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봄의 가지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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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봄의 가지치기

백향기 대전여성미술가협회장

  • 승인 2019-04-23 17:33
  • 신문게재 2019-04-24 22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백향기 미술가협회장
백향기 대전여성미술가협회장
해마다 봄이 되면 거실 앞의 나무를 가지치기하는 문제로 신경을 쓰게 된다.

어느 해 부터인가 아파트 관리소에서 거실창을 꽃으로 가득 메우는 살구나무와 복사꽃을 거의 밑둥만 남겨 놓고 가지치기를 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이 아파트의 2층에 이사온 이유는 아이가 아직 어려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 저층에 살고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겨울에 춥고 밖에서 집안이 너무 들여다보이지 않을까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첫해 겨울을 넘기고 봄이 되니 거실창이 꽃으로 가득 차고 여름에는 싱그러운 잎사귀가 가득 차서 저층에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여름 잎사귀가 한창일 때는 마치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해서 고층에 사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호사를 나만 즐기고 있다는 은근한 뿌듯함도 느끼곤 했다.

아이가 어릴 동안 살자고 이사온 것이었지만 벌써 그 아이는 다 자라서 가정을 꾸려 분가를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은 이재에 재간이 없기도 하고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해마다 봄에 피는 꽃이 거실창을 가득 메우는 것을 보는 즐거움도 큰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관리소에서 봄만 되면 처참할 정도로 굵은 가지 두세개 만을 남기거나 아니면 거의 기둥만 남을 정도로 가지를 쳐버리는 일이 매년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니 꽃도 보기 힘들고 나무도 모양이 이상해지기 시작해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그 중 한 그루를 너무 심하게 가지치기해서 결국 죽고 마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관리소에서 어떤 이유에서 그런 심한 가지치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무를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들이 관리하기 귀찮아서 마구 잘라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해서 영 마음이 좋지를 않았다. 몇 번 관리소에 전화를 해서 심한 가지치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도 하고 했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올해에는 남편이 발코니 난간에 '가지치기 하지 말아 주세요' 하는 글을 써서 테잎으로 붙여 두었다. 봄의 꽃을 보고 싶기도 하고 가지치기를 너무 심하게 하면 나뭇잎이 달릴 가지가 없어서 한 여름에 밖에서 직접 들여다 보이는 것도 신경쓰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나무가 본래의 모습을 잃고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가지들이 다 잘려나가고 기둥만 남은 나무를 보면 섬짓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마음이 너무 개운치 못하다.

가지치기는 대개 나무를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거나 열매가 균일하고 굵게 열리게 하려는 이유 때문에 한다고 한다. 때로는 나무의 건강을 위해서 한다고도 하지만 사실 자연상태에서는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도 싱그럽게 잘 자라는 나무들이 많지 않은가? 심한 가지치기를 해대는 것은 아파트 단지 만의 일이 아니다. 봄이 되면 가지치기를 너무 심하게 한 흉물스러운 가로수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가지치기를 무지막지하게 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꽃가루가 날려서, 전선을 건드려서, 간판을 가려서, 벌레가 끼어서 등등 많은 이유들이 있는 것같다. 그러나 거의 몸통만 남기고 잘려진 기둥 위로 연한 잔가지들이 힘겹게 무리지어 팔을 뻗으려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의 잔인함에 우울해진다.



사실 나무나 꽃을 그리다 보면 식물이 갖는 자연스럽지만 합리적인 모습에 놀라곤 한다.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가늘어져서 무게를 적당하게 분산하는 합리적인 구성이나 그로부터 얻어지는 비례감, 조화를 이루는 미적 구성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내재되어 있는 신비스러운 생명의 원칙에 근거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낙원을 뜻하는 파라다이스라는 말은 페르시아어인 '파이리다에자'에서 온 말이라고 하는데 울타리 쳐진 정원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울타리 쳐진 정원이 있고 그 안에 기하적인 모습으로 가위질이 되어 있는 나무나 밑둥만 남은 나무들이 줄맞춰 서있는 곳은 낙원일까? 사람도 나무도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 가면 좋겠다. 나무에 내재하는 자연스러운 질서가 아름답듯 사람에게도 내재하는 자연의 질서와 균형이 있다고 믿는다.

발코니 앞의 가지치기 당한 나무를 바라보며 사람들만은 가지치기 당하지 않고 본래의 모습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백향기 대전여성미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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