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다시 문 두드리기

  • 문화
  • 영화/비디오

[김선생의 시네레터] 다시 문 두드리기

- 영화 <벌새>

  • 승인 2019-10-17 17:31
  • 신문게재 2019-10-18 11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movie_image
서울의 대표적 재건축 대상인 은마아파트. 늘어선 복도식 아파트의 규격화된 풍경 속에 한 소녀가 서 있습니다. 어느 문 앞. 소녀는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립니다. 열리지 않는 문. 소녀는 소리지릅니다. "엄마, 문 열어."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호실을 확인합니다. 틀렸습니다. 한 층 더 올라갔어야 했습니다. 다시 도착한 문. 초인종을 누르니 엄마가 나옵니다.

영화는 지나간 시간의 문을 다시 두드립니다. 1994년. 25년 전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은희의 이야기입니다. 텔레비전 드라마 <응답하라 1994>나 <응답하라 1988>이 생각납니다. 그 때 그 시절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그린 드라마와 달리 영화 <벌새>는 평범했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여긴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틈새와 균열을 찾아냅니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거울과 같습니다. 소녀 은희의 모습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와도 맞물리는 이 작품은 그러므로 어른 은희가 어린 은희를 마주 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내 관찰되고 발견되는 소녀 은희. 그녀는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그 시절 수많은 아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으면서, 또 떡방앗간 집 둘째 딸이자 외아들 오빠를 둔 막내라는 유별함을 지닙니다. 그렇게 그녀는 다른 듯 같은 듯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과 인간관계 속에서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넘어지며, 때로는 알거나 깨달으며, 또 때로는 모르는 채로 세상과 인간, 그리고 자신을 만납니다.

어른 은희의 시선인 카메라를 통해 관객들도 저마다 지난 시절의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사하거나 혹 많이 다르다 해도 어쨌든 어린 아이는 청소년기를 거쳐서 어른이 되는 것이니까요. 이른바 통과의례들을 치르면서 말입니다. 신경숙의 소설 <외딴 방>(1994)에서 소녀인 내가 희재 언니의 죽음을 통해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듯, 영화 속 은희도 한문 교실 영지 선생님의 죽음을 통해 넓은 세상을 만납니다. 가난과 절망 속에 외딴 방에서 자살한 희재 언니가 근대화 과정의 슬픈 흔적이라면,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죽은 영지 선생님은 급속한 근대화의 허망한 균열이라 할 만합니다.



5센티미터의 작은 몸으로 1초에 90번이나 날개짓을 한다는 벌새. 영화 속 은희와 관객인 우리도 수없는 몸부림을 하며 시간을 통과했을 것입니다. 과연 얼마나 성장했고, 얼마나 성숙한 것일까요? 또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요? 영화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합니다.

김선생의 시네레터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논산 탑정호, 500실 규모 콘도미니엄 현실화 '청신호'
  2. [총선리포트] 양승조·강승규, 선거유세 첫날 '예산역전시장' 격돌한다
  3. 내년 폐쇄 들어가는데…충남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어디로?
  4. 한 총리, '의료 현장' 수습 총력… 충남대병원과 간담회
  5. KAIST 물리학과 채동주 씨 "걱정 없이 과학기술 연구할 수 있는 세상, 가장 쉽고 빠른 방법 투표"
  1. 에너지연 신동지구에 '태양광기업공동활용연구센터' 준공
  2. [중도일보 독자권익위원회] 4·10 총선 지역밀착형 기사 발굴 호평… 웹 접근 편의성 강화 필요성 지적도
  3. [대전 다문화]대전시가족센터서 ‘다문화 어린이 학습지원 사업 설명회’
  4. 美 프레스비테리안 대학 넬슨교수 한남대 총장 예방
  5. [대전 다문화]대덕구 여성단체협의회, ‘전통 장 담그기’ 개최

헤드라인 뉴스


[이슈현장] 고밀도 도시개발 이룬 유성… 온천관광특구 고유성은 쇠락

[이슈현장] 고밀도 도시개발 이룬 유성… 온천관광특구 고유성은 쇠락

대전유성호텔이 이달 말 운영을 마치고 오랜 휴면기에 돌입한다. 1966년 지금의 자리에 문을 연 유성호텔은 식도락가에게는 고급 뷔페식당으로, 지금의 중년에게는 가수 조용필이 무대에 오르던 클럽으로 그리고 온천수 야외풀장에서 놀며 멀리 계룡산을 바라보던 동심을 기억하는 이도 있다. 유성호텔의 영업종료를 계기로 유성온천에 대한 재발견과 보존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유성온천의 역사를 어디에서 발원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살펴봤다. <편집자 주> ▲온천지구 고유성 사라진 유성 대전 유성 온천지구는 고밀도 도시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뤄지..

대전시 재산 공개 대상자 평균 재산은 13억 5000여만원
대전시 재산 공개 대상자 평균 재산은 13억 5000여만원

대전시장 등 대전시 재산 공개 대상자의 평균 신고 재산은 13억 4822만원으로 조사됐다. 대전시는 2024년도 정기 재산 공개 대상자 97명에 대한 재산 변동 내역을 28일 관보 및 공보에 공개했다. 이 중 정부 공개 대상자는 29명, 대전시 공개 대상자는 68명이다. 재산이 증가한 공직자는 62명, 감소한 공직자는 35명으로 분석됐다. 재산 총액 기준 재산 공개 대상자의 71.1%(69명)가 10억 원 미만의 재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재산변동 사항을 보면 재산증가액 5000만 원 미만이 31.9%(31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

진격의 한화이글스… 안방 첫 경기 승리 기대
진격의 한화이글스… 안방 첫 경기 승리 기대

한화이글스가 시즌 초반부터 승승장구하면서 29일 예정된 대전 홈 개막전에 대한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돌아온 괴물' 류현진이 안방에서 팬들에게 화끈한 선물을 선사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한화는 올 시즌 첫 개막전에서 LG트윈스에 패배하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27일까지 3경기 연속 연승가도를 달리며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탄탄해진 선발진이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선발부터 흔들리며 이기던 경기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한화이지만, 올해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경기력으로 입증하고 있다. 펠릭스 페냐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제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돌입…표심잡기 나선 선거 운동원들 제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돌입…표심잡기 나선 선거 운동원들

  • 중구청장 재선거도 치러지는 대전 중구…표심의 행방은? 중구청장 재선거도 치러지는 대전 중구…표심의 행방은?

  • ‘우중 선거운동’ ‘우중 선거운동’

  • 대전과 세종에서 합동 출정식 갖는 충청지역 후보들 대전과 세종에서 합동 출정식 갖는 충청지역 후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