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소도 어려우니 짐을 나눠져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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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소도 어려우니 짐을 나눠져야죠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0-08-2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우리 선인들은 늦가을에 감을 딸 때에도 그걸 다 따지 않고 몇 개를 나무에 꼭 남겨 놓았다. 우리는 그걸 소위 까치밥이라 하는데 그 까치밥에 숨어 있는 우리 선인들의 삶의 자세를 간과(看過)해서는 아니 되겠다.

거기에는 까치들도 함께 먹고 살아야 한다는 선인들의 배려심이 녹아 흐르고 있다.

정말 사소한 것에서도 깨우침이 묻어나는 선인들의 진정한 마음이었으리라.

또 우리 선인들은 소풍 같은 야외 나들이를 가서 식사할 때에도 그냥 자신들만 챙겨 들지는 않았다.



준비한 김밥이나 도시락을 먹기 전에 '고수레'하며 한 덩이 던지고 식사하는 것이 일쑤였다. 이것은 단순한 민속신앙 차원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다.

주변의 모든 미생물이나 새 곤충들도 함께 먹고 살게 하는 공생정신의 배려심에서 비롯된 소행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만이 아니라 범자연적인 모든 생물체와 공생하려했던 정신이 돋보이는 금메달감 마음 씀씀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우리 선인들은 환경윤리 차원에서 자연의 온갖 생물에까지 차별을 두지 않고 그 모두를 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래야만 먹이피라미드 구조의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아 우리 인간도 온전하게 생존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선각자의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우리 선인들은 슬기롭고 지혜로워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았다.

우리는 문명시대를 사는 현대인이지만 선인들의 슬기와 지혜를 배워야겠다.

그 숭고한 정신을 보듬어 안는 자세로 살아, 선인들이 풍기며 살았던 그 사람냄새가 모두 우리의 것이 되도록 해야겠다.

선인들의 소중한 배려의 마음은 사람만이 아니라 삼라만상 모든 대상들에게까지 농부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은 자기밖에 모르는 현실이니 마냥 안타까울 뿐이다.

배려와 사랑이 없는 극도의 이기주의는 자멸로 가는 길이다.

요즈음은 인간성의 본질 - 인정, 사랑, 배려, 따뜻한 마음 - 마저 소진(消盡)되고 인륜마저 상실되어 가는 현실이다. 현대인은 소중한 것의 상실로 이해득실 관계에만 눈이 멀어 쉴 새 없이 싸우고 있다.

예상되는 결과는 공도동망(共倒同亡)이란 불청객의 손님이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렇게 우리는 공멸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인간성 부활로써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성의 으뜸인 배려는 사랑으로 통하고 그 사랑은 우리 자신을 살리는 원동력이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산업화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은 선인들의 삶에 역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삶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생존까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심각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현재 우리는 선인들의 삶의 철학과 가슴 따듯한 배려의 정신에 무색하게 살고 있다. 각자의 행동은 자기만을 위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에 빠져 불협화음을 조장하고 상생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가고 있다.

바로 님비 현상 같은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예라 하겠다.

님비 현상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혐오시설이 자기 집 주변에 설치되는 것을 극구 반대하는, 주민들의 극도의 지역적 이기심이 반영된 현상을 가리킨 말이다.

' Not In My Back Yard '의 약자로, 직역하면 ' 우리 뒷마당에는 안 된다 '는 뜻이다. 특히 지방 자치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 각 도시와 지역마다 쓰레기소각장, 납골당, 화장터와 같은 시설을 다른 지방으로 떠넘기려는 데서 오는 갈등의 야기로 법정 투쟁까지 하고 있는 현실이다.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 원전 폐기물 수거 관리시설 유치를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과 중앙 정부 사이에 벌어졌던 대립도 님비현상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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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워낭소리' 중 한 장면
소설 '대지'의 작가 펄벅이 1960년대에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펄벅이 경주 시골길을 지나는데, 농부 한 사람이 소달구지를 끌고 가고 있었다.

달구지에는 가벼운 짚단이 조금 실려 있었고, 농부도 지고 있는 지게에 따로 짚단을 지고 있었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서양 사람들이라서 펄벅도 좀 이상하게 보이는 광경이었다.

힘들게 지게에 짐을 따로 지고 갈 게 아니라, 달구지에 짐을 싣고 농부도 타고 가면 편했을 것이다.

통역을 통해 펄벅이 물었다.

"왜 소달구지에 짐을 싣지 않고 힘들게 갑니까? "

그러자 농부가 대답했다.

"에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도 일을 했지만, 소도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했어요. 소라고 어렵지 않은가요! 소도 어려우니 짐을 나눠져야죠."

펄벅은 감탄하며 말했다.

"나는 저 장면 하나로 한국에서 보고 싶은 걸 다 보았습니다. 농부가 소의 짐을 나누어지는 모습만으로도 한국의 위대함을 충분히 느꼈습니다."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존귀하게 여겼던 농부처럼 우리는 본디 배려를 잘하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꽉 차 있는 것이다.

펄벅이 만난 시골 농부의 이야기는 배려를 등한시하고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강한 울림을 주고 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유일한 명약은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랑, 그것은 바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배려임에 틀림없다.

오늘 따라 왜 이리 달구지를 끌고가던 순박한 시골농부 생각이 간절한지 모르겠다.

아마도 저밖에 모르는 님비현상 같은 난무에 시달렸던 역겨움 때문이었는가 보다.

소도 어려우니 짐을 나눠져야죠.

우직한 농부의 이 한 마디가 왜 이리 마음을 파고드는지 모르겠다.

소달구지 짚단을 나눠진 농부의 지게가 갈증 나게 보고픔은,

나도 기계화돼가는 과정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마지막 동경에서였을까!

희귀보석 같은 농부의 배려심이 우매함으로 간주되는 세상이어서는 아니 되겠다.

소도 어려우니 짐을 나눠져야죠.

소의 짚단을 나눠진 농부의 배려심이 우리 모두가 즐기는 방향제가 됐으면 좋겠다.

동물까지 배려하는 농부의 사람냄새가 현대인이 즐겨 드는 웰빙식이었으면 좋겠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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