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롬 기자의 편집국에서] 그림같은 남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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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롬 기자의 편집국에서] 그림같은 남의 인생

  • 승인 2019-01-13 10:03
  • 신문게재 2019-01-14 22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10여년 전, 대학교 안을 돌며 도너츠를 파는 노인이 있었다. 보자기로 덮은 커다란 고무대야 안에 팥이 들어있는 도너츠와 찹쌀꽈배기가 가득했다. 낮에는 교정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장사를 하던 노인은 해질 무렵이면 오늘 너무 장사가 안 됐으니 남은 것 좀 팔아달라며 학과실을 순회했다. 타깃은 선배들이었다. "아따, 후배들 입도 많은데 선배가 뭐하는겨"라는 멘트에 괜히 무안해진 선배들은 지갑을 열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 시작된 소문은 선배들의 도너츠 구매를 멈추게 했다. 노인이 오후 6시쯤이면 아들이 몰고 온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는 걸 보니 부자인 것 같더라, 괜히 학과실에 와서 불쌍한 척 하는데 우리가 속았다, 앞으로는 도너츠를 사지 말자는 이야기였다. 노인은 학과실을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서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기초수급을 받는 것은 좋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좋은 집에서 먹어야 할 일이냐. (…) 내 세금으로 낸 돈이 그냥 분식집에서 먹어도 똑같이 배부를 일을 굳이 좋은 곳에서 기분 내며 먹는 행위에 들어가야 하느냐."

지난해 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글의 일부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유명 돈가스 체인에서 식사를 하는 게 불쾌하다며 항의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사회복지사에게 들었다는 이야기와 자신이 직접 교육봉사에서 겪은 이야기를 담은 그 글에는 틴트가 갖고 싶었지만 "너 틴트 살 돈은 있나보다?"라는 선생님 말에 눈치 보였다는 학생, 자주 가던 밥집 아주머니가 소풍날 특별히 싸준 도시락을 들고 갔더니 다른 학부모에게 "보통 애들보다 더 잘 먹고 다니네?"라는 말을 들었다는 학생의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은 가난한 삶에 대해 머릿속으로 쉽게 그림을 그린다. 누구나 다 구입하는 물건을 갖고 있을 뿐인데 '가난하다면서 남들처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염치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대학교의 노인은 아들이 태워주는 차로 출퇴근하며 장사했을 뿐인데 가난한 척 속이고 다닌다는 수군거림을 들었다. 학생들은 고마운 사람에게 음식과 선물을 받았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비아냥거림을 당했다.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사람이 굶주리고 꾸미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물질만능주의와도 이어진다. 나보다 돈이 없는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해 보이면 안 된다, 나보다 약하고 부족해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남의 삶을 재단하는 편견의 폭력이다.

타인의 삶이 내 편견의 그림에 들어맞아야 옳다면 그 풍경을 바꾸면 어떨까. 위에 언급한 돈가스는 돈가스 체인점의 사장님이 아이들을 불러 무료로 먹게 해준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간 세금도 아니었다. 모두가 가슴 속에 가지고 있을 선의였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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