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다시, 혈의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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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다시, 혈의 누?

  • 승인 2017-03-07 14:59
  • 신문게재 2017-03-08 22면
  • 한광석 천주교대전교구청 신부한광석 천주교대전교구청 신부
▲ 한광석 천주교대전교구청 신부
▲ 한광석 천주교대전교구청 신부
집에서 키우던 염소, 소, 닭, 돼지를 챙기는 것이 방과 후 일이었다. 먹이를 주고 밖에 매어놓은 염소와 소의 꼴을 먹이는 일은 내 단골 몫이었다. 덕분에 염소의 고집이 얼마나 센지, 소의 눈이 얼마나 크고 순한지, 어떤 풀을 먹는지도 잘 안다. 그런 소 덕분에 큰 형은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당시 한 학기 등록금과 소 한 마리의 가격이 거의 같았기에, 소야말로 은인이었다. 소를 팔아야 할 때가 되면, 큰 눈에서 떨어지는 굵은 눈물에 마음이 짠했다. 그저 먹는 것만 밝히던 돼지와 얄밉던 염소의 눈물을 봐야하는 날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린 마음에 그냥 같이 잘 살고 싶었다.

성당을 다니며 알게 된 중세의 ‘프란치스코’라는 성인이 참 좋았다. 성인은 크리스마스에 보게 되는 마구간의 구유를 처음 만들어 예식에 도입한 분이다. 그 분이 만든 구유의 아기 예수님 곁에는 많은 사람과 함께 소, 말, 양 등의 동물이 있다. 예수님 이후, 그분을 가장 닮아 ‘제2의 예수님’이라고 불리는 성인은 모든 생명에 연민과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사셨다. 사람만이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들과 감각이 없는 피조물에도 마찬가지였다. 길을 가다가 개미가 있으면, 발에 밟힐까봐 피해 다녔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이다. 그는 물고기, 새 등의 생물은 물론 해, 달, 별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을 ‘형제’라고 불렀다. 생명을 가진 것은 같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보편적 사랑이 그를 위대한 성인으로 만들었다.

얼마 전 한 동물병원장이 병원 유리창에 이런 호소문을 붙여놓았다.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가족같이 키우던 반려동물을 버리지 말아 주세요. 버린 사람은 며칠 지나면 두 다리 뻗고 주무시겠지만, 버림받은 동물들은 죽을 때까지 주인을 기다립니다.”

며칠 전 가슴에 피멍이 들어 숨진 돌고래 사건도 아픈 예이다. 또한 어느 국제학술지가 지난 달, 현재 야생의 영장류 300여종이 멸종위기에 있다는 발표를 했다. 이런 발표를 자주 접해 면역력이 생겨서 그런지, 우리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런지 다른 생명에 대한 감성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요즘 탄핵국면의 많은 뉴스 속에서도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이란 단어가 떠나지 않는다. 유독 우리나라만이 어마어마한 동물들을 잔인하고 무차별적으로 살처분하고 있단다. 공장식 사육방식과 방역시스템을 제대로 개선하지 않은 상황에서 동물과 현장에서 고생하는 사람 모두 피해자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의 목숨을 너무 소홀히 한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동물이 인간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인간에게 모든 걸 내어주고 따뜻한 감정까지 나눠주는 그들은 기계적 처리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우리 모두가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되길 바라진 않지만, 적어도 다른 생명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서 나만 잘 살겠다고 기도하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눈물’을 뜻하는 소설 ‘혈의 누’가 다시 쓰이지 않길 바란다.

한광석 천주교대전교구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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