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발발하기 3년 전인 1589년 정여립의 역적모의 사건으로 당시 정권을 잡고 있었던 동인들 1000여명이 대거 숙청이 되었다. 서인의 거두였던 정철을 정점으로 한 서인들에게 다시 권력의 칼을 쥐어 준 선조는 비대해진 동인세력들을 견제하는 차도지계로 서인들을 등용하여 한쪽으로 기울어진 권력의 균형추를 복원한다. 그런데 그 복원의 폭이 너무 커서 1000여명의 동인들이 밀려나니 이제는 서인중심의 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조선왕조 5백년 내내 충신론, 역적론은 정권을 잡고 상대방을 밀어내는 논리로 작동하면서 당쟁정치의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명분론과 당파론에 몰입되었던 조선의 양반계급은 위민정치를 위한 맹자, 공자를 배웠지만, 정작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 더 몰두하면서 많은 조선의 국왕들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놓고 그들만의 권력을 즐기고 세습하였다. 말로는 백성들을 위한다면서 정작 자신들의 권력을 즐겼던 것이다.
일본이 토요도시 히데요시를 중심으로 천하를 통일하고 잘 조련된 조총부대를 포함 전투병력 수십만을 양산하며 조선침략의 야욕을 드러내도 당시 조선의 문인계급은 그저 저 먼 남의 나라 일로 치부하며 간간이 제기되었던 일본의 조선침략론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는 방관으로 임하다 훗날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조선 국왕 선조를 정점에 놓고 동인, 서인은 명분은 백성을 위하고 국왕에게 충성한다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신려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기득권 싸움에 올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드물게 이이, 유성룡 같은 큰 인물도 있었지만 말이다.
힘을 합해서 국방을 튼튼히 하고 군사적인 대비를 해도 그 당시 동아시아의 판도를 가르는 국제전으로 치달았던 임진왜란을 잘 치른다는 보장이 없었는데도 당쟁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신분계급사회의 경직성으로 외부의 큰 군사적인 도전을 극복하지 못하고 죄 없는 백성들만 너무 많이 살상되고 삶의 고초를 그 전란의 후유증으로 처참하게 겪어야 했다. 이러한 역사적 결과를 초래한 위정자들을 우리는 결코 충신이라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왕이 백성을 버리고 명나라로 피난까지 생각했던 그 치욕을 잊으면 안된다. 수 백년 전의 일이지만 그 역사적 교훈은 지금 우리 분단된 한반도에 더 크게 울리고 있다.
필자가 보기엔, 지금 이 순간 분단국가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진정한 충신은 안보적으로나 국제정치적으로 최대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안보태세 정립을 위해 말로만이 아닌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만 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추가 사드배치를 놓고도 옥신각신하는 시간이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볼 일이다. 이제 북한이 6차 핵 실험과 화성15호를 발사한 상황에서 核 대피훈련 한 번 안하는 이 나라의 정신적인 안보지수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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