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진위 여부, 이수민 작 '고승한담(高僧閑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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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진위 여부, 이수민 작 '고승한담(高僧閑談)'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11-12 16:48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도산 안창호 선생은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군부의 원수는 불공대천(不共戴天)이라 했으니 내 평생에 죽어도 다시는 거짓말을 아니 하리라."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라고 하였다. 진실과 성실이 담긴 무실(務實)을 주장한다. 참되기를 힘쓰자.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마음의 근본이며 도리로서의 성실을 실천하기에 힘쓰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길임을 천명한다.

비단 도산만 무실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동양에서는 요순시대부터 이상 세계가 정치의 화두였다. 이상 세계 실현은 인간 세상에 하늘의 뜻을 펼치는 것에 있다며, 지치주의(至治主意)를 주장한 조광조. 천인무간(天人無間)의 개인 수양을 통하여 성인이 되고, 그 개인이 합해지면 이상 세계가 실현된다고 하였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는 '동호문답(東湖問答)'에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천명하며 모든 폐해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참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에 힘써야 한다고 수차례 언급한다.

역사 오기 및 오류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바로 세워야 함은 당연지사다. 역사에 앞서 현실에서도 거짓이 자행되고 있는 것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감상적 오류랄까? 조작이랄까? 국회의원조차 확인되지 않은 일을 운운하고 장관이 버젓이 거짓 답변하는 장면을 본다. 어떤 의도가 있는지? 호도인지? 궤변에 의한 곡학아세인지? 알 바 아니다. 거짓은 죄악이다. 시끄러운 특수활동비 얘기다. 어쩌다 국회의원과 연고지가 같다 보니 부끄러운 생각마저 든다.

거짓이 주는 폐해, 문화예술에도 다르지 않다. 의도된 것은 아니겠으나, 잘못된 감식 하나가 미술사 전체를 흔든다. 먼저 알고 넘어갈 것이 있다.



우리는 보통 성을 포함 3자로 이름을 짓는다. 게다가 돌림자가 있다 보니 동명이인이 많다. 보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꼭 구분하기 위한 수단뿐이 아니다. 존칭을 사용하는 사회이다 보니 실명 부르기가 난처한 경우도 있다. 실명을 부르지 않는 풍속도 있었다. 따라서 다수의 별칭을 갖게 된다. 태명이나 아명이 있는가 하면, 성명 외에 자와 호를 갖는다. 자는 성년이 되는 관례를 전후하여 지어준다. 호는 본인이 짓거나 지인간에 서로 지어준다. 생전에 나라에 이바지하면 임금이 봉호(封號)를, 사후에는 시호(諡號)를 내리기도 하였다. 무덤에는 능호(陵號)가 주어지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작품을 완성한 다음 서명을 한다. 동양에서는 낙관(落款)이라 한다. 절대불변은 아니지만, 격식을 그림 공부할 때 함께 배운다. 관서(款署), 관지(款識), 관기(款記)라 하기도 한다. 내용, 제작 의도나 경위, 제작 시기나 장소, 작자의 호나 자 및 성명을 쓰고, 그 아래 인장을 찍는다. 음각으로 새긴 백문(白文)의 성명인을 먼저 찍고 아래에 주문(朱文)인 호인을 찍는다.

이제 그림을 보자. 이수민(李壽民, 1783 ~ 1839, 도화서 화원)의 〈고승한담(高僧閑談)〉도 이다. 심심산골 고운 숲에 안개가 오락가락 춤춘다. 폭포수 등에 업은 우뚝 솟은 기암절벽 위, 두 사람이 한가롭게 대화 중이다. 산중에 있으면 즐거움이 많다. 아름다운 경치와 맑은 공기, 각종 자연의 소리가 즐거움을 준다. 거기에 담소 나눌 지기가 있으니 얼마나 좋으랴. 자신과의 대화도 소중하지만, 나를 비추어 볼 상대가 있다는 것도 더 없이 감사한 일이다. 절로 시가 되고 선이 되지 않겠는가?

ㅎㅎㅎ
이수민 작 <고승한담(高僧閑談)>, 지본담채, 31 × 36㎝, 개인소장
그런데 이 그림이 김석신(金碩臣, 1758 ~ ?, 도화서 화원) 그림으로 알려져 있었다. 필자 역시 그리 알았다. 이런저런 자료를 뒤적이다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를 보게 되었다. 책에서 서울대학교 박물관 진현준 연구관이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이수민은 할아버지부터 3대가 화원 가족이다. 김석신 역시 형 김득신을 비롯한 화원 가족이다. 이수민과 김석신은 한세대 가까운 나이 차가 있으나, 작품 활동한 시기가 일부 겹친다. 둘 다 도화서 화원이다. 더구나 이수민은 딸을 김석신의 손자 김제운에게 시집 보낸다. 그러함에도 어떤 연유인지 초원(蕉園)이란 호를 같이 사용하였다. 필체도 비슷하다. 여기에서 모든 오류가 시작된다.

한국회화사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오세창(吳世昌, 1864 ~ 1953, 서화가)이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서 이수민의 자를 용선(容先)이라 잘못 적은 데서 문제가 고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림에 찍힌 백문(白文)은 군선(君先)이다. 이수민의 다른 그림 '좌수도해도(坐睡渡海圖)'에는 '壽民(수민)'이란 백문방인(白文方印)이 함께 찍혀 있어 군선이 이수민임을 말해준다. 곧 이수민 자가 군선이고, 군선 방인이 찍힌 것은 이수민 작이란 말이 된다. 개성이 다르고 화풍에도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인명사전, 인물 정보에 자가 잘 못 기록됨은 물론, '고승한담(高僧閑談)' 뿐 아니라 '소년행락(少年行樂)', '쌍작(雙鵲)', '월죽(月竹)' 등 많은 이수민 작품이 김석신 작품으로 잘 못 소개되었다.

사소한 오류가 더 많은 오류를 낳는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다. 거짓은 의도하지 않아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간단히 물리칠 수 없는 산이 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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