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아린 그림자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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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아린 그림자를 찾아서

김태열 수필가

  • 승인 2022-10-31 14:09
  • 신문게재 2022-11-01 19면
  • 이유나 기자이유나 기자
기
김태열 수필가
대전하면 먼저 떠오르는 곳은 대청댐이나 계룡산이다. 계룡산은 노을을 배경 삼아 대전을 아우르고 있고 대청댐은 물로 풍성함을 주고 있다. 뜻밖에 대전에는 성지라고 알려진 곳이 두엇 있다. 계족산 황톳길은 대전에 가면 꼭 한번 체험해야 하는 곳이다. 이십오여 년의 세월 동안 맨발로 걸을 때 느끼는 촉촉하고 포근한 맛에 매료된 이야기가 흐르면서 전국적인 성지가 되었다.

또 다른 곳은 구도심을 보듬는 보문산이다. 풍광이 아름답거나 딱히 볼거리가 있지는 않지만 눈부신 보물이 숨어 있다. 보문산 둘레길은 접근성이 좋고 평탄하여 시각장애인들이 보이지 않은 장애를 털어버리고 안전하게 걷는 곳이다. 어둠에서 빛을 찾듯 흰 지팡이를 들고 도우미와 함께 속살을 더듬는다. 숨겨져 있는 보물은 바로 '나로서 살아냄'이다. 볼 수 없는 사람에게 걷는 길은 제한적이다. 천변길은 자전거와 공용하기에 불편하고 보도는 여러 장애물로 더욱 힘들다. 가장 단순한 걷기조차 어렵다. 그들도 비장애인처럼 걸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문산 둘레길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보물 같은 성지일 테다.

11.4일은 점자의 날이다. 점자를 통해 시각장애인은 글자를 알아 문맹의 굴레를 벗어나 세상에 눈뜰 수 있었다. 우연히 그들과 글쓰기 인연이 맺어졌다. 코로나 사태로 소리나 행위로 할 수 있는 교육(대전 시각장애인 여성연합회 주관)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나도 작가다'라는 글쓰기 과정이 생겼다.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녀들 가슴속에 꽁꽁 쟁여 두었던 울음들이 조금씩 터져 나왔다. 삼 년의 세월이 흘러 생각의 우물에서 퍼낸 이야기들이 쌓였다. 퇴고의 작업을 하니 도움의 손길이 시절을 아는 비처럼 내렸다. 대전시에서 출판 비용을 지원하여 '어둠도 빛이더라'는 책에 볕뉘가 비쳤다.

시각장애인들의 글이 점자책이 아닌 일반 서적으로 나온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드문 일이다. 그녀들의 단단한 관념의 벽을 뚫고 마음속 기억의 창고를 더듬어서 건져 올린 글들은 일반인에게는 낯설거나 소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온몸으로 부딪히며 뼛속 깊이 내려가 쓴 그녀들의 글은 세상의 거친 바람에 숨죽이며 맞선 들꽃의 소리이다. 그 책을 통해 세상과의 관계 맺기, 자녀의 양육 등에 대해 그들만의 진솔한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장애를 알아야 그 아픔을 보듬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아픔은 늘 바빠 놓쳐버린 우리의 '아린 그림자'일 수 있다. 그동안 분리되어 멀게만 느껴졌던 시각장애인이다. 그들의 내면에서 저마다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꽃향기가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사람에게 시각은 무엇인가.

어느 캐나다 가족의 이야기다. 자식 4명 중 3명이 시각세포가 죽어가는 '망막색소변증'을 앓고 있다. 차츰 시력을 잃으면서 서른이 되기 전 실명한다고 한다. 현재 치료법은 없다. 부모는 그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기억의 저장소'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 여행 중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시각장애인을 '소경'이라 불렀던 적이 있다. 집안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혼사 길이 막힌다고 쉬쉬하면서 키웠다. 지금은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은 곳에선 아직도 편견과 선입견이 있다.

세상은 빛으로 모습이 이루어져 있는데 볼 수 없으니 선천성이든 후천성이든 누가 시각장애인이 되고 싶겠는가. 우리나라 장애인은 작년 기준으로 약 260만 명이고 시각장애인은 25만 명 남짓 된다. 시각장애는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장애다.

장애인은 관심과 배려로 같이 가는 동반자다. 차이는 있어도 차별이 없어서 각각의 재능을 펼치며 사회적 약자라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아픔에 눈을 감지 않고 눈을 떠야 함께 사는 세상일 테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연민이라는 샘물이 조용히 솟아나고 있다. 사는데 바빠 잠시 묻혀두었던 물길을 틔우고 서로의 샘 줄기를 이어야 살맛 나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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