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57. 장마 없었다면 조선 건국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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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57. 장마 없었다면 조선 건국 가능했을까

날씨의 좌충우돌 단상

  • 승인 2018-07-2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조선의 제1대 왕이다. 그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 조선(朝鮮)을 세운 불세출의 인물이었다. 이성계의 재위 기간은 1392년부터 1398년까지 불과 6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말년에 자식들이 벌인 골육상잔의 권력 다툼에 넌더리를 내고 '함흥차사'라는 사자성어를 남기면서 권력의 무대에서 사라진 때문이다. 이성계의 조선 창업 전, 고려의 우왕은 전국에 징집령을 내려 병사들을 소집한다.

팔도도통사에 최영, 좌군도통사엔 조민수, 그리고 우군도통사엔 이성계를 장수로 삼아 요동(명나라) 정벌을 명한다. 하지만 이성계는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을 통해 조선 건립의 기틀을 마련한다.

이성계는 5만 명의 군사를 끌고 요동 정벌을 떠났지만 위화도까지 간 뒤 대략난감의 늪에 빠지게 된다. 위화도는 북한 신의주의 동쪽 약 2km 지점에 위치하며 압록강 상류에 있는 조그만 섬이다.



서울 여의도의 약 1.5배 정도 크기라는 이곳에서 이성계는 당시 장마가 닥치면서 진군하지 못하는 낭패에 접하게 되었다. 많은 병사가 압록강의 불어난 물에 의해 뗏목을 타고 건너다 익사하는 등 그야말로 악전고투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이성계는 우왕에게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우화도 회군'의 변(辯)을 고했다.

- 장마 때문에 위화도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또한 1. 막상 요동을 침입한다손 쳐도 작은 나라(고려)가 싸워서 큰 나라(명나라)를 이길 확률이 적다. 2.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병법에도 맞지 않는 패착이며 3. 명나라와 싸우는 사이 분명 왜구가 쳐들어 올 것이다. 4. 더욱이 장마철이라 덥고 습해서 활의 아교가 풀어지며, 전염병의 창궐 우려까지 다분하다. -

격노한 우왕은 반발했고 최영 또한 도망병은 현지에서 참하라며 계속 진군을 명한다. 그러나 이미 회군을 결정한 이성계에게 있어 더 이상의 선택은 없었다. 결국 이성계는 개경으로 돌아와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 대신 고작 9세의 창왕을 왕위에 앉히게 된다.

이어 1년 만에 다시 공양왕에게 왕위를 잇도록 했으며 궁극적으론 조선 창업의 전기까지를 마련하게 된다. 여기서 새삼 날씨의 중요함을 관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날씨를 매개로 한 어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번엔 중국으로 옮겨보자. 삼국지(三國志)에서 제갈공명은 '동남풍'을 이용하여 조조를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대파한다.

이 또한 날씨를 동원한 그만의 탁월한 병법이었음은 물론이다. 적벽대전은 중국 후한(後漢) 말기, 조조(曹操)에 맞서 손권(孫權)과 유비(劉備)가 연합하여 싸웠던 전투를 뜻한다. 영화로 적벽대전을 보면 짚과 풀을 가득 실은 배를 보내 조조 군이 쏜 화살 10만 개를 가져오는 장면이 나온다.

혹자는 이러한 것들이 나관중이 만들어낸 소설에 불과하며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라며 일축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적벽대전 또한 날씨의 중요함을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임엔 분명하다. 이번엔 일본 차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에겐 '임진왜란'의 원흉으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겐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일본의 전국시대가 통일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호걸 3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도요토미는 주로 물을 이용한 수공 작전을 선호했다고 전해진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연 강수량이 많다. 얼마 전 일본 서부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주택들이 물에 잠기고 흙속에 매몰됐다는 뉴스는 이러한 근거의 방증이다.

도요토미는 전투에 있어 제방을 만들어 물이 빠져나가지 못 하게 만들고 적의 성(城)을 물바다로 만드는 전략의 귀재였다고 한다. 이 또한 날씨를 작전으로까지 연결한 병법의 하나였음은 물론이다.

필자의 고향인 천안에는 광덕산(廣德山)이 우뚝하다.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와 아산시 배방읍, 송악면과의 경계에 있는 천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광덕사 고려사경과 대웅전 등 문화재와 볼거리도 많은 이곳은 천안명물 호두과자의 주재료인 호두의 집산지로도 유명하다.

'광덕산'이라는 명칭이 말해주듯 예부터 산이 크고 풍후(豊厚)하여 덕이 있는 산이라 전해진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이면 해마다 한여름에 여길 찾았다. 그리곤 맑은 광덕산 계곡물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배가 출출해지면 어항 따위를 이용하여 천렵(川獵)까지 자행(?)했다. 1급수 청정 물고기를 잡아선 미리 준비한 고추장과 깻잎 따위들을 넣고 어죽을 끓였다. 그럼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동행한 친구의 아내들도 환장을 하고 덤벼들었다.

그 즈음의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지금껏 기억의 창고에 오롯이 보관돼 있다. 지금이야 계곡에선 밥도 못 짓고 불도 못 피우게 강력 단속하지만 과거엔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다.

따라서 광덕산 계곡에 죽마고우들과 놀러 가면 그 맑은 물에서 뛰노는 물고기들을 그물과 어항 따위로 잡아 어죽을 끓여먹기도 다반사였다. 어느 해 여름에도 그 같이 광덕산 계곡을 찾아 아이들과 어울려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갔다.

또한 어죽을 잘 끓이기로 소문난 친구 덕분에 참 맛난 어죽과 술로 배까지 든든히 채운 다음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하천변(河川邊)에 호박잎들이 무성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자 한 친구가 그만 현혹되어 그 호박잎을 따기 시작했다.

"이 호박잎을 삶아서 강된장에 싸먹으면 그 맛이 죽인다고~!" "그야 그렇지만 남의 호박잎을 따면 되냐?" 그래도 친구는 막무가내였다. "이렇게나 많고 많은 호박잎이 달렸는데 내가 한 끼 먹을 호박잎을 딴다면 이건 고작 한강에 배 지나가서 흔적도 남지 않는 거여."

그러나 '비극'은 곧이어 벌어졌다. 어느새 쫓아온 그 호박잎의 주인이라는 50대 아줌마는 호박잎을 딴 친구의 뺨을 다짜고짜로 올려붙였다. 한 번만 봐 달래도 소용없었다.

"잘 걸렸어. 그동안 따간 호박잎 값 다 물어냇!" 급기야 언성까지 높아지자 그 아줌마의 아들까지 쫓아왔다. "엄마, 그만 하세요! 그리고 아저씨들~ 미안합니다. 여기 광덕산과 계곡에 놀러오는 사람들이 툭하면 호박잎을 따가는 바람에 호박이 아예 열리질 않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뿔이 나서 그러신 거니까 이해하시고 얼른 가세요."

그 젊은이 덕분에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긴 했지만 우리 모두의 기분이 엉망진창이기는 어쩔 수 없었다. 뺨을 맞은 호박잎 절취범(?) 친구는 시장에 들러 호박잎을 3000원 어치나 샀다.

동행하여 그 친구의 집에 갔다. 친구는 자신의 아내에게 호박잎을 냉큼 삶아오라고 일렀다. 우리 친구들은 그런 친구의 모습에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 그냥 바라만 보았다. 이윽고 삷은 호박잎과 걸쭉한 재래식 된장찌개가 밥과 함께 상에 올랐다.

친구는 마치 걸신들린 사람처럼 와락와락 입에 넣기 시작했다. 우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곤 그 친구만을 멀건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윽고 그 친구의 말문이 열렸다. "니들은 이 맛난 걸 안 먹냐?"

우린 그제야 배꼽을 잡고 뒹굴었다. 요즘엔 밤에도 무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통에 하루 종일 멍한 기분의 연속이다. 그래서 맑은 물소리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되는 광덕산 계곡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참다못해 동창회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다음 달의 동창회 모임은 시원한 광덕산 계곡이 어떨까요?" 필자가 바라는 대로 동창들과 광덕산 계곡에 갔으면 참 좋겠다. 그리곤 차가운 물속에 가지고 단 수박을 담갔다가 쪼개 먹는다면 그 맛은 또 얼마나 환상의 극치일까! 그렇게 맛난 수박은 술안주로도 일품이다.(^^;)

우리나라에 수박이 처음 들어온 건 고려시대라고 한다. 당시 수박 한 통의 값은 자그마치 쌀 반 가마니와 맞먹어 '금박'이라 불렸다 한다. 요즘에 상추 값이 오르면 '금추'라 부르는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바야흐로 휴가시즌이다. 내년도 최저시급의 인상에 이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까지 겹치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비상등이 켜졌다. 그들의 고충이 쉬 이해되는 까닭은 필자 또한 딱히 휴가가 없는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여름휴가 기간은 통상 한 달로 여유만만하기 이를 데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매우 짧으며 그마저도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처지가 못 되는 게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설령 휴가를 간다손 쳐도 이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감에 피서지의 바가지 요금까지를 무릅쓰고 어디로든 떠나야한다는 안타까움이 매년 반복되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7월 23일, 오늘은 대서(大暑)다. 중복(中伏)을 코앞에 둔 오늘은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가장 심할 때인지라 예부터 "대서에는 더위 때문에 염소 뿔도 녹는다"라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다.

열대야까지 만행을 서슴지 않는 가혹한 날씨가 원망스럽다. 시원한 소나기라도 한바탕 지나간다면 덜 서운하겠거늘. 일찍 끝난 장마가 새삼 그리운 건 시르죽게 만드는 폭염의 횡포 때문임은 구태여 사족이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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