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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어른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 승인 2017-12-21 06:00
  •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김희정-사진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어린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엄마 혼자서 밥 벌이를 하는 모습이 아팠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그렇게 되고 싶었던 어른은 안달하지 않아도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었다. 이런 나에게 엄마는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미를 풀어 보면 어린 사람들과 어울릴 때 자꾸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듣고 있다 밥값이나 술값을 내면 좋다는 뜻이었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어른으로서 말 보다는 실천이고 실천을 앞세우면 젊은 친구들에게 꼰대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해석이 가능했다.

우리 사회가 늙어간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지금은 노인이라고 불리지만 한 때 이 나라의 산업의 일부분을 담당했고 한 집 안의 가장으로 가정을 지켰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을 보니까 나이만 쌓였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나이 대우는 둘째 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젊은 사람들의 눈치까지 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까지는 내가 어린 시절 꿈꾸었던 나이만 먹으면 누구나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이와 경험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실천을 중요시 생각하는 어른의 이야기가 인디언들의 삶에서 엿볼 수 있다. 인디언들은 나이를 먹은 사람을 큰 산처럼 여겼다. 부족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그를 찾았고 개인적인 일도 의논하고 귀담아 듣고 삶의 지혜를 얻었다. 인디언들이 바라 본 어른을 요약해 보면 순리를 따르되 개인적인 욕심은 부리지 않고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했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된다고 하지만 어른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만만한 이름이 아니었다. 인디언들의 삶을 통해서 볼 때 말이다. 나이만 먹어서 어른이 된다면 좋을 텐데 그 어른이라는 단어 뒤에 꼰대라는 말도 함께 따라오고 심하면 나이값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나도 언젠가 지금보다 나이를 먹으면 어른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 어른이라는 말을 듣는다는 게 솔직히 겁이 난다. 삶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나이만 먹다 보니 주변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존경은 둘째 치고 꼰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런 고민은 비록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일부 어른들이 그렇지만 나 역시 나이를 먹고 언젠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무료 승차권을 받아 불특정 다수의 젊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아야 할까 아니면 문쪽에 서서 가야 할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어른을 폄훼하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라고 먼저 못을 박는다. 일부 나이를 먹은 어른들이 깊은 고민 없이 목소리만 높이는 일을 보고 다수의 어른들을 싸잡아 도매금으로 넘겨서는 안되겠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나라에도 인디언들처럼 어른들이 넘쳐 났으면 하는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어른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한 평생 바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입은 닫고 지갑을 여는 어른들을 기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갑은 없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 세대을 이끌어 갈 젊은 사람들이 이기적인 생각을 할 때 회초리 같은 말을 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하다. 어느 분야에서도 이런 어른들이 나와야 하고 이런 어른들의 말을 귀담이 듣는 것은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보약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며칠 후면 새해가 된다. 나이로 따진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한 살 더 먹었다고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사회에 나올 수밖에 없다. 적어도 그 어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눈치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하는지도 어른들의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백 세 시대를 말하는데 어른들이 없는 빈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자조섞인 말이 나오면 나이를 떠나 우리 모두의 비극이다.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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