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값어치 있는 삶, 갑진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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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값어치 있는 삶, 갑진년에게”

조훈성 연극평론가·충남시민연구소 이사

  • 승인 2024-01-08 11:17
  • 신문게재 2024-01-09 19면
  • 이유나 기자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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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성 연극평론가·충남시민연구소 이사.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갑진년(甲辰年)을 맞이하기가 참 어렵다. 우리 같은 책상물림에겐 마감원고 활자에 제대로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서야 문밖출입이 여간 켕기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이 글, 저 글 옮겨가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재주도 내게는 없어서 내 앞에 놓인 품평의 글은 새치기가 어렵다. 모니터가 사나흘은 절전모드 해제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미적지근한 다른 제목의 글 창들이 꺼질 줄 모르는데, 이를 해치우지 않고서는 그 새벽의 순수한 싸락눈 밟는 것도 도저히 개운해지려야 개운할 수가 없다. 그렇게 정신없이 매듭짓는 안팎의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그래도 더운술 한 잔 모실 수 있었는데, 한 문인의 건배사가 참 쓰다. "갑진년, 값진 년이 될 수 있도록 나아갑시다."라면서 '값진 년' 삼창이 불린다. 거북할 게 없는데도 듣기에 거북한 그런 소감이 남는다. 의존명사 '년'의 어감일 수도 있겠지만, '값'이라는 가치에 존재, '값어치 있는 삶'에 대한 꿈틀거림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어린 딸아이에게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시도 때도 없이 주문을 건다. '값어치 없는 삶'은 이 세계에 쓸모가 없는, 폐기되어야만 하는 삶이 되어버리기에 십상이다. 내 앞의 연극의 무대도 그렇게 품평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 연극의 세계가 어떠한 '값어치'가 있는가를 따지면서, 지난 12월 마지막 본 작품이 극단 손수의 <검은 얼룩>(신성우 작, 윤민훈 연출)이었다. 내리 물림되는 '원죄의식'에 대한 망상과 '악'에 대한 인물 내면 심리를 확장해볼 수 있는 잘 짜인 각본이면서도, 극 중 지워지지 않는 '얼룩'의 상징이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그 '값어치'의 양가성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G.프로이트가 쓴 『토템과 타부』에서는 타부의 금지된 행위가 무의식 안에서 이를 강하게 수행하려는 경향이 존재하는데, 이를 금기와 욕망이라는 타부의 양가감정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영화 <기생충> 등으로 유명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그의 삶에 대한 가치판단에서 정작 그는 온데간데없이 문제적 인간을 만들어 내는 세계와 이에 각인된 타인의 시선과 그 감정만이 남아 내게 들려오는 소문이 여간 불쾌할 수 없다. 제 한 치 앞 삶도 잘 모르면서 타인의 삶에 대한 값어치를 속단하는 것이야말로, 그 '검은 얼룩'이 아닐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치판단의 상반성과 그 공존을 깊이 새겨보면, 자신의 금기와 욕망의 감정을 주체적으로 돌아보지 못한 채, 멋대로 타인의 삶의 값어치를 매긴다. 어쩌면 그 쓸모없는 사람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가치를 매기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새해 첫날, 책상 앞에 앉아 한 선배가 정성스럽게 골라 보내준 시 한 편을 옮긴다. 수만 편의 시 가운데, 천양희 시인의 <시작과 끝>을 읊조리면서 "저 서산 저 저녁강/참 냉랭하지요./가는 해 가는 날이/또 얼마나 얼룩얼룩합니까."라는 끄트머리 구절에 내 얼룩덜룩한 어제를 돌아보면서, 그렇게 오늘부터는 어떻게 생생하게 살아야 할지, 청청한 새해를 맞이하는 맘가짐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연극 <홍상수 영화처럼>(이정수 작, 연출)의 리뷰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말미에 희곡 대사를 삽입한다. 연극에서 이야기하는 예술의 리얼리티, 예술의 경계에 대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 쉽지가 않다. 예술적 대상의 해석에 대한 '주체성'을 다시금 곱씹지 않을 수 없다는 말도 적어 넣었다. 극 중 '한진구'의 그 대사 한 토막, "우리는 그저 더 많이 알기를 바라고, 더 아는 척하려 하는 것뿐."이라고 써놓고 보니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뜨끔하다. 내가 이 세계에 값어치 있는 척 생색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 글 한 편이 그 연극이든, 이 극장 밖 세계든 작은 생기 하나를 만들 수만 있다면 그만으로 만족할 만하다 위안도 삼아보고자 한다. 값어치 있는 삶의 인정을 누군가에게 바라지 않고, 먼저 오늘의 내 얼굴을 마주해봐야 하지 않을까. 연극을 보러 나서면서, 제 손에 따듯한 김을 호호 불어본다. 어느 시집 한 구절,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서... 비풍초똥팔삼'(*김병호, <왼손을 위한 주문> 인용)을 쥐고 나는 가질 게 아니라 버려야 할 것의 순서를 정해본다. 갑진년, 무엇을 버리며 바람을 짜낼 것인가. 조훈성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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