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신인류의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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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신인류의 명절

하명애 대전대 교수

  • 승인 2021-02-09 14:59
  • 신문게재 2021-02-10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하명애_사진
하명애 대전대 교수
내일부터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 그간 명절 때마다 역이나 터미널에서 고향으로 출발하는 들뜬 표정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모습을 TV에서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올해는 고향 방문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권고에 명절조차 낯설게 여겨진다. 코로나(Covid-19) 확산을 우려하여 이제는 "찾아뵙지 않는 것이 효"라는 표어까지 등장하니, 그야말로 인류의 새로운 명절을 맞이하는 시대가 되었다.

해마다 설 명절을 맞으면서 내 나이가 어디쯤인지를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과 장성한 자녀를 보며 가늠하게 된다. 구순을 바라보시는 시부모님과 팔순 중반의 친정 부모님께서는 이번 설 명절에 오지 말라고 미리 당부하시면서, 당신들은 이제 다 살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살아갈 세상이 걱정이라고 염려하신다. 어릴 적 친척 어른들께 세뱃돈을 받았던 신나는 추억과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라는 동요가 지금도 생생한데, 비대면 시대의 우리 자녀 세대는 이다음에 설날을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진다. 지난 추석 때에도 형제들과 영상통화로 명절 안부를 나누다보니 조카들에게 고모, 이모는 이제 영상통화로 만나는 친지가 되었을 것이다.

90년대에 인기를 누렸던 그룹 015B가 부른 "신인류의 사랑"이라는 노래가 있다. 원하는 이성에 대한 기대를 솔직한 노랫말과 경쾌한 멜로디로 표현한 그 노래를 당시 20대였던 나는 좋아했었다. 최근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오랜만에 나오기에 대학생 딸에게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라고 반갑게 말했다. 그런데 노래를 듣던 딸은, "별로 예쁘지 않은 그녀 괜히 콧대만 세고 (중략) 나보다 못난 남자들이 다 예쁜 여자와 잘도 다니는데"등의 가사에서 외모 지상주의가 심하고 "소개를 받으러 나간 자리엔 어디서 이런 여자들만 나오는 거야" 부분은 여성을 존중받는 인격체로 대하지 않아 유쾌하지 않다고 하였다. 오히려 이 노래가 인기 있었다는 것에 놀라며 지금 또래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가는 봉변당할 노래라고 손사래를 쳤다. 사랑의 감정을 애틋하게 표현했던 이전 세대에 비하여 예쁜 여자와 사귀고 싶은 속내를 진솔하게 노래한 90년대의 신인류는, 한 세대를 지난 딸의 눈에는 시대착오적인 구 인류가 되었다.

대학 4학년을 맞은 딸은 요즘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청년실업이 심각한 현실에서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시기에는 동기들 대부분이 취업을 했던 시대였기에, 나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있다. 한 세대가 흐르는 사이에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변화는 여러 면에서 우리 삶을 바꾸었지만, 변화 속에서 우리의 다음 세대는 성장하고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사람의 외모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했던 90년대 신인류는 인간의 인격적인 존엄성을 인식하는 2021년의 신인류를 마주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변화를 목격한다. 비록 지금 청년들이 일자리를 걱정하는 힘든 시대이지만, 노랫말에도 사람의 외모보다는 존엄성을 먼저 생각하는 젊은 세대에게 나는 희망을 읽는다.



무엇보다 한 세대가 바뀌는 동안 가장 큰 변화라면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그간 우리가 당연하게 여긴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90년대 세대가 디지털 이민자로 살고 있는 21세기에 디지털 원주민인 우리 자녀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신인류로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실제는 물리적인 거리두기이며 그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회적으로 더 견고하게 연결되어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열어 가리라 믿는다.

이제는 어디를 가든 마스크를 써야하고 고향 방문도 자제해야 하는 명절을 맞다보니, 설빔을 차려 입고 친척 어른들께 세배를 가던 설날 풍경은 동화책이나 TV 속의 '그 시절 그 사람들'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은 앞으로 살아갈 세대를 염려하시지만 나는 다음 세대에 염려보다는 기대를 보탠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변화는 분명 두려운 일이지만, 변화하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음을 우리는 또한 잘 알고 있다. 비록 서로 만나서 세배하는 설날을 맞이하지 못해도 21세기 신인류가 만들어갈 사랑과 명절을 희망차게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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