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廣州)가 고향인 그는 유배생활 18년간 하루도 자식을 위해 허투로 보낸 일이 없다.
하피첩은 조선후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귀양지인 전남 강진에서 자식을 위해 쓴 글씨 첩이다. 18년간 남편과 떨어져 사는 동안 보고 싶은 마음에 부인은 시집올 때 입은 붉은 치마를 남편에게 보냈다. 남편은 붉은 치맛감에 종이를 붙여 만든 것으로 아들인 정학연과 정학유에게 보내는 편지글 등이 담겨있다.
1810년(순조10년) 음력 7월과 9월 무렵'하피'란 중국 당나라 시대부터 신부가 입던 예복이다. 조선시대에는 비(妃)와 빈(嬪)이 입는 법복이다. 하피첩이란 이름으로 첩을 만들어 사용한 홍씨의 치마를 비유한 것으로 직역하면 노을빛 치마로 만든 첩(帖)이란 뜻이 담겨있다.
정약용은 아내가 보낸 치마로 만든 하피첩에 아들을 위한 글을 적었다. 하피첩 서문에는 아내가 보내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잘라 작은 첩을 만들고 경계하는 말을 써서 두 아이에게 준다는 글이 적혀있다.
본문은 선비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나 삶의 태도 등 아들에게 교훈을 줄만한 내용이다. 하피첩은 본래 정약용 후손들이 보관하다 한국전쟁당시 분실되어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 후 다시 등장한 것은 2006년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민간 소유로 있었다. 2015년 9월 국립민속박물관이 경매에서 하피첩을 낙찰 받았다. 2016년 초 전시 형태로 공개해 오고 있다. 가격은 서울 옥션 경매에서 정약용 필적 하피첩이
7억5000만원에 낙찰을 받은 것이다. 예금공사가 파산한 저축은행으로부터 받은 보물 18점에 대해 서울 옥션 제1차고서 경매에서 정약용 필적 하피첩으로 1810년 전남강진에서 부인이 보내준 치맛감이 아들을 위해 쓴 편지를 모은 것을 보물로 지정(제1683-2호)돼 공개해 오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다산하면 대표작으로 '목민심서(牧民心書)'가 상징적인 모든 이에 지침서다. 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목민심서는 청렴이야 말로 천하의 큰 장사다.
사람이 청렴치 못한 것은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목민심서는 목민관이 갖추어야 할 자세와 알아야 할 지식을 다룬 책으로 오늘날 행정을 다루는 공무원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애민사상을 비롯해 목민철학과 제도들을 현실에 맞게 제시 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여기에 6가지 명언은 오늘날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의한 민심의 이반을 비롯해 검소한 생활로 물자절약과 대중을 통솔하는 법, 기술연마, 도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특히 다산 정약용이 스스로 경계해 바르고자했던 네 가지 가르침인 사(생각), 모(용모), 언(말), 동(행동)을 실천 해 왔고 1801년 11월 23일 강진에 유배 와서 4년 동안 기거했던 주막 골방에 사의제(四宜齊)라는 당호를 걸고 6명의 제자를 길러냈던 곳으로 유명해 관람객이 많이 찾고 있는 명소다
'다산'이라는 호와 다산초당(茶山草堂)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로 강진 귤동 뒷산 이름으로 이 기슭에 머물면서 자신의 호를 써왔다. 저서로 목민심서를 비롯해 흠흠신서와 경세유표 등 실학을 집대성한 500여권의 주옥같은 저서는 18년간 유배생활 동안 썼고 75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길식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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