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우주 딥테크 죽음의 계곡, 인내와 타이밍으로 넘는다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우주 딥테크 죽음의 계곡, 인내와 타이밍으로 넘는다

박정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사업화실장

  • 승인 2026-04-09 17:34
  • 신문게재 2026-04-10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60409095242
박정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사업화실장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를 고체에서 액체로 이동하는 시대로 묘사했다. 한 번 구축되면 상당 기간 지속되던 산업 질서가 이제는 빠르게 변화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최근 이러한 액체화는 우주분야도 예외가 아니며 AI 등과 결합되며 더 가속화하고 있다. 제품과 서비스의 업데이트 주기는 더욱 짧아지고, 경쟁 우위는 더 빠르게 복제되며, 가치사슬은 플랫폼,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재정립된다. 자본 역시 확신이 생기는 곳으로 더 민첩하게 이동한다. 그 민첩함의 바로미터가 벤처캐피탈(VC)이다. 금리가 오르고 통화 여건이 긴축될 때 VC 투자와 혁신 지표가 함께 위축된다는 실증은 이미 축적돼 있다. 최근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연구는 통화 긴축 충격 이후 VC 투자가 유의하게 감소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현대의 자본은 그래서 번성기에는 빠르게 팽창하지만, 불확실성이 커지는 순간에는 더 빠르게 수축한다. 우주경제로의 이행은 바로 이러한 유동적인 자본 위에서 진행된다. 위성 제작, 발사 서비스, 지상국, 위성정보 활용은 점점 구매 가능한 서비스로 바뀌고 있지만 우주기술은 딥테크로 그 호흡이 길다. 개발기간 자체가 길고 시험, 인증, 규제의 문턱을 넘어야 하고, 실증을 위한 대기시간도 상당하다. 반면 자본시장의 시간은 짧다. 그래서 우주 스타트업은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초기 기술개발에서 시장 확장으로 넘어가는 구간의 자금 및 역량 공백-을 더 깊게 겪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투자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는 기업의 생존과 스케일업(Scale-up)을 좌우한다. 그래서 자본 집약적이고 긴 호흡의 자금이 요구되는 우주경제에는 액체 자본과 구분되는 인내 자본(patient capital)의 조달과 투자 타이밍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인내 자본은 단순히 오래 기다리는 돈이 아니다. 금리, 투자 심리 및 사이클이 출렁여도 개발에서 실증을 거쳐 시장 진출로 이어지는 연결이 끊이지 않게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주항공청이 올해 9월까지 2000억 원 규모의 뉴스페이스 펀드(4호)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우주항공청이 1000억 원을 출자하고 민간 및 해외 자금을 매칭해 펀드를 결성한다는 구상이다. 이 펀드가 인내 펀드로 작동한다면, 우주 딥테크가 실증을 통과해 시장에 진입하는 구간에서의 단절을 줄이는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내 자본도 타이밍을 놓치면 그 효과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자본이 너무 늦게 투입되면 기업은 인력, 기술, 고객 확보 기회를 잃을 수 있다. 따라서 우주분야의 효과적인 투자를 위해서는 장기성과 함께 적실한 투자 시점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최근 과학(기술) 기반 스타트업 관련 연구들이 지적하듯 초기 투자 지연은 단순한 자금 부족이 아니라 타이밍 실패일 수 있다. 창업자는 기술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연구를 더 하고 싶어 하지만, 투자자는 빠른 시장검증을 원한다. 이 간격이 클수록 투자는 늦어진다. 투자가 늦어질수록 인력 유출, 기술 경로 변경, 경쟁 우위 상실 같은 비용이 누적된다. VC 유치가 한 분기 늦어질수록 성공적 엑시트 가능성이 낮아지고, 후속(Series B 및 C) 투자 유치, 밸류에이션, 총자금 조달액에도 불리한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따라서 우주분야 투자 전략의 초점은 인내 자본의 양적 확대와 함께 투자의 타이밍에 둘 필요가 있다. 우선, 펀드 운용을 마일스톤 중심으로 정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초기 고객, 서비스 수준 같은 시장검증 신호가 나오면 다음 자금이 투자되도록 단계형 투자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정부가 핵심 고객(앵커 테넌트)이 돼 초기 수요를 서비스 구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NASA는 이미 저궤도 상업생태계에서 정부가 고객으로 서비스를 구매하는 비전을 제시해 왔다. 마지막으로, 실증 인프라와 규제 절차의 시간 비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험, 실증 인프라를 바우처나 공유형으로 개방하고, 궤도상 실증 및 인증 패스트트랙 등을 마련하면 투자 타이밍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바우만의 액체현대 개념은 우주경제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많은 것이 유동화하는 시대에 무엇이 우주경제의 기반을 견고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우주기술 자체의 혁신뿐만이 아니라, 유동적인 자본을 인내 자본으로 유도하고 그 규모를 키워 나가는 한편 이를 제때 투입하는 전략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사업화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1조원대 'AI모빌리티' R&D사업추진심사 대상 지정
  2. [르포] 트램 공사에 시민 불편 가중…경적·호루라기 뒤엉키고 민원 잇따라
  3. 천안 K-컬처박람회, 주말 맞아 '가족·한류 맞춤형' 콘텐츠 쏟아진다
  4. 중기중앙회, '옐로우 플리마켓' 참여 소기업·소상공인 모집
  5. 천안시, 가을맞이 태학산 가족 산림치유 프로그램 운영
  1. 한기대 산학협력단, 'Best of CHAMP+' 성과평가 우수기관 선정
  2. 천안시, 제6기 주거복지위원 위촉…취약계층 주거안정 대책 논의
  3. 천안두정도서관, '내일의 어린이실' 단체견학 운영
  4. 천안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개소 20주년 맞아 정책포럼 개최
  5. 오가닉맘, 천안시 취약계층 아동 4억원 상당 의류 기부약정

헤드라인 뉴스


[산단의 경계, 기업의 한계] 커지는 기업, 가로막힌 확장…대전산단 ‘규제의 벽’

[산단의 경계, 기업의 한계] 커지는 기업, 가로막힌 확장…대전산단 ‘규제의 벽’

사업을 확장하지도, 나가지도 못한다.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 역시 쉽게 들어갈 수 없다. 지역 산업의 기반이 돼야 할 산업단지가 입주업종 제한 규제로 기업의 이동과 성장을 되레 제약하고 있다. 반세기 넘게 지역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해온 대전산업단지가 재생사업과 산업구조 변화가 맞물리면서 현행 규제가 기업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존 기업은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이전·증설을 추진하지만 업종 제한 등에 막히고, 신규 기업은 입주를 희망해도 업종 제한이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 기존 기업과 신규 업체가 처한 상황은 달..

"횡단보도 하나 두고 탄방"… 둔산 14구역 `둔산동 편입` 움직임
"횡단보도 하나 두고 탄방"… 둔산 14구역 '둔산동 편입' 움직임

대전 노후계획도시정비 1차 선도지구로 선정된 둔산14구역(한가람·한양)에서 '둔산동' 편입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같은 생할권임에도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둔산동과 탄방동으로 나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이유에서다. 6일 서구청 등에 따르면 최근 국민신문고에 둔산14구역 한가람아파트와 한양아파트를 둔산동으로 변경해 달라는 민원을 접수됐다. 현재 둔산14구역은 행정구역상 탄방동에 속해 있다. 반면 14구역 인근에 위치한 13구역(크로바·목련아파트)은 둔산동이다. 두 구역이 인접해 있음에도 행정구역상 동이 나뉘어 있어 주민들 사이에서..

[르포] 트램 공사에 시민 불편 가중…경적·호루라기 뒤엉키고 민원 잇따라
[르포] 트램 공사에 시민 불편 가중…경적·호루라기 뒤엉키고 민원 잇따라

5일 오후 4시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12공구인 중구 서대전 지하차도 일대. 공사장 통제요원의 호루라기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통제요원들이 수신호로 차량 통행을 유도했지만 공사로 좁아진 도로에 차량이 몰리면서 곳곳에서 경적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차량은 통행 안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듯 공사 구간 방향으로 잘못 진입했다. 이를 발견한 통제요원이 다급하게 호루라기를 불며 차량을 향해 뛰어갔다. 요원이 손짓으로 통행 방향을 다시 안내하고 나서야 차량은 방향을 틀어 빠져나갔다. 그 사이 뒤따르던 차량들도 속도를 줄이면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에 대형 꿈돌이·꿈순이 등장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에 대형 꿈돌이·꿈순이 등장

  • ‘운동하기 딱 좋은 날씨네’ ‘운동하기 딱 좋은 날씨네’

  • ‘자전거 안전하게 탑시다’ ‘자전거 안전하게 탑시다’

  • 추석 앞두고 벌초 한창인 국립대전현충원 추석 앞두고 벌초 한창인 국립대전현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