방에 없어도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요?"

"나는 느낌이 올 때만 알 수 있어요. 익숙한 느낌이 오면 가까이 가고 싶죠."

"어떤 느낌일까?"

"그냥 느낌이에요. 음악이 들려오면 느낌이 생기는 그런 느낌이지요."

"색깔이 보이나?"

"색깔이 뭐지요?"

"저기 있는 철쭉꽃과 그 옆에 있는 크리스마스 나무의 꽃이 다른가?"

"다르지요."

"어떻게?"

"느낌이 달라요. 곧 알게 되지요. 꽃이 피면 각각의 꽃이 나에게 주는 느낌이 다르니까요."

"느낌. 음악이 들려주는 느낌과 꽃에서 느끼는 느낌은 다른가?"

"다르지요. 지금 저와 대화하는 느낌하고도 달라요. 다 느낌이지요. 다 달라요."

"그렇다면 꽃의 냄새는 어떻게 다르지? 꽃마다 향기가 다른 것을 아는가?"

"냄새가 무언지 몰라요. 벌이 찾아가는 느낌 말인가요?

벌이 다가올 때 다른 꽃에 갔다가 왔다는 느낌이 전해져요. 우리는 더 좋은 느낌을 벌에게 주지요."

그때 문득 나는 깨달았다. 바로 파장이었던 것이다.

모든 물체에는 파장이 있다. 소리, 색깔, 움직임, 냄새, 다 파장이 다른 것이다. 비란코상은 이 파장을 느낌이라 말하고 있다.

세상은 파장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파장, 바로 기(氣)를 말한다.

나와 비란코상의 대화도, 식물의 의사 표시도, 그들간의 소통도 다 기, 즉 파장으로 통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파장의 존재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

적외선의 파장을 우리는 감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곤충은 안다. 그들의 파장에 대한 감지의 폭이 우리와는 다른 것이다.



7.헤이세이 (平成) 0년 12월 8일

보다 고차원적인 고무나무와의 대화였다.

"몇 살인가?"

"13세."

"아직 어른은 아니군."

"어른이 무언가?"

"더 성장할 수 있냐는 것이다. 물론, 언제까지인 줄은 모르지만."

"몇 살까지 성장하는가?"

"몇 살까지라는 것은 없다. 조건에 따를 뿐이다."

"조건이란?"

"햇빛과 물, 공기, 토양, 그리고 환경이다."

"조건만 좋으면 얼마든지 성장하는가?"

"경우에 따라서는... 한없는 성장은 어렵다. 햇빛과 물이 도달하고 순환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이와는 관계없다. 우리는 항상 똑같다. 왜냐하면 잎이 지면 다시 새잎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나이는 우리에게 의미가 없다. 늘 새롭다."

"나이가 많으면 느낌이 더 많아지는가 아니면 성숙하는가."

"그렇다. 느낌이 더 풍부해진다."

"왜 사는지라고 생각하는가?"

"모른다. 생겨났기 때문에 존재한다."

"만일 생명이 없어진다면? 강제로 누군가에 의해서."

"슬프고 무섭다."

"고무나무 잎을 칼로 베면 하얀 즙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 즙을 얻기 위해 고무나무를 기른다. 아픈가? 억울한가? 사람들이 미운가?"

"우리의 존재이유다. 아프지 않다. 억울하지 않다. 보람이 느껴진다. 보다 많은 즙을 주고 싶다. 그리하여 우리의 종을 더 많이 퍼뜨리고 싶다."

"삶의 목표가 있는가?"

"모른다. 다만 살아 있고 싶을 뿐."

"다른 나무나 벌레가 공격한다면 어떤 대응을 하는가?"

"무섭지 않다. 또 새로운 잎이 늘 우리를 재생시키니까. 하지만 재생의 희망이 없으면 우리는 방어한다."

"어떻게?"

"여러 가지다. 그들을 공격한다. 숨는다. 때로는 그들을 죽인다."

"바라는 것이 있는가?"

"없다. 존재하고 싶을 뿐. 존재해서 그들과 함께 있고 싶을 뿐."



아웃
8. 헤이세이 (平成) 0년 1월 3일

일본의 하이쿠 한 수.



'우리 두 사람의 생애

그 사이에

벚꽃의 생애가 있다.

<바쇼(芭蕉>'



9. 헤이세이 (平成) 0년 3월 7일

"식물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움직임을 느끼고 음악을 즐기는 것이 다 가능하다. 다만, 그 방식이 다를 뿐이다. 식물의 두뇌가 어디 있는가의 해답은 열렸다. 그들의 두뇌는 느낌 그 자체였다. 느낌은 바로 파장, 기의 파동이었던 것이다.

기(氣).

기를 이해하면 자유스럽게 모든 존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기의 소통으로 우리는 모든 존재와 대화가 가능하다. 도인들은 이렇게 나무와 호랑이와 바위와 바람과 이야기를 나누었구나....

식물에게도 하등식물과 고등식물의 구분이 있다.

오래되고, 많은 잎을 가지고 있는 것은 기에 대한 감응이 더 풍부하고 예민하다. 그들의 의사 또한 식물에 따라 차원이 다른 것은 바로 이 감응의 풍부성과 다양성과 직결되고 있다.

그들의 기에 대한 감응은 사람이나 동물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는 것도 많이 있다. 다시 말해 초능력적 요소가 분명히 내재되어 있다.

그들이 발산하는 피톤치드 같은 치유효과가 있는 호르몬이나 기운 또한 같은 원리이다. 원예치료라고 하는 그런 방법은 확실히 기치료의 일종인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악의가 없다. 그들은 그저 존재하고 동물들에게 스스로를 제공함으로써 보람과 스스로의 번성을 바랄 뿐이다. 경쟁도, 대립도, 미움도, 고통도 없다. 다만 생명이 위협받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천사의 마음을 가진 것이다. 아낌없이 베풀어 기쁨을 느끼는 존재들. 그들이 우리들 모두의 삶의 원천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사랑의 존재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하지만 왜? 왜? 신께서만 답이 없으십니까?"

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었다. 후루마쓰의 노트는 여러 권이 있었다. 일기를 다 읽고 난 순원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망연히 앉아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거짓말은 아닐까.

후루마쓰와 그의 딸 나리코는 어떤 사람들인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리코를 찾았다. 나리코를 대하는 순원은 하룻밤 사이에 10년은 나이가 든 어른이 된 듯 했다.

"저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거짓 같습니다. 납득시켜 주십시오."

한동안 침묵을 지킨 나리코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외계인입니다. 세상을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외계인인 것입니다. 우리는 아니, 아버지께서는 인간들만의 네트워크가 아닌 외계의 존재들과도 소통하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어 하셨습니다. 생명 있는 존재는 말할 것도 없고, 생명이 없는 존재까지도 서로 소통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사람과 사람간의 폐쇄된 연결고리가 아닌 세상의 모든 존재와 열려있는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어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한달음에 쏟아낸 나리코는 가만히 순원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다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세상의 모든 존재 향해 열려 있는 연결고리를 아버지는 인터넷이 아닌 '아웃터넷(outernet)'이라 명명했습니다. 이 의미를 아시겠죠. 사람과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inter)와는 다른 아웃터(outer)의 개념을.

인터는 이미 사람끼리 서로 연결되는 사이죠. 아웃터는 아직까지 연결되지 않는 사이입니다. 우리는 외계인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외계인이 되고 싶었고 아버지는 일부 성공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바로 식물과의 대화를 하는데 성공하신 것입니다."

기가 막혔다. 외계인라고?

나리코의 설명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순원은 여전히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순원의 마음을 읽기나 한 것처럼 나리코의 설명은 부친의 특별한 능력에 대한 언급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아시다시피 아버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말을 못하고 못 듣는 특별한 능력이지요. 그래서 아버지는 기(氣)를 느끼시는 능력이 남달리 발달되어 있으신 겁니다. 아버지는 그런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수련을 꾸준히 해오셨고 그 결과로 보통 사람을 초월하는 능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일기에 있는 내용은 아버지의 그런 능력을 기술한 것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그것도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관심은 식물의 감정반응, 그런 작은 것에 있지 않습니다. 순원씨가 놀라는 것에 저는 놀라지 않습니다. 그런 정도 가지고…."

순원이 되물었다.

"외계인이라고 하셨습니까?"

"아직 이해가 안 되시는 모양이군요. 우리는 인간에 만족하고 인간에만 집착하는 그런 좁은 인간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온 우주의 존재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계인이지요."?

다시 순원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후루마쓰 선생님의 원대한 목표가 그런 의미의 외계인, 다시 말해 신선이나 도인이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저 소통하고 대화하고 싶은 것입니다. 공간과 시간과 존재를 초월해서, 아버지는 신과 소통하고 싶어 하시지요."

"신, 신이 있습니까? 후루마쓰 선생님은 하느님과 대화하고 싶어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잠시 말이 없던 나리코는

"그렇습니다. 신이 있죠. 바로 저 뒷산에.

아버지가 매일 모시고 계십니다. 야마노아마고우치 신림(神林) 속에 계시는 바로 그 분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고 엄숙하게 말을 했다.

순원은 경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성공하셨습니까?"

"아직요."

"왜? 다른 식물과는 모두 대화에 성공하셨는데, 왜 그 신과는 안 되는 것이지요?"

"저로서도 모릅니다. 그래서 매일 아버지는 정진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저를 여기에 머무르게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처음에 아버지는 순원씨를 주의 깊게 눈여겨보셨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아버지는 그런 눈길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순원씨의 무엇인가의 잠재력을 보신 것은 아닌지 저로서도 짐작이 안 됩니다만, 일기를 순원씨에게 보여주신 것을 보면 어떤 특별한 인연을 느끼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나리코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특별한 인연? 순원도 가슴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나리코씨는 한국어의 풍부한 형용사를 입력하는데 한국인이 필요하시다고 생각하신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사실 외국인의 감정을 감성뇌파전환기에 입력하기는 순원씨가 처음입니다. 저는 인간의 감정의 파장이 언어를 떠나 동일하다는 가정을 순원씨를 통해 처음 확인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일단은 영어를 쓰는 미국인과 또 다른 외국어 사용자들이 협조를 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외국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한 일이지요."

그런 고민을 안고 있던 후루마쓰 부녀 앞에 때맞춰 주곤중과 마순원이 플라워텔레스코프가 어떤 장치인지 파악하기 위해 후루마쓰 자택을 방문한 것이었다. 두 한국인이 그들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노라는 것이 나리코의 고백이었다.

"특히 외국어 사용자라고 하지만 일본어를 모르는, 아니 순수한 한국인의 감정을 한국어로만 표현해온 순원씨와 같은 젊은 분이라면 저는 더 이상의 적격자는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더욱이 말씀드린 대로 한국어 형용사의 다양한 표현은 세계 최고이지요."

순원은 갑자기 무엇인가 가슴에서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허전한 슬픔이 이런 감정일까? 그런 것이었구나, 나는 그런 용도였구나'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쓸쓸한 기색의 순원이 일어나려고 하자 나리코는 순원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잠깐만요, 순원씨의 느낌이 전해 오는군요. 저도 느낌이 있으니까요. 순원씨 잠깐 저 하늘 좀 보세요."

엉거주춤 순원은 나리코가 가리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아직 별도 안 뜬 듯 칠흑같이 어둡기만 하였다. 그 때 서쪽 하늘에서 동쪽으로 유성 하나가 긴 꼬리를 그으며 번쩍하며 지나갔다.

하늘은 어두운 것이 아니었다. 하늘은 검은 빛 아니, 검푸른 색으로 빛나면서 별들이 크리스마스트리와 같이 하늘 가득히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나리코가 속삭였다. 작은 소리로,

"순원씨. 저는 외계인이 아니에요. 나리코입니다."

유성과도 같이 빠르게 말한 뒤 나리코는 자리를 일어섰다.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컷1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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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프로 마스터즈` 26일 대전서 개막… 아시아 4개국 최강자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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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태국, 베트남 총 4개국이 참가하는 국제대회 'FC 프로 마스터즈'가 26일 대전 이스포츠 경기장에서 개막한다. 대전시와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지원하는 'FC 프로 마스터즈'는 FC(전 FIFA 온라인 4) 리브랜딩 이후 개최되는 첫 국제대회로 28일까지 진행된다 'FC 프로 마스터즈'는 'FC 온라인' 경기와 'FC 모바일' 경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FC 온라인' 대회는 KT롤스터와 광동프릭스가 한국 대표로 출전하고, 'FC 모바일' 대회는 'SODA'와 'JOSCAR'가 경기를 치른다. KT롤스터와 광동프릭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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