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40화. 라면이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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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40화. 라면이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나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

  • 승인 2018-04-2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우리네 인생이란 길함과 흉함, 불길함과 복스러움이 거듭되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연속이자 점철이다. 최근 아들이 결혼했다.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하지만 예상 외로 많은 하객들이 찾아주셨고, 축하까지 해 주시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날의 예식에서 나는 과감하게 다음의 셋을 생략했다. 예단 주고받기와 주례사, 폐백(幣帛)이 바로 그것이었다. 한데 아들의 혼례를 잘 마치고 돌아온 이튿날이었다.

위중하셨던 장인 어르신께서 입원해 계신 병원서 연락이 왔다. 곧 운명하실 듯 보이니 어서 가족들을 소집하여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보라는 내용이었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장인 어르신께선 벌써 10년도 넘게 투병생활을 하셨다.

얼마 전에도 위중하시다기에 병원을 찾았는데 그 자리에서 아내는 많이 울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아버지, 돌아가시더라도 제발 우리 아들이 결혼하고 나면 돌아가세요. 정말이지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가족들이 얼추 다 모였을 무렵 장인 어르신께선 그만 이승에서의 끈을 완전히 놓으셨다. 가족들의 오열과 함께 모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고인을 모셨다. 아들의 결혼식 바로 다음날의 비보(悲報)인지라 나는 지인들에게 장인 상(喪)을 감히 알릴 수 없었다.



대신 동서형님과 처제 등 다른 가족들이 부고(訃告)를 냈다. 덕분에 많은 문상객들이 찾아주시어 장례를 잘 마칠 수 있었다. 장례는 병원의 별관 장례식장 지하 1층에서 치렀는데 향이 타는 냄새와 함께 지하의 특성 상 환기 문제가 호흡을 불편하게 하였다.

그래서 무시로 지상으로 올라와 바람을 쐬곤 했다. 그러던 중, 그 병원의 '야외 쉼터'를 발견하는 수확(?)을 거두었다. 이름 모를 꽃들의 향연까지 벌어진 그곳을 찾으니 며칠간 헝클어졌던 머리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행동거지가 종작스런 나비와 벌들도 달려와 꽃들의 꿀을 빠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새삼 인생이란 저 꽃들처럼 화려한 날이 있었는가 하면, 시든 꽃처럼 또한 언젠가는 필연코 죽음에 이르는 숙명이란 화두의 고찰에 잠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사람은 누구라도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꿈꾼다. 그러나 풍진 세상살이는 극히 일부만을 제외하곤 이를 용인치 않는다. 따라서 병원 역시 안갈 순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정성껏 삼일장(三日葬)을 마쳤다.

허나 아들과 며느리에겐 장인 어르신의 상을 알리지 않았다. 우리 속담에도 있듯 때론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도 있는 때문이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예식을 마치고 떠난 외국으로의 여행은 반드시 즐거움만을 담보해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평생 잊지 못할 기쁨과 추억까지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외할아버지의 부음을 알린다손 친다면 과연 그 둘은 여행 내내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 때문에 가족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려 극비로 하자고 합의한 것이었다.

물론 아들과 며느리가 귀국한 뒤에 외갓집을 찾아 외할머니께 위로를 드리고 장인 어르신을 모신 곳으로 뒤늦은 문상을 가면 될 것이다.

이제 울적한 얘기는 그만 하고 조금은 밝은 글로 치환코자 한다. 장인 어르신의 상을 치르던 날의 일이다. 삼시 세 끼 육개장만을 먹었더니 물리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밤에는 컵라면에 물을 부어 먹었다.

거기에 소주까지 추가하니 그 맛이 참으로 별미였다. 인스턴트식품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손꼽히는 게 바로 라면이다. 식품업계의 혁명으로까지 극찬 받았던 라면은 일본에서 시작됐다.

라면은 1958년 일본 닛신(日淸)식품의 회장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에 의해 개발되어 시판된 식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1950년대의 일본은 제2차 대전 패배의 후유증으로 인해 건국 이후 최대의 고난기를 겪고 있었다.

이 때문에 식량이 부족하여 미국에서 밀가루를 지원 받아 빵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가 6.25한국전쟁 이후에 그러했듯. 이에 안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쌀밥을 주식으로 하던 식습관 탓에 빵만으로는 공복감이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그리곤 밀가루를 이용한 새로운 식품을 개발하기로 결심했는데 그 해법이 결코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술집을 찾은 안도는 덴뿌라를 기름에 튀기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게 된다. 바로 집으로 돌아온 안도는 밀가루를 국수로 만들어 튀겨 보았고, 이후 몇 차례 실험 끝에 결국 라면 개발에 성공하였다.

안도가 만들어 낸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아지츠케면(味附麵)은 국숫발에 양념을 묻힌 것으로 끓는 물에 2분만 넣고 끓이면 되었다고 한다. 한편 국내에서는 1963년 삼양라면이 일본의 라면 제조 기술을 도입해 라면을 선보이면서 라면의 시대를 열었다.

그때가 벌써 55년 전이니 세월처럼 빠른 게 없음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라면을 가장 맛있게 먹었던 때는 어려서 처음 맛본 라면의 정말 신기한 맛이었다. '세상에 이런 국수도 있단 말인가?!'

다음으로 느꼈던 환상의 라면 맛은 십여 년 전 찾은 중국여행 당시 호텔에서 먹었던 한국산 컵라면이었다. 그 때 모 문학전 공모에서 금상을 받았고 보너스로 중국문화기행을 갔다. 같은 방을 쓰게 된 이가 출국 때 가져왔다며 컵라면과 팩소주를 꺼냈다.

"와~ 대박!" 덕분에 여행 내내 소주와 컵라면으로 행복한 밤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올부터 나도 '6학년'으로 올라섰다. 결혼식을 마친 아들과 며느리는 두바이를 경유하여 모리셔스로 간다고 했다.

모리셔스? 메리야스는 알겠는데 거긴 당최 모르겠네. 그렇다면 뭐? "검색하면 알 수 있지!" "신은 모리셔스를 창조했고, 그 다음으로 천국을 만들었다." <톰소여의 모험>의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모리셔스를 방문했을 때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는 고급 휴양지 모리셔스는 태국이나 필리핀 지역에 비해 거리상의 제약 때문에 국내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고급 휴양을 즐기려는 유럽인들과 예비 신혼부부들에게 새로운 허니문 지역으로 각광 받고 있다고 하니 아들의 선구안(選球眼)이 새삼 놀라웠다.

- 모리셔스는 인도양 해상의 마다카스카르(Madagascar)에서 동쪽으로 800㎞지점에 있다.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1/100정도로 모리셔스 섬이 가장 규모가 크다.

동쪽에 로드리게스 섬, 북동쪽에 카르가도스 카라조스 제도, 북쪽에 갈레가 제도가 위치해 있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오래된 문화가 융합돼 또 다른 독특하고 경이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내륙지방은 대부분이 사탕수수밭으로 메워져 있고 바다와 면한 지역은 전부 관광지로 개발돼 바닷가를 따라 이어져 있다. 동서남북 어느 곳으로 횡단을 해도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다다를 수 있어 렌터카를 이용해 이름다운 자연경관과 재미있는 볼거리를 찾아 섬을 둘러볼 수 있다.

아름다운 해변과 산호초는 사랑스럽기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길게 펼쳐진 백사장은 거울 같은 물빛과 만나며 관광객을 유혹한다. - 검색을 통해 대충 살펴본 '모리셔스'의 해부도다.

아들은 결혼식을 앞두고 "해외여행을 다녀오다가 귀국 시 뭘 사다드릴까요?"를 물은 적이 있었다. 말로는 "니들이나 잘 다녀 와"라고 했지만 실은 멋진 선글라스를 하나 사다주었음 하는 바람이 강렬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버킷리스트'가 있다. 버킷리스트(bucket list)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말인데 회갑을 맞는 내년에 아들은 우리 부부에게 크루즈 해외여행을 시켜준다고 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랬다고 아들과 새아가가 찾은 모리셔스로 우리 부부 역시도 크루즈를 타고 들어선다면 과연 얼마나 럭셔리할까! 그리곤 환상의 낙조(落照)가 모리셔스의 백사장을 붉은 빛으로 물들일 때 먹는 컵라면과 한국산 소주의 맛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힐까!

그러면 아마도 현지의 호텔리어들까지 달려와 나도 좀 달라고 채근까지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비용이 상당할 듯 싶기에 망설여진다. 부모란 이런 것이다. 자식들에게 경제적으로도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건 그야말로 본능이니까.

어쨌든 나의 라면 사랑은 앞으로도 불변할 것이다. 더욱이 경비원으로 근무 하는 이상 야근 때 먹는 라면처럼 간편하고 친근하며 가격까지 착한 식품은 다시없음에. 만약에 라면이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현대인들은 얼마나 입이 근질근질했을까!

끝으로 지금쯤 귀국하고자 두바이(Dubai)에 있을 새신랑 새신부가 해외여행을 잘 마감하길, 또한 이승을 떠나신 장인 어르신께선 꼭 극락왕생(極樂往生) 하시길 소망한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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