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환의 HR전략 컨설팅 대표 |
친구는 20리 길을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출석했고, 항상 같은 옷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아버지 생각을 하면 공부하는 자신이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모를 심거나 추수할 때는 학교에서 방학을 줘서 품앗이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온 종일 거머리에 물려 가며 모를 심거나, 낫으로 벼를 베면서도 보리밥 새참이 그렇게 맛있었습니다.
세월이 변해 기차역에는 택시들이 줄을 서 있고, 시골에는 기계가 농사를 대신합니다.
생활은 분명 편해졌는데 왜 걱정이 더 될까요?
우리는 고생이라는 것을 알고, 배고픔 속에서도 꿈이 있었고 악착같음이 있었는데 자식을 보면, 온실의 화초와 같다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온실에서는 화사하지만, 들과 산에 심어 놓으면 주변 상황을 견디고 깊게 뿌리를 내리는 악착같음을 기대하지 못함은 왜일까요?
좀 더 나은 내일을 유산으로 남기지 못한 원망이 두렵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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