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 |
이쯤되면 가족이 아니라 웬수다. 하긴 가족처럼 애증으로 뭉쳐진 집단도 없다. 오죽하면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은 남들이 보지만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을까. 징글징글하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게 또 가족이다. 아, 가족은 딜레마다. 평생 엉킨 실타래처럼 매여 살아야 한다. 그냥 짊어지고 가야 하는 존재다.
나한테 조카가 처음 생겼을 때 핏줄에 대해 생각했다. 대학 시절 조카가 태어나 주말을 맞아 서둘러 집에 갔다. 방안 아랫목에 조막막한 아기가 누워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그렇게 작은 줄 몰랐다. 조그만 눈 코 입에 손은 또 어찌나 작은 지…. 순간 가슴에 뭔가 뜨거운 게 차오르는 걸 느꼈다. 원래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조카는 이유없이 당겼다. 이런 게 핏줄이구나!
영화 '고령화가족'은 해가 뜨면 삼형제가 피 터지게 싸우지만 밥상 앞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화가애애하다. 엄마는 그 자식들을 위해 늘 밥상을 차린다. 엄마가 하는 말은 "얘들아 밥먹자"다. 그 밥상 앞에서 골칫덩이 자식들은 구수한 된장찌개 속에 수저를 쉴새 없이 집어 넣는다. 상추 쌈에 삼겹살과 마늘 고추를 푸짐하게 싸서 볼이 미어터지게 먹는다. 엄마는 자식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
영화를 보면서 침을 몇번이나 꼴딱꼴딱 삼켰는 지 모른다. 양파, 두부, 감자를 푸짐하게 넣어 끓인 된장찌개가 어찌나 먹음직스러운 지.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에서 고령화가족이 둘러앉아 신나게 퍼먹는 그 된장찌개가 생각난다. 사실 가족은 같이 밥을 먹는 '식구(食口)'다. 혼자 먹는 객지 밥은 살로 안 간다는 말이 있다. 이번 추석에도 가족이 다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을 것이다. 가족의 존재가 새삼스러워진다. 나도 나이를 먹는 모양이다.
사족.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나오면서 OST가 흘러나온다. 비로소 눈물 한 방울이 나왔다.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라는 인디밴드가 패티김의 '초우'를 리바이벌했는데 한마디로 죽여준다. 그 후로 한동안 인터넷에서 이 노래를 찾아 듣고 또 들었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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