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신형 전 TBN 대전교통방송 본부장 |
최근 갑질에 대한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군대(軍隊), 재계, 학계, 문화예술계, 공직사회, 아파트 입주민 대표와 경비원, 백화점 고객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의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지속돼 온 것으로 보인다.
갑질에 대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설문조사(2015년 1월)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 대부분은 갑질이 심각한 사회문제이고 몇몇 개인이나 일부 계층이 아닌 모든 계층에 만연한 현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설문 조사 대상자 중 대다수(95%)는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갑질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갑질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집단 순위는 정치인 및 고위 공직자(31%), 재벌(27%), 고용주 및 직장상사(16%), 거래처 및 상급기관(12%), 상품이나 서비스 구매 고객(9%), 언론인(3%), 교수 등의 전문직 종사자(2%) 순으로 나타났다.
재미있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85%)은 자신이 주로 ‘을’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갑질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10명 중 4명에 달했다. 누구나 갑질 행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갑질의 주요 원인으로는 특권의식과 물질만능주의, 인성교육 부족이 상위 요인으로 지목됐다.
최근 일어난 공관병에 대한 갑질, 종근당 회장의 운전기사에 대한 상습 폭언, 비행기를 회항시킨 땅콩회항의 주인공 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현아 사건, 미스터피자의 전 회장의 탈퇴한 가맹 점주들에 대한 보복 등은 고위 공직자, 재벌 등 특권층의 의식문제에서 나온 갑질 사건이다. 이에 대해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자신의 저서 ‘갑과 을의 나라’에서 “갑질은 ‘을’ 위에 군림하는 맛”이라고 하며 갑질에 중독된 한국은 관존민비(官尊民卑)의 불평등한 관계가 지속돼 오며 전 사회에 확산된 것이라고 했다.
물론 갑질은 비단 공직이나 재벌 등 특권층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MBC언론노조의 경력직 기자에 대한 왕따나 귀족노조로 일컬어지는 대기업 노조의 불법파업, 고객의 서비스 직원에 대한 폭언과 폭행,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입주자 대표의 갑질 등은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갑질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갑질은 권력의 상하관계뿐 아니라 물질만능주의 관점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대형유통업체의 납품업체에 대한 갑질은 도를 벗어나기도 했다. 납품 가격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후려치고도 재고 떠넘기기, 납품업체로부터 불법으로 종업원을 파견토록하고 비용 떠넘기기 등 횡포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등 납품 협력업체 권익 보호를 위한 ‘유통분야 불공정거래 근절대책’을 내놨다. 앞으로 유통업체에 대해 불공정이 근절되도록 과징금 인상과 배상금을 확대시키고 납품업체 종업원을 파견받을 경우에는 임금의 50%를 대형업체에서 분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법 개정이 어려우므로 직권조사를 통해서 먼저 제재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사회 전반에 권위주의적 특권의식과 물질 만능적 관계, 인성교육 문제로 기형적 갑을관계가 형성돼 있다. 그렇다면 갑을 관계 해소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모든 문제가 문제의 제기나 교육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므로 법적 제도를 통해 인식을 바꿔 나가야 할 것이다.
제도적으로 풀어갈 부분은 유통업체 갑질 근절 대책과 같은 개별법 보완도 필요할 것이며 실제 갑질이나 괴롭힘에 대한 실질적 법적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해외 선진국 사례 중 핀란드의 산업안전 기본법이나 프랑스의 사회선진화 기본법과 같은 갑질 근절을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그러나 갑질의 기본은 주로 서열에 의한 ‘무시함’에서 오는 것이므로 인간관계의 후진성 극복을 위한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 근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각종 계약서에도 ‘갑’, ‘을’ 표현이 사라지길 기대한다.
조신형 전 TBN 대전교통방송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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