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25. 박종철의 사인이 규명되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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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25. 박종철의 사인이 규명되지 않았더라면

영화 1987, 그리고…

  • 승인 2018-02-2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1987 (1)
영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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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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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얼토당토아니한 궤변이 국민들을 분노의 소용돌이에 밀어넣었다.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이 사망한다. 증거인멸을 위해 박 처장(김윤석)의 주도 하에 경찰은 시신 화장을 요청한다.

하지만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최 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인다.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거짓 발표를 이어가는 경찰. 그러나 현장에 남은 흔적들과 부검 소견은 고문에 의한 사망을 가리키고, 사건을 취재하던 윤 기자(이희준)는 '물고문 도중 질식사'를 보도한다.

이에 박 처장은 조 반장(박희순)등 형사 둘만 구속시키며 사건을 축소하려 한다. 한편, 교도소에 수감된 조 반장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이 사실을 수배 중인 재야인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조카인 연희(김태리)에게 위험한 부탁을 하게 되는데…….

한 사람이 죽고,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뜨거웠던 1987년의 이야기인 영화 <1987>의 대강 줄거리다. 2월 15일 현재 이 영화를 본 관객의 수는 누적 7,223,175명으로 39위이다.



이 영화의 모티브이자 실제 모델인 당시 서울대생 박종철(朴鍾哲)은 196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그는 제5공화국 말기인 1987년 치안본부에 붙잡혀가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받다가 죽었다.

애초 경찰은 그가 지병으로 인한 쇼크사였다고 주장했으나 부검 결과 박종철은 욕조 턱에 목이 눌려 질식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축소해 넘기려는 전두환 독재 정권에 맞서 국민들의 '6월 항쟁'이 벌어졌다.

전두환은 결국 6·29 선언을 발표해 대통령 직선제 시행 등 민주화 요구를 수용했다. 박종철이 사망한 그 해 사랑하는 딸이 태어났다. 하지만 '6월 항쟁'의 본대(本隊)에 합류하느라 나는 얼추 매일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아내의 책망이 이어졌다. "당신이 데모를 한다고 나라가 달라져? 그러다 잡혀가면 우리 애들은 어쩔 껴!" "……"

세월은 여류하여 지난 2005년에 딸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출신고교에서 유일무이 합격하였기에 난리가 났다.

따라서 부산이 집인 박종철이 서울대에 합격하여 감격했을 그의 집안 식구들이 누구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으로 다가오는 걸 감당하기 힘들었다.

- 홍경석 독자 "동아일보로 밥상머리 교육… 딸 서울대 들어갔어요" 홍경석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동아일보를 배달한 인연을 갖고 있다. 집안이 가난해 중학교 문턱을 넘지 못한 그는 역 앞에서 구두를 닦으며 생계를 이어야 했다. 못 배운 게 한이었기에 아이들만큼은 잘 가르치겠다며 이를 악물었다는 홍 씨는 자녀들의 밥상머리 교육에 신경을 썼다. 그 교재는 '동아일보'였다. 하루 지난 신문을 회사에서 챙겨 집에 갖고 와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그는 "그렇게 교육 받은 딸이 서울대에 입학했다"며 동아일보에 고마움을 전했다. 홍 씨는 요즘 대전 KT 경비원으로 근무 중이다. 글쓰기를 좋아해 자신의 삶을 돌아본 에세이 '경비원 돈키호테'를 출간했다. 충남도청, 국정홍보처 리포터로도 활동했다. 이 또한 오랜 세월 동아일보를 보면서 얻은 지식 덕분이라고 홍 씨는 털어놓았다. -

이상은 동아일보가 30000호 발행을 기념으로 실시한 [동아일보 30000호 인증샷]에 응모한 필자의 글과 사진이 채택되어 지난 2017년 12월 15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글이다.

그렇다. 나는 남들 다 가는 중학교조차 문턱을 넘지 못한 극명한 과거와 아픔을 지니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아무리 줄곧 1~2등을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조차 없는 가난한 나를 도와주는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때문에 딸이 서울대 합격증을 출력해서 주던 날, 우리 가족은 감격해서 펑펑 울었던 것이다. 지난 2004년 서울대에서 '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라는 자료를 냈다. 이에 따르면 33년 동안 고소득 자녀 입학은 17배나 증가한 반면 '가난한' 농어촌 학생의 비율은 그동안 5분의 1 이하로 쪼그라들었다는 것이 눈에 띈다.

과거 지방이나 시골학교에서 서울대에 합격하면 '개천에서 용이 났다'며 언론에선 이를 대서특필했다. 더욱이 사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명문대, 특히나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을 집중조명하고 뉴스화 하는 건 통상적 보도방침이었다.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그 '개천의 용'들은 얼추 절멸(絶滅)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는 부모의 막강한 경제력과, 공교육을 능가하는 수준과 시설의 사교육에 투항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울 강남의 부동산 시장이 정부를 비웃듯 고공행진을 하는 까닭은 이 지역 주거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률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의 개선이 되지 않을 경우, 강남의 땅값은 더욱 치솟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현재 한국사회의 모순 상황의 핵심에는 초경쟁 입시교육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의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2015년 9월 29일자 한겨레신문에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실었다.

이에 따르면 "절망 코드야말로 한국 젊은 층의 신조어를 관통한다. 이들 신조어 중에서도 압권은 헬조선, 즉 '지옥 같은 한국'이다. 영어인 '헬'(Hell=지옥)은 이 신조어의 현대성을 부각하지만 '한국'도 아닌 '조선'은 이미 신분의 대물림이 거의 제도화된 한국 사회의 퇴행성을 암시한다.

150년 전에 조선의 한양 북촌에서 태어난 권문세도가들의 자녀들이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듯, 오늘날 '강남족'은 거의 저들만의 세습적 카스트를 이루어 거주지, 통혼권, 학습·유학 루트, 언어(영어 상용 선호), '웰빙' 등의 차원에서 배타적인 세습신분 계층을 형성한 게 아닌가?"라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글을 새삼 곱씹은 까닭은 박종철이 고문 후 사망했음에도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라며 궤변을 늘어놓던 과거의 정부와 현 정부 역시 국민의 실질적 삶의 질 향상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골목의 전쟁]이라는 책을 일독했다. 이 책은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토대로 한 작품이다. 이 책은 이탈리아 국수인 파스타와 우리가 흔히 접하는 국수의 가격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현실을 먼저 해부하고 있다.

필자가 자주 가는 곳의 국숫집은 잔치국수 한 그릇이 고작 3천 원이다. 양도 푸짐하게 주므로 야근을 들어가는 날엔 곧잘 들른다. 반면 파스타는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가격 또한 부담이 되기에 기피하는 터다.

그럼 파스타와 일반국수의 가격 차이는 왜 발생할까? 우선 일반 국수의 가격이 착한 이유는 재료가 저렴하고 대량생산에 특화된 메뉴이기 때문이다. 육수(멸치+다시마 등)를 만들어놓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면을 삶아서 국물과 함께 내면 된다.

반면 파스타는 재료부터 비싸다. 토마토 파스타에 쓰이는 토마토는 모두 수입산이다. 또한 파스타는 국수처럼 미리 끓여놓을 수도 없다. 따라서 파스타의 높은 가격에 분노할 게 못된다.

이 책은 이밖에도 '누가 대만 카스텔라를 죽였는가'에 이어 '유행 아이템이 실패하는 이유'를 지나 '그 많던 연어 무한리필점은 어디로 갔을까'까지를 두루 고찰한다. '대박의 저주' 편에서는 엄청난 성장세를 구가했던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카페베네'가 "가히 신화!"라는 찬사 대신 승자의 저주인 양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Icarus)처럼 추락해버린 현실을 역시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쉬 볼 수 있듯 프랜차이즈의 성업은 이제 예사로 보인다. 하지만 카페베네의 경우처럼 단기간에 지나치게 많은 점포들이 늘어나게 되면 피로감과 함께 식상함이 소비자들을 덮친다. 또한 가맹점주에 대한 본사의 교육과 투자의 질 역시 하락하기 마련이다.

베이비부머들의 잇따른 창업이 대세인 즈음이다.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투자한 금액의 본전을 건지려면 적어도 2년 이상을 영업해야 한다. 따라서 특히나 프랜차이즈 업종에 있어서도 옥석을 가리는 지혜는 대단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사업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속가능성이 얼마인지까지도 예측을 해야만 한다. 이 책에선 또한 자영업의 유행 사이클은 주식시장의 사이클과 유사함을 적시하고 있다.

예컨대 주식시장에서는 어떤 주식이 관심을 받다가 열광적인 주식이 된 후 하락하면서 무관심한 주식으로 변하는 경우도 왕왕 있으므로 이 또한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동네 골목에서는 프랜차이즈 업종들의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 책의 소개를 일부러 첨부하는 건 은퇴열차에 이미 탑승했거나 준비 중인 필자와 같은 베이비부머들이 부디 성공으로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어쨌든 만약에 당시 박종철의 사인이 규명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의 민주화 속도는 한참이나 더뎠을 게 틀림없다. 박종철 열사에게 새삼 바위보다 무거운 경의(敬意)를 표한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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