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인터뷰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인터뷰

  • 승인 2019-05-09 17:21
  • 신문게재 2019-05-10 22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이해미 편집국에서
"오빠 손이 글쎄… 전기고문을 당했는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패여서…"

아주 짧은 침묵의 순간 금세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말 문이 막힌 당신도,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듣던 나까지도, 툭 하고 눈물샘이 터졌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감정이 이입 된다는 건 그만큼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일 거다. 인터뷰이가 아픔을 꾹꾹 눌러쓰는 시인이라서 그랬는지, 대전 산내 골령골 희생자 유가족인 신순란 씨의 이야기는 담담하면서도 아팠다.

좋은 기억이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생각을 지우고 싶어 한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정확한 출처를 밝힐 수 없지만 아마도 나쁜 기억은 트라우마로 변질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조차도 실수한 일, 마법이 있다면 지우고 싶은 순간, 레드썬 하면 상대의 뇌에서도 삭제하고픈 기억들이 넘쳐난다. 나야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일이 없으니 내 망각의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신순란 어머니처럼 평생을 아픔과 비통함 속에 살아온 나의 인터뷰이는 트라우마처럼 가슴과 정신에 새겨진 기억들을 꺼내야 한다.

죄송하고 송구스럽지만, 대전형무소의 이야기는 아프고 아픈 이야기를 묻고 또 물어야만 하는 인터뷰였다.

"오빠를 대전형무소에 끌고 갔던 사람들이 얼마 뒤에 열 세 살 먹은 나를 산으로 끌고 간 적이 있어. 오빠에 대해서 다 말하라고 하더라고. 오빠는 똑똑해서 동네 사람들 까막눈 밝혀주는 사람이었거든. 어린 내가 아는 건 그거밖에 없었어. 계속 모른다 했더니 세 사람이 총부리를 나한테 겨눴어.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가 갑자기 나보고 돌아서래. 얼마나 무섭던지. 그 순간이 몇 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졌어. 다리가 후들거려서 나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느린 배속으로 플레이하듯 기억의 필름도 천천히 돌아갔다. 오랜만에 인터뷰이와 나는 같은 감정과 같은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이의 기억이 나의 글로 이어지기까지 무려 70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겠지.

대전형무소 그리고 골령골의 이야기는 여전히 수면 위로 나오지 못한 기억들이 많다.

대전형무소 망루는 4개가 아닌 7개였다는 것, 대전감옥소 설치는 1919년 이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되고 있었다는 것, 개청일과 수감 인원에 대한 정확한 연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새롭게 역사를 발견한 기쁨과 더불어 우리가 반성해야 할 점이다.

대전형무소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산내 골령골 희생자 유족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평생을 잊을 수 없는 기억을 하나 새겼다. 아무리 땅에 묻어도 되살아나는 기억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은 아니지만 대전형무소와 골령골에 묻힌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인터뷰는 계속될 듯 하다.
이해미 교육문화부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총선리포트] 강승규 "양 후보는 천안 사람" vs 양승조 "강, 머문기간 너무 짧아 평가조차 못해"
  2. 세종시 집현동 공동캠퍼스 '9월 개교'...차질 없이 한다
  3. 2025학년도 수능 11월 14일… 적정 난이도 출제 관건
  4. 대전과 세종에서 합동 출정식 갖는 충청지역 후보들
  5. [총선리포트] 양승조·강승규, 선거유세 첫날 '예산역전시장' 격돌한다
  1. [WHY이슈현장] 고밀도개발 이룬 유성, 온천 고유성은 쇠락
  2. [2024 충청총선]더민주-국민의힘-조국까지 대전 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 표정
  3. 가수 영호 팬클럽 '이웃위해' 100만원 기탁
  4. 내년 폐쇄 들어가는데…충남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어디로?
  5. 세종시 호수공원 일대 '미술관 유치' 본격화

헤드라인 뉴스


충청 청소년 10명중 4명, 주 5일 이상 아침 거른다

충청 청소년 10명중 4명, 주 5일 이상 아침 거른다

대전·세종·충남·충북 청소년 10명 중 4명은 일주일에 5일 이상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후 상승했던 스트레스와 우울감은 다소 줄어들면서 회복세를 보였다. 교육부와 질병관리청이 28일 발표한 '2023년 청소년 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충청권 4개 시도를 비롯해 전국 중·고등학생의 주5일 이상 아침 식사 결식률은 모두 증가했다. 2022년 전국평균 39%에서 2023년 41.1%로 1.1%p 증가한 가운데 대전은 2022년 38.8%에서 41.4%로, 세종은 35.3%에서 40%로, 충북은 38.6%에서 4..

[WHY이슈현장] 고밀도 도시개발 이룬 유성… 온천관광특구 고유성은 쇠락
[WHY이슈현장] 고밀도 도시개발 이룬 유성… 온천관광특구 고유성은 쇠락

대전유성호텔이 이달 말 운영을 마치고 오랜 휴면기에 돌입한다. 1966년 지금의 자리에 문을 연 유성호텔은 식도락가에게는 고급 뷔페식당으로, 지금의 중년에게는 가수 조용필이 무대에 오르던 클럽으로 그리고 온천수 야외풀장에서 놀며 멀리 계룡산을 바라보던 동심을 기억하는 이도 있다. 유성호텔의 영업종료를 계기로 유성온천에 대한 재발견과 보존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유성온천의 역사를 어디에서 발원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살펴봤다. <편집자 주>▲온천지구 고유성 사라진 유성대전 유성 온천지구는 고밀도 도시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진격의 한화이글스… 안방 첫 경기 승리 기대
진격의 한화이글스… 안방 첫 경기 승리 기대

한화이글스가 시즌 초반부터 승승장구하면서 29일 예정된 대전 홈 개막전에 대한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돌아온 괴물' 류현진이 안방에서 팬들에게 화끈한 선물을 선사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한화는 올 시즌 첫 개막전에서 LG트윈스에 패배하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27일까지 3경기 연속 연승가도를 달리며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탄탄해진 선발진이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선발부터 흔들리며 이기던 경기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한화이지만, 올해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경기력으로 입증하고 있다. 펠릭스 페냐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제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돌입…표심잡기 나선 선거 운동원들 제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돌입…표심잡기 나선 선거 운동원들

  • 중구청장 재선거도 치러지는 대전 중구…표심의 행방은? 중구청장 재선거도 치러지는 대전 중구…표심의 행방은?

  • ‘우중 선거운동’ ‘우중 선거운동’

  • 대전과 세종에서 합동 출정식 갖는 충청지역 후보들 대전과 세종에서 합동 출정식 갖는 충청지역 후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