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꽃과 나무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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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꽃과 나무와 돌

백향기 대전여성미술가협회장

  • 승인 2019-03-19 11:21
  • 신문게재 2019-03-20 22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백향기 미술가협회장
백향기 대전여성미술가협회장
봄이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기는 하지만 봄기운이 가득 차기 시작해서 매화꽃이 하얗게 달리고 화단에는 조그만 새싹들이 돋기 시작한다. 봄이 되어 어김없이 꽃이 피고 새싹이 돋는 것을 보면 자연의 순리에 놀라곤 한다. 이제 따뜻한 봄기운이 가득 차면 온 산이 형형색색의 꽃으로 채워질 것이다.

내 그림의 중요한 소재로 꽃을 그리고 전시를 지속적으로 해 온 지 30여년이 다 되어 간다. 꽃을 그림의 중요한 소재로 관심을 가져 온 것은 사실 특별한 논리적 이유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꽃이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형태를 가지고 있고 물감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색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누구나 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고 자연의 신비함에 경이로운 마음이 들지 않는가? 그러나 꽃을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하고 그리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특별한 소회들도 있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그 꽃의 색이 어떤지. 이파리 모양이 어떤지 등에 우선 주목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실제로 자연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꽃 자체만 존재하는 경우는 없다. 그 주변에는 갖가지 풀들과 흙과 돌들이 있고 또한 주변을 에워싼 나무들, 나아가 산이나 들과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꽃은 스스로 존재하기 보다 풍경 속의 한 부분으로 통합된다. 그리고 자연의 갖가지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을 때 비로소 꽃의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이른바 통합의 아름다움, 어울림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꽃은 여러 가지 자연의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통합되어 있을 때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따라서 꽃그림을 그리면서 꽃 자체의 아름다움을 주목하던 것으로부터 그 주변의 온갖 요소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꽃의 상태, 그러한 통합의 상태로서 이해되는 꽃의 모습, 그로부터 발현되는 꽃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찾아내 보려는 노력으로 점차 이전해 오게 되었다.

이른바 총체성으로서의 꽃을 표현해 보려는 관심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총체성이란 전체적인 상황이나 맥락을 포함하는 이해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사람이든 사물이든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본질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항상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아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언뜻 하느님과 아담의 손가락이 서로 닿을 듯한 그림, 즉 아담의 창조 부분을 천지창조라는 그림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전체 그림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나아가 천지창조는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 아니라 바티칸의 시스티나 소성당 천장화로 그린 그림이다. 따라서 천장이라는 건축적 장치, 성당 전체의 분위기와 분리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역시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식당의 높이 4미터 60센티, 폭 8미터 80센티의 벽에 그려진 거대한 벽화이다. 특히 이 그림은 잘 알다시피 천정 부분이 투시도적인 기법으로 그려져 있고 그림 속의 천장이 식당 벽면의 상단부와 연결되어 식당 전체의 공간을 확장하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이 그림은 벽화라는 특징을 떼어 놓고는 캔버스에 그린 그림처럼 공간과 분리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이다. 그럼에도 항상 성당 전체의 공간적 감각, 아래에서 위로 천장을 바라보면서 보이는 느낌, 식당 전체의 모습과 함께 보여지는 벽화로서 느낌보다는 그림 자체에만 주목하곤 한다. 성당이나 식당 공간 전체의 한 부분으로가 아니고 그림 자체에 집중하는 이유가 전체의 한 부분으로 보여지면 주인공으로서의 비중이 낮아질 것을 우려해서일까? 그렇지만 주변의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진 상태에서의 꽃이 진정한 꽃의 아름다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은 그림을 그려가면서 더욱 더 확실해지는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도 비슷할 것이다. 어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온갖 삶의 경험이 누적되어 있는 한 사람으로서 보다는 그 사람의 어느 한 단면을 가지고 평가하고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결정하는 일이 흔하지 않은가? 봄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서 흙과 풀과 돌과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을 때의 진정성,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생각해 본다.

/백향기 대전여성미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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