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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여자]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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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8-13 09:57 수정 2019-08-1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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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제공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장정일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불현듯 엊그제 방 구석에 쳐박혀 먼지가 쌓인 라디오를 들고 거실로 왔다. FM을 켰다. 클래식과 외국곡을 들려주는 프로를 틀었다. 타이스의 '명상곡'이 흘러나왔다. 폭염에 땀을 흘리며 오랜만에 라디오를 들으며 옛 추억에 잠겼다. 50이 넘은 중년세대는 라디오세대다. 라디오를 머리 맡에 놓고 늦은 밤까지 듣는 음악은 청춘세대에겐 영양제였다. 공부는 안해도 되지만 라디오를 하루도 듣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아! 라디오.

하하하하. 장정일은 역시 재기발랄하다. 감각적이고 도발적인 시인 특유의 감수성이 엿보인다. 고정관념을 깨는 전복적인 시인 장정일.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한 시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재치있고 기발한가.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장정일도 라디오 세대다. 라디오를 통해 사랑을 표현한 시가 재밌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장정일이 오랜만에 시집을 냈다. 궁금하고 반갑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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