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20여 분간의 양 정상 통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일본 리더십 교체를 관계 개선의 작은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다. 스가 총리가 아베 측 인물을 중용하고 아베 계승자를 자처하지만 추상적인 덕담 주고받기로 격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다. 문 대통령의 축하 서한에 지난주 일본이 보내온 답신에서도 양국이 중요한 이웃임을 표명했지만 아베 정권과 차별화할 특징이 적다. 색깔도 엇비슷할 개연성이 크다. 외교 정책을 답습한다는 기본 전제에서 전략을 짜는 편이 차라리 좋은 이유다.
스가 총리는 외교를 아베와 상의하겠다는 공언까지 하고 있다. 게다가 유임된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이른바 '징용공' 이슈에 강경 일변도다. 일본은 지금 침략전쟁과 식민 지배를 사과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의 고노 담화 훨씬 이전으로 퇴행해 있다. 이런 사실까지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강제징용 판결 해법이 쉽게 바뀔 여지는 희박하다.
코로나19 사태로 관심사에서 좀 멀어졌지만 14개월째인 수출규제도 이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 수출과 산업 정책의 기조 역시 유지될 것 같다. 정치적으로 아베의 유산을 물려받은 스가 총리가 정권 초기부터 갑작스레 현안 해결에 나설 확률은 낮다. 일본이 우리에게 적절한 대응을 요청한 태도가 그 실례다. 그래도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자세는 필요하다. "서로에게 중요한 이웃 국가"라는 약 9개월 만의 덕담을 고위급 또는 정상 간 회담으로 계속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