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연의 산성 이야기] '배들의 무덤' 난행량(難行梁)이 뚫리다

[조영연의 산성 이야기] '배들의 무덤' 난행량(難行梁)이 뚫리다

제20회 태안, 한반도 서해 교통로상의 요지, 역사의 풍파를 오롯이

  • 승인 2017-11-10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충남 태안지역은 백제 성대혜현(省大兮縣)으로 한반도 서해 교통로상 중간 지점에 있다. 지형적으로 서해로 돌출돼 있어 육로보다는 해로교통이 발달된 지역으로 삼국시대부터 청해진, 당항진, 벽란도 등을 거쳐 중국의 등주, 영파, 왜국의 규슈 등을 오가던 국제무역이나 문화교류도 이곳을 통해서 이뤄졌다.

660년 나당군의 백제 공격 시 산동에서 출발한 당의 수군도 이 앞을 지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기록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고려 때 삼별초군의 이동도 여기를 거쳤고, 조선시대 삼남의 세곡선, 조운선들이 대부분 이 해안지역을 경유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의 함선들도 앞바다를 지났다. 남쪽으로부터 연안을 따라 개경이나 한양으로 향하는 옛 수로는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요로였던 반면에 가장 험난한 항로였다.

이렇게 경제나 군사적인 중요성으로 인해 조선시대에는 대산포에도 진(鎭)을 설치했으며 태안읍성 외에 소근진이나 안흥진 등에 진성을 축조했다. 이곳 해안은 지리적으로 현재 상당부분 간척과 개발에 따라 육지화됐지만 고지도를 보면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깊숙한 곳까지 작은 섬들과 넓은 뻘지대가 전개된 리아스식 해안, 곳곳의 많은 포구들이 형성돼 있었다.

그리고 3~8m의 조수 간만 차, 도서에 부딪치는 억센 조류는 물론 계절적 기후변화가 심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병선이나 후대 조운선들처럼 연안 항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작은 배들로는 여간 어려운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심지어 난행량(難行梁)으로 불리기도 했다.



황해도 임당수, 강화 손돌목, 목포 앞 울돌목 등과 더불어 4대 험저처(險저處) 중 하나로 꼽히던 곳이다. 또한 여말선초 무렵부터 왜구의 출몰로 인한 피해가 막심했다. 그런 관계로 지역에는 크고 작은 관방시설 즉 성이나 봉수 등이 해안 도처에 많이 설치됐다. 그 결과 해안가에 십오륙 기의 성곽들이 설치됐던 것으로 파악됐다(태안군지). 「문화유적분포지도」에 따르면 확실히 파악되는 삼국시대 성은 2, 나머지는 미상이거나 고려나 조선시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태안
고지도를 통해 본 태안/중앙박물관
삼국시대에는 초기의 성들로서 해안가에 소규모 토축이 중심이 됐던 까닭에 워낙 오랜 시간의 경과와 아울러 지형의 변화를 입어 망실된 것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대내적인 투쟁기였던 삼국시대는 이 지역이 투쟁지로부터 멀었다는 점에서 삼국시대에는 성의 축조가 중요성에 비해 적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존의 시설들을 후대에 개보수하여 사용함으로써 삼국 당시의 자취가 없어진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후에 왜구의 출몰이 극심해져 이를 막기 위해 고려나 조선에 이르러서는 해안가에 읍성이나 진성(해안성) 등을 중심으로 관방시설들을 곳곳에 설치했다. 백화산성, 태안읍성(조선 태종때 1416. 동국여지지), 소근진성(所斤鎭城 중종19. 1504.신증동국여지승람), 안흥진성(安興鎭城 효종6. 1655.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관방시설들은 주변 수로의 중요성으로 미뤄볼 때 그 이전 시대에도 어떤 형태로든 방어시설들은 구축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왜구들의 준동이 잦았던 고려 이후에야 비로소 더 많은 봉수와 해안성들이 축조돼 본격적으로 해안 방어임무를 수행했으며 그 배후의 읍성들은 행정치소로서의 구실까지 겸해 수행했다. 그런 시설들은 관방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조운선 보호나 물자 수송 등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요했다.

그 예로 최근 발굴된 조선 조곡 운반선 마도선들이 그 발굴보고서에 따르면 조선 태조-세조 연간 약 60년에 무려 200여 척의 조운선이 난파돼 곡식 15000석, 인명 1200여 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더욱이 난지도 앞 가로림만 일대 안흥 앞의 거친 항로 조건들도 많은 봉수와 해안성들의 필요성을 더욱 증대시켰다. 그 천험한 수로를 극복하기 위해 고려 때부터 조선말 경까지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내륙운하 건설을 6,7차례나 시도했지만 암반지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 팔봉 진장리-어송리 굴포에 그 흔적이 남았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조영연-산성필자250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4 충청총선]더민주-국민의힘-조국까지 대전 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 표정
  2. 세종시 집현동 공동캠퍼스 '9월 개교'...차질 없이 한다
  3. 대전과 세종에서 합동 출정식 갖는 충청지역 후보들
  4. 가수 영호 팬클럽 '이웃위해' 100만원 기탁
  5. 세종시 호수공원 일대 '미술관 유치' 본격화
  1. [총선리포트] 강승규 "양 후보는 천안 사람" vs 양승조 "강, 머문기간 너무 짧아 평가조차 못해"
  2. 2025학년도 수능 11월 14일… 적정 난이도 출제 관건
  3. [아침을 여는 명언 캘리] 2024년 3월29일 금요일
  4.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왕도정치와 팬덤정치
  5. [WHY이슈현장] 고밀도개발 이룬 유성, 온천 고유성은 쇠락

헤드라인 뉴스


대덕특구 재창조 속도 높인다… ‘마중물플라자’ 조성사업 순조

대덕특구 재창조 속도 높인다… ‘마중물플라자’ 조성사업 순조

대전시는 대덕특구 재창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마중물 플라자 조성사업의 중간 설계를 완료하고 과기부·기재부의 총사업비 조정절차를 완료했다고 29일 밝혔다. 마중물 플라자는 대덕특구 출범 50주년을 맞아 재도약과 4차 산업혁명 선도를 위한 대전환을 위해 대전시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가 협업하여 추진하는 사업으로 이번 중간 설계 완료와 총사업비 조정 확정으로 더욱 가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ETRI 부지인 유성구 가정동 168번지에 313억 원을 투입해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8782㎡로 ICT 기술사업화 거점, 전..

세종시 `관광 현주소`는...2023년 어디를 많이 찾았나
세종시 '관광 현주소'는...2023년 어디를 많이 찾았나

세종시 관광산업의 현주소는 어떤 흐름에 올라타고 있을까. 성장기에 놓인 신도시 특성과 행정중심복합도시 위상을 고려하면, 관광도시 면모를 기대하는 건 욕심에 가깝다. 그럼에도 방문객 수와 유입 지역, 자주 찾는 장소, 매출액 등의 객관적 데이터 분석은 미래 세종시의 방향성을 찾는데 유효한 과정으로 다가온다. 때마침 세종관광 MICE 얼라이언스 발대식이 3월 29일 어진동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려 제 단체 간 발전적 협력 관계 구축을 넘어 지역 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 영문 MICE는 한글로 회의와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란 4가지..

[WHY이슈현장] 고밀도 도시개발 이룬 유성… 온천관광특구 고유성은 쇠락
[WHY이슈현장] 고밀도 도시개발 이룬 유성… 온천관광특구 고유성은 쇠락

대전유성호텔이 이달 말 운영을 마치고 오랜 휴면기에 돌입한다. 1966년 지금의 자리에 문을 연 유성호텔은 식도락가에게는 고급 뷔페식당으로, 지금의 중년에게는 가수 조용필이 무대에 오르던 클럽으로 그리고 온천수 야외풀장에서 놀며 멀리 계룡산을 바라보던 동심을 기억하는 이도 있다. 유성호텔의 영업종료를 계기로 유성온천에 대한 재발견과 보존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유성온천의 역사를 어디에서 발원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살펴봤다. <편집자 주>▲온천지구 고유성 사라진 유성대전 유성 온천지구는 고밀도 도시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사전투표소 불법카메라 발견에 전국 ‘사전투표소 긴급 점검’ 사전투표소 불법카메라 발견에 전국 ‘사전투표소 긴급 점검’

  • 제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돌입…표심잡기 나선 선거 운동원들 제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돌입…표심잡기 나선 선거 운동원들

  • 중구청장 재선거도 치러지는 대전 중구…표심의 행방은? 중구청장 재선거도 치러지는 대전 중구…표심의 행방은?

  • ‘우중 선거운동’ ‘우중 선거운동’