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머릿속에 잊혀 지지 않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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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머릿속에 잊혀 지지 않는 이야기

  • 승인 2017-07-10 14:09
  • 신문게재 2017-07-11 22면
  • 반신자 세종시 도담유치원장반신자 세종시 도담유치원장
▲ 반신자 세종시 도담유치원장
▲ 반신자 세종시 도담유치원장
집이 유치원과 가까워 걸어서 출ㆍ퇴근을 하다 보니 길에서 유아들을 길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귀여운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원장이 되어서도 교사시절 머리와 가슴에 잊혀지지 않는 두 아이가 생각난다.

첫 번째는 2000년 18명으로 된 혼합연령학급의 분교장 병설유치원에 근무할 때다.

그 중 말수 적은 만 5세 여아가 매일 학교에서 옷에 똥을 쌌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안 보고 꼭 화장실을 제외한 어떤 곳이든 장소 불문하고 옷에 배변을 봐서 정말 고역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하모니 자원봉사자도 없었다. 교실과 유치원 실외공간 등 유치원과 관련된 모든 장소는 교사가 직접 청소하고 관리하던 시절이라 오물도 담임교사의 몫이었다.

1년 동안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서 옷에 대변을 보는 아이였다. 건강상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지, 가정을 방문해 부모와 상담도 해봤고 병원에 진료도 의뢰해봤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았다. 어김없이 유치원에 와서 점심 이후 옷에 대변을 본다.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는 절대 배변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 배변을 보는 시간에 아예 화장실로 데려가서 변기에 앉아서 볼 수 있도록 해 봤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기에는 절대 변을 보지 않는다. 데리고 나오면 옷에 배변을 본다. 별방법을 다 해 봐도 고쳐 지지 않자 아예 속옷을 가방에 넣어서 다니게 했다.

그런데 교사인 나로서 정말 중요한 날이 왔다. 수업장학요원이었던 내가 교사들을 대상으로 수업공개를 하는 날이었는데, 그날도 옷에 똥을 싸버리면 정말 낭패였기 때문이다. 수업 도중 내내 그 아이의 행동에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옷에 똥을 싸지 않았다. 수업협의회 시간에도 초조하게 온 신경이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수업이 끝나고 협의회가 다 끝나도록 옷에 대변을 보지 않았다. 그날이 선생님에게 중요한 날인지를 아는지 그 애가 입학해서 처음으로 유치원에서 옷에 똥을 싸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그렇게도 그 애가 고마웠던 적은 없었다.

그 아이를 껴안고 고맙다고 칭찬해 줬더니 미소를 짓던 그 아이의 얼굴이 생각난다. 바로 다음날은 역시나 학교에서 옷에 똥을…….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말 수 적고 조용한 성향의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자랐을지 보고 싶다.

두 번째는 부모의 이혼으로 친할머니랑 사는 만 3세 여아가 유치원에 입학했다.

할머니는 입학식날 아이의 가정환경에 대해서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외롭고 정이 그리운 아이에게 엄마의 사랑과 정을 대신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할머니가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손녀를 돌보았기 때문에 거의 온종일 시장바닥에서 지내는 아이였다. 통통하니 귀여운 아이의 입학 첫날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욕(18)이었다. 욕이 절로 자연스럽게 나왔다. 만3세아 입에서 나오는 욕치곤 너무 심한 욕들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욕이 나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일상 속에서 자주 듣고 자란 환경 탓에 입만 열면 일단 욕부터 한 후 말을 했다. 그 애가 욕을 안 하고 바른말 하도록 걸린 시간은 거의 1년이 걸렸다.

그 후로는 누가 욕을 하거나 나쁜 말을 하면 오히려 바른말 하라고 나무랐다. 만 3세에 입학해 만 5세까지 3년을 담임했다.

2년이 흐르고 만 5세 때였다. 어느 날부터 출근해서 오면 내 책상에 항상 뭔가가 놓여 있었다. 몇백 원짜리 불량 식품이었다.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그 아이가 갖다 놓는다고 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할머니 돈도 없는데 왜 자꾸 사 와?”

“할머니가 그냥 매일 천원씩 줘요.”

“그만 사 와~”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좋아서요”라고 했다.

“왜 그렇게 선생님이 좋은데?”

망설이지 않고 한 대답은 “나 김밥 안 싸왔을 때 선생님이 김밥 줬잖아요”였다.

그 한마디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다. 소풍 때 점심을 안 갖고 와서 김밥을 나눠줬는데, 그 말을 듣자니 가슴이 뭉클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그런 적이 많았는데 유독 그 아이만 고마움과 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맙고 안쓰러워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이는 할머니의 진실한 보살핌과 엄마의 정과 사랑을 느끼게 대해 줬던 것들에 보답인지, 따뜻한 아이로 잘 자랐다. 먹을 것은 친구들과 아낌없이 나눠 먹고, 친구들이 어려울 때는 도와주는 나눔과 배려의 아이콘 같은 아이였다. 지금은 어엿한 멋진 숙녀가 되었을 그 아이가 보고 싶다.

반신자 세종시 도담유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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