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희(음악평론가, 백석문화대교수) |
수상 음악은 헨델 고유의 장르가 아니다. 동시대 독일 작곡가 텔레만(1681~1767)의 당당한 수상 음악도 유명하다. 텔레만의 수상음악은 함부르크 해군사관학교 100주년 기념용으로 위촉받았다. 항구도시 함부르크 바다의 밀물과 썰물의 흐름을 묘사했기에 헨델의 수상음악보다 전반적으로 더 활발하다. 그렇다면 헨델은 수상음악을 언제 어떻게 작곡하게 됐을까? 헨델의 수상음악은 작곡가가 영국에서 살며 여러 명의 주군을 모셨던 이력과 관련 있다.
18세기 바로크 시기 바흐가 평생 독일에서만 살았던 반면 헨델(1685~1759)은 독일, 이탈리아, 영국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벌인 글로벌한 음악가였다. 일찍이 고향 할레(Halle)에서 뛰어난 오르가니스트로 두각을 나타낸 헨델은 10대 후반의 나이인 1702년, 할레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됐다. 기악음악 연주자이자 동시에 극장음악인 오페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혈기왕성하고 다재다능한 이 젊은 작곡가는 이듬 해 함부르크에서 최초의 오페라 '알미라'를 작곡하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독일 작곡가 헨델이 이탈리아 바로크 오페라의 진정한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이탈리아 유학생활이 결정적이었다.
헨델은 메디치 가문의 투스카니 대공, 페르디난도(1663~1713)의 초청으로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각 지역의 음악가, 후원자들과 교류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인 서정적으로 흐르는 선율과 격정적인 감성이 음악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본질을 훤히 꿰뚫게 됐다.
1710년 헨델은 다시 독일로 돌아와 하노버 궁의 악장으로 봉직하며 휴가 때 마다 영국을 방문했다. 오페라 승부사로 제 2의 인생을 시도한 것이다. 1711년 2월 6일, 런던에서 헨델 오페라 '리날도'가 대성공을 거두었다. 앤 여왕의 총애를 듬뿍 받고 성공한 오페라 작곡가로 인기를 누리던 헨델에게는 영국이 오페라 본거지나 다름없었다. 오페라 시즌이 끝나 하노버로 돌아온 헨델은 런던에 갈 생각만 했다. 다행히 게오르그 선제후의 조건부 허락을 받고 이듬 해 영국을 다시 방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페라의 성공을 누구보다도 기꺼워하던 든든한 후원자 앤 여왕이 1714년 세상을 떴다.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영국의 왕위는 앤 여왕의 사촌인 하노버 왕가의 게오르그 선제후에게 넘어갔다. 영국 왕 조지 1세(1660~1727)는 바로 하노버 궁에서 헨델이 악장으로 봉직하며 주군으로 모셨던 게오르그 선제후였다. 헨델의 입장이 곤란해져 조지 1세의 호감을 얻기 위해 작곡했다는 수상음악 에피소드는 이러한 배경으로 널리 회자되나 사실 근거가 없다. 수상음악은 조지 1세가 위촉한 런던 템즈강 음악회 작품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화려한 왕의 행렬과 함께 울려 퍼지는 당당한 음악은 분명 새로운 왕의 위엄을 세상에 알리는 데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배를 타고 가면서 왕을 위해 연주했던 수상음악은 1시간에 달하는 대규모 관현악곡이다. 그 중 9번째 곡 혼파이프(Horn pipe)가 특히 친숙한데, 혼의 경쾌한 울림이 물의 흐름처럼 시원하게 퍼져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헨델의 수상음악을 들을 때마다 영롱하게 들리는 관악기와 현악기의 역동적인 움직임 그 자체가 가을하늘의 청량한 물줄기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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