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작가 |
장맛비는 쑥쑥 자라는 들풀과 같다. 7월 계속되는 장맛비에 밭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밭작물을 들풀과 놀게 내버려 두었다. 가끔 심술궂게 밭작물 옆에서 너무 놀면 "잡초하고 놀지 마." 이런다. 정말 이런 장맛비에서는 아스팔트도 뚫고 들풀이 자랄 기세니 시골 맨땅에서는 오죽하겠는가. 돌아서면 들풀이 쑥쑥 자라있다.
이 풀숲을 타고 누가 온 모양이다. 밖에서 키우는 개가 짖다가 말다가 하길래 다용도실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연 순간, 깜짝 놀랐다. 문 모서리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던 작은 뱀 한 마리가 개를 향해 몸을 뻗으며 혀를 냉큼 내밀었다. 개는 다가서려다 몸을 빼며 멍멍 짖었다. 더 큰 뱀이었으면 나까지 기절할 뻔 했다. 뱀에 물린 동네 어르신들 이야기는 들었어도 내가 당할 뻔 하기는 처음이다. 작대기로 들어올려 풀숲에 던져버렸다. 풀이 자라지 않았을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뱀이 저 풀숲을 헤치고 다닌다니 신경이 곤두섰다.
주황색 왕원추리 |
시골의 두 얼굴은 어쩌면 이런 모습이다. 밖에서 본 시골은 초록의 옷을 입고 논밭에도 초록 작물들이 자라난다. 안에서 본 시골은 들풀의 무성함과 축사라도 옆에 있으면 창문을 열어놓기가 쉽지 않다. 뱀뿐인가? 고라니, 맷돼지도 먹을 걸 찾으려 풀숲을 헤치고 밭으로 내려온다. 콩밭을 헤집어놓는다. 그런데 도로가에 차에 치여 쓰러져 있는 고라니를 보면 불쌍하다. 묻어주고 싶은 심정이 든다. 차마 차를 세우고 내리지도 못하면서 한마디 한다.
붉은 토끼풀 |
여기 순창사람 다 된 듯이 말한다. 시골은 분명 도시와 생태계가 다르다. 나는 도시에서 동화쓰는 작가들과 만나는 일이 잦았다. 도시의 아이들은 학원 쫓아다닌다고 자연을 벗할 시간도 없다며 자연의 생명력을 노래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작가가 있었다. 아마 자연은 저만치 있는 이야기를 쓸 게 뻔하다. 풀 한포기 못 자라게 아스팔트가 깔리고, 콘크리트 아파트로 숲을 이룬 건 어쩌면 아이들을 키우기에 좋은 환경, 덜 자연친화적인 도시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시골은 자연친화적인 생태계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풀숲을 헤치며 걸으려면 진드기 기피제를 뿌리고, 장화를 신어야 한다. 조금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곳이다. 나는 자연친화적인 동화를 쓸지 모른다. 자연의 생명력을 조금 비틀어서 시골스럽게….
딱지꽃 |
자귀나무 꽃 |
그대와 사랑잠에 젖다
by 김재석
사랑비가 내렸다
그대와 꽃잠에 든 사이
둘만의 오색화원에
나비처럼 날아와 내리는
사랑비
그대와 난 사랑잠에 젖었다
시나브로
시나브로
살결에 닿아
붉디 붉게
물드는
낭아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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